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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잡설/기타

돈 조반니 (2013년 바덴바덴 성령강림절 축제 SONY)

by Chaillyboy 2016. 8. 29.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돈 조반니 (1787)

돈 조반니: 어윈 슈로트

돈나 안나: 안나 네트렙코

레포렐로: 루카 피사로니

돈나 엘비라: 말레나 에른만

돈 오타비오: 찰스 캐스트로노보

체를리나: 카티야 드라고예비치

마세토: 조나단 르말루


토마스 헹겔브록, 발타자르-노이만 합창단과 앙상블 (리더: 리카르도 미나시)

포르테피아노: 조리 비니쿠어 

연출: 필립 힘멜만

무대 디자인: 요하네스 라이아커

촬영 감독: 예레미 퀴빌리에


2013년 5월 13일, 축제극장, 바덴바덴


SONY 88843040119


 

혹은 https://www.klassik.tv/werke/don-giovani-baden-baden-2013-trailer/


꿈의 목소리와 BALTHASAR-NEUMANN 앙상블을 융합시킨 뮤지컬 디럭터 THOMAS HENGELBROCK에 의해 놀랍도록 19세기의 혼이 느껴지는 낭만적으로 묘사된 모차르트…… 그는 마치 머물러 지금 당장! 그렇게 시간을 멈추는 듯하다.” 

- 히틀러의 탄압으로 폐간되었던 독일의 유력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 평


수입사 홍보가 웃겨서 가져와봅니다. 히틀러가 탄압해서 폐간된 일간지의 찬사가 얼마나 판매량에 일조했을지 궁금하긴 하네요. 적어도 국내 포털에서 아무런 결과가 나오지 않는 걸 보면 신통하진 않은 것 같습니다만... (물론 FAZ의 저 단평은 기가 막히게 정확해 보입니다)

 

경향을 보건대, 시대악기 연주는 우리 세기에 더욱 만개할 것 입니다.


1945년부터 공동의 적을 두면서, 20세기 원전-정격 연주 (당시에는 이렇게 불렀죠)는 신즉물주의, 서유럽 아방가르드와 한 세트로 묶입니다. 기록이 말해주죠.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는 파울 힌데미트가 빈에서 부활시킨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를 연주하며 기지개를 폅니다. 그의 친위대로 이름날릴 콘첸투스 무지쿠스가 그 때 (비공식) 데뷔하니까요. 상당수 음악인이 현대음악과 시대악기 연주를 오가며 커리어를 쌓았고, 이건 커다란 전통이 되었습니다. 피에르 불레즈가 시대악기 연주를 매도했음에도, 그 역시 초창기에 바로크 음악을 지휘했습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혹은 칼 리히터가) 지금은 구식이라고 비난받지만, 그들의 바로크는 상당히 현대적(modern)이죠. 물론 그 연장선상에는 아돌프 부슈가 연주한 바흐가 남아있겠습니다.


정리하면 '모던'이란 축으로 양쪽을 나눌 수 있었을텐데, 다만 2016년은 '모던'의 해가 아니죠. 이제 그런 연대의식은 사라졌습니다. 테제의 강박 대신, 다양한 시도가 남을 뿐입니다. 저는 통렬함이라는 미덕을 아주 높게 치지만,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뻔한 클리셰가 여기 다시 보이네요. 맥락 무시하고 간단히 말해, 존 엘리엇 가디너는 21세기를 이길 수 없지 않을까요?


토마스 헹겔브록은 21세기 음악가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현대적인 앙상함이 보이지 않습니다. 경력만 봐도 알 수 있죠. NDR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임이고, 바이로이트에서 바그너를 지휘하기도 했으니까요. (물론, 가디너 역시 NDR의 상임을 맡았고, 여러 연주가 말해주듯이, 제 편견과 다르게 유도리있는 음악가죠) 바로크에 뿌리를 두면서, 동시에 독일 낭만주의를 제대로 아는 사람입니다. 그들의 음향전통을 알기 때문에, 바로크에 적용할 수 있고요. 그에게서 음악은 풍성해집니다. 


이건 마치 19세기 말 독일 연극의 변화를 보는 것 같습니다. 과학적인 시선을 통해 베를린 자연주의는 괄목할 성과를 거두었지만, 결국 앞선 전통을 알고 동시대의 변화 역시 포착했던 라인하르트-호프만슈탈의 새로운 작업에 밀려나지 않습니까? 헹겔브록 역시, 시대의 연구 성과를 모두 꿰뚫지만, 적극적인 템포나 드라마에 대한 극단적인 이해라는 측면에선, 구태의연하다고 매도당한 옛 세대를 제대로 압니다. 그들을 재해석 할 줄 아는 거죠. 아르농쿠르 역시 그런 덕목이 있었지만, 그는 앞선 세대를 자연스럽게 빨아들인 원로잖아요? 헹겔브록이 대단한 이유입니다. 그리고 시대악기 연주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돈 조반니>는 앞선 세대와 직접 비교 가능한 곡인데, 헹겔브록의 직접적인 선구자는 르네 야콥스일 겁니다. 물론 21세기 모차르트 오페라에선 그의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을 찾는 게 더 빠르겠습니다만... 심지어 두 사람 모두 같은 축제에서 영상을 남겼네요.


야콥스의 공격적이고 활기찬 템포, 발작하는 다이나믹에 비하면 헹겔브록은 얼핏 얌전해 보입니다. 다시 언급하겠지만 낭만시대에 가까운 캐스팅도 이런 분위기에 일조합니다. 판본 역시 관례적으로 쓰던 수정 프라하 판본이죠. 하지만, 불씨가 붙은 성악에 기름을 확 끼얹는 육감적인 반주는 시작부터 인상적입니다. 이게 계속 쌓이면서 흐름이 만들어지는데, 사실 야콥스의 반주는 흐름의 측면에서 부족함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돈 조반니>는 흐름이 정말 중요한 오페라가 아닙니까. 카라얀과 푸르트벵글러는 양 극단의 템포를 사용했지만, 그들 모두 기가 막히게 흐름을 살려 냈죠. 헹겔브록 역시 그런 덕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특히 1막에서 일어나는 이런 저런 사단들이 자연스럽게 흘러가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보게 됩니다. 톡톡 튀는 즉흥 연주가 전면에 드러나면서도,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건 어려운 일이죠.


발타자르-노이만 앙상블은 헹겔브록의 수족같은 단체인데, 사실 이쪽 업계는 멀티잡이 흔하다고 하니 악단별 정체성이 큰 의미가 있을지 싶긴 합니다. 이 연주 역시 리카르도 미나시가 악장을 맡았으니까요. 그래도 다른 시대악기 앙상블에 비해 이 연주의 덕목은 분명합니다. 시대악기 앙상블로서는 쉽지 않은 2500석의 대극장에서 연주했음에도 불구하고, 음향은 깔끔하고 동시에 깊습니다. 야콥스의 앙상블이 음향깊이를 금새 드러낸다면, 헹겔브록이 공간을 찢어발기는 소리는 바닥을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그가 저음악기를 잘 이해한다는 느낌입니다. 이건 독일 지휘자들의 전통적인 덕목이었죠.


템포는 유연합니다. 하지만 독단적이지 않습니다. 시선이 넓죠. 가수 - 지휘자 - 포르테피아니스트가 한 사람처럼 움직입니다. 이 프로덕션은 돈 조반니를 부른 어윈 슈로트에게 상당히 집중하는데, 그의 능청스러운 애드립과 템포 변화, 프레이징 처리를 하나도 놓치지 않습니다. 리허설을 상당히 많이 했거나,  음악가들의 실력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연출은 전체적으로 무난합니다. 저는 <돈 조반니>를 생각하면 항상 어떤 공간이 떠오릅니다. 인위적으로 설정된 인물들이 존재하고 돈 조반니라는 상당히 이질적인 존재가 끼어들죠. 결국 일종의 사고 실험처럼 이들의 작용과 반작용이 공간을 완성합니다. 사전적인 뜻의 공간보다는 수학적인 공간이 제 생각에 더 가까울 것 같습니다. 이걸 지상의 공간으로 완전히 탈바꿈한 극단적인 경우가 클라우스 구트의 잘츠부르크 연출이었다면, 바덴바덴의 이 연출은 인물들의 상호작용에 비교적 충실한 걸로 보입니다. 바닥이 열려있는 입방체가 무대를 에워싸고,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인물들이 드나들죠. 전형적인 독일식 연출인데, 뛰어난 연기지도가 텅 빈 공간을 지루하지 않게 채워줍니다. 소품이나 연출 지시가 특별히 인상적인 순간은 없었고, 인물들 자체도 고전적인 이미지와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물론, 21세기 연출답게 돈 조반니에게 다층적인 내면을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몇 번 언급하다시피 가수진은 낭만시대의 생각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스타캐스팅이죠. 야콥스처럼 모차르트의 원래 의도를 구현하려는 생각은 없어보입니다. 


우선, 돈나 안나에 드라마티코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를 캐스팅한 건 분명히 취향이 갈릴 것 입니다. 물론, 취향과 원전에 대한 충실함을 떠나 이제 네트렙코는 노래를 잘 한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더군요. (살이 찌고 노래가 늘었다는 게 중론이죠) 연기나 가창 모두 거슬리지 않았지만, 특유의 음색에 거부감을 가지는 분들이 생각을 바꿀만한 퍼포먼스는 아니었습니다. 돈나 엘비라는 지나치게 어수선했는데, 캐릭터가 그렇다 치더라도 에른만이라는 가수는 그걸 완벽하게 제어하지 못했습니다. 가창이 폭발적이지만, 목소리가 얇은 편이었죠. 체를리나는 돈 조반니와의 앙상블이 인상적이었습니다.


2016년 현재 루카 피사로니는 공인된 돈 조반니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 많은 가수들이 그랬듯이 - 레포렐로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능청스러움과 폭력성을 오가는 하인을 표현하는데는 기가 막힌 재주와 외모를 가졌죠. 기억에 남는 건, 이 사람이 2막의 변장 장면에서 돈 조반니 - 어윈 슈로트 - 의 목소리를 완벽하게 따라했다는 겁니다. 성대모사를 잘하는건가요? 


모든 <돈 조반니>를 들을 때마다 내심 기대하지만 결국 실망하게 되는 돈 오타비오는 이번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물론 롤란도 비야손처럼 완전히 어긋난 캐스팅은 아닙니다만.. 이 역할이 돈 조반니보다 제대로 부르기 어렵다는 생각도 이젠 듭니다. 어쩌면 제가 50년대 실황을 들으며 기준을 너무 높게 잡았다는 생각도 드네요. 한편, 조나단 르말루가 노래한 마세토는 무식쟁이(peasant)같은 성정을 잘 드러내는 연기와 가창이었습니다. 


어윈 슈로트는 유명세에 비해 유통되는 영상물이 많지 않죠. 이걸 포함한 두 종의 <돈 조반니>와 <피가로의 결혼> 하나를 감상했고, 여기서 그는 모두 특유의 넉살 좋은 연기, 그런 외양을 빼곤 설명하기 힘든 빼어난 가창을 보였습니다. 그에게 노래는 대사-서사와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를 보완하는 개념으로 보이는데, 그래서 레치타티보를 타는 능력이 정말 탁월합니다. 음악을 잘 아는 사람이 보여주는 재치가 있죠. 물론 목소리 역시 매력적이고, 필요할 땐 폭발시킬 에너지 역시 충분합니다. 굳이 말하자면 헤르만 프라이가 주는 매력과 어딘가 비슷한 데가 있어요. 물론 한계도 뚜렷하죠. 프랑스어 딕션이 심각하다는 이야기도 들리고요. 본인 역시 그걸 잘 알고 레퍼토리 관리를 충실하게 하는 편 입니다.


언젠가 한번 언급했듯이 소니는 이 블루레이를 전혀 홍보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소리 소문 없이 묻혔는데, 그러기엔 아쉬운 품질이죠. 물론, 메이저 회사에서 발매한 <돈 조반니>에 한글 자막이 없다는 게 의아하지만 - 소니는 최근 발매한 <운명의 힘>에도 한글 자막을 넣지 않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장가치는 충분합니다. 특히 야닉 네제-세갱이나 테오도르 쿠렌치스의 <돈 조반니>가 영상물로 나온다고 해도 경쟁 가능한 뛰어난 관현악 반주는 어떤 영상물에서도 찾아볼 수 없으니까요. 성장하는 뛰어난 지휘자들의 도전에도, 헹겔브록의 오페라는 꽤나 오랫동안 권좌를 지킬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