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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잡설/공연 후기

"레이 첸과 NSO" - 2019년 10월 26일 가오슝국가예술문화센터

by Chaillyboy 2020. 2. 7.

 

포치엔(劉博健): Klangvoll von Klang (중화민국 하카위원회 위촉, 세계초연, 2020)

헨리크 비에니아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 Op.14 (1853)

(앙코르)

즉흥곡 2곡

 

(인터미션)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3번 Op.29 “폴란드” (1875)

 

바이올린: 레이 첸

유안(張宇安), 국립 타이완 심포니 오케스트라

 

2019년 10월 26일, 웨이우잉국가예술문화센터 콘서트홀, 가오슝, 타이완

 

 

-https://chaillyboy.tistory.com/153에 이어

 

TSO 마스터 시리즈 "말러, 부활!" - 2019년 10월 25일 가오슝국가예술문화센터

구스타프 말러: 교향곡 제2번 (1888-1894) 소프라노: 라헬 하르니슈 콘트랄토: 카타리나 마기에라 엘리아후 인발, 타이페이 심포니 오케스트라, 가오슝 실내합창단, 청운합창단 2019년 10월 25일, 웨이우잉국가예..

chaillyboy.tistory.com

 

이튿날의 가오슝행은 한결 편했다. 전날보다 생소한 곡을 들으러 가는 길이기에 의식적으로 마음을 편하게 하면서 피로를 풀었다. 지하철역의 같은 출구로 나와 문화센터로 쏙 들어갔다.

 

매표소를 지나쳐 별관에서 커피와 아이스크림, 빵을 가볍게 들었다. 콘서트홀은 어제보다 더 활기찬 인상이었는데, 레이 첸의 티켓 파워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당일 오후에 있던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을 보고 나온 관객들의 에너지였을지도 모르겠다. 주변에는 다양한 젊은이들이 카페 테이블에 앉아 수다를 떨고 있었다. 종종 말러나 인발같은 단어가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어제도 이곳을 방문한 친구들이겠지. 젊은 콘서트고어. 내게 익숙한 일상일텐데, 그걸 다른 언어로 관찰하는게 흔한 경험은 아닐테다.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몰랐지만 음성의 리듬과 높낮이를 느끼면서 기운을 마저 차렸다.

 

야외 광장의 피아노가 다시 보고 싶었다. 피아노를 쳐 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가자마자 생각을 접었다. 지나가던 어린 학생이 앉자마자 슈만 토카타(!)부터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같은 난곡이란 난곡은 다 쏟아놓으면서 주변을 휘어잡았다. 어제보다 가볍고 밝은 분위기가 문화센터 주변으로 비산했다. 학생은 친구들과 수다를 떨면서 곡을 계속 고르는 듯 했다.

 

생각보다 콘서트홀이 붐비지는 않았다. 전날의 말러 공연이 살짝 아쉬운 수의 관객이었다면, 오늘은 드문드문 빈 자리가 보이는 정도. 첫 곡을 위해서 다양한 타악기가 무대에 올라와 있었다. 곧이어 단원과 젊은 지휘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브장송 콩쿠르를 우승하고 보스턴 심포니의 부지휘자로 활약중인 지휘자의 정교한 비팅이 돋보였다. 첫 곡은 다양한 조류의 음향들이 서사를 그리며 뒤섞여 있었는데, 효과 자체만 봤을때 새롭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다르게 말하면 순간적인 효과만을 노리는 곡은 아니었고, 음향 사이의 두드러짐 없는 안정적인 균형감이 인상적이기도 했다. 존 포드의 영화가 보여주듯이 성취하기 쉬운 방향의 구성은 아닐테다.

 

눈에 띄는건 관객들이었다. 그들은 수준 높은 관객매너와 놀랄만한 환호로 새로운 곡에 화답했다. 이 공연의 메인 디쉬는 레이 첸이고, 짐작컨대 여기 온 관객의 다수는 그를 보러 왔을테다. 나 역시 그러했고. 이런 경우 프로그램의 다른 곡이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기 마련이다. 특히 세계초연되는 동시대 음악이 주목을 받기란 쉽지 않고, 공공연한 현대음악 배척을 한국에서 하도 많이 보기도 했는데... 무대로 나와 인사하는 작곡가에게 격려의 박수와 함성이 쏟아졌다. 음악을 진지하게 즐긴 이의 박수였다.

 

오히려 레이 첸이 받는 박수가 예상만큼 크지 않다고 생각했다. 잠깐 오케스트라가 자리를 옮기고 편성을 바꾸자, 호쾌한 발걸음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등장했다. 그는 같이 걸어나온 지휘자와 미소를 교환한 다음, 자기 자리에서 관현악 서주를 들으며 바이올린의 차례를 기다렸다. 밝고 꽉 찬 바이올린의 음색이 인상적으로 시작을 알렸다. 비에니아프스키는 개인적으로 생소한 작곡가다. 별다른 예습 없이 19세기 비르투오소 협주곡 정도로 생각하고 왔기 때문에, 바이올린의 리드를 생각 없이 따라갔는데, 덕분에 아주 즐거운 감상이 되었다. 레이 첸은 곡의 굴곡을 극적으로 강조하며 곡의 길잡이 역할을 자처했다. 

 

쏟아지는 환호를 마주한 레이 첸은 달변의 중국어로 관객과 소통했다.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이야기가 생각보다 길어지고 틈틈이 관객들의 탄성과 웃음이 이어졌다. 레이 첸은 몸짓을 섞어가며 코미디언처럼 말을 쏟아낸 뒤 바이올린을 잡았다. 통속적인 멜로디--대만의 유명 드라마에서 따온 것 같았다--를 중심으로 즉흥연주가 이어졌다. 놀랄만한 퍼포먼스였다. 명인기를 단순하게 지적하려는 게 아니다. 음악을 중심으로, 관객들이 음악에 몰입하는데 필요한 다양한 장치를 이 사람은 잘 아는 듯 했다. 관객과의 소통도 그런 장치의 일환이었으리라. 환호가 쏟아졌고, 백스테이지에서 돌아온 레이 첸은 악장을 가리키면서 넉살 좋은 이야기를 오래 이어나간 뒤 다시 바이올린을 잡았다. 마찬가지로 통속적인 멜로디를 즉흥한 연주였다. 레이 첸이 무대에 있던 약 40분 동안 쇼피스를 중심으로 짜인 황금기 명인의 리사이틀을 보고 나온 느낌이었다. 많은 이들이 지적했던 것, 즉 박물관이 된 클래식 연주회, 연주회에서 사라진 오래된 미덕을 대만에서 보게 되어 놀라웠다. 

 

아쉽게도 탁월함은 여기까지였다. 2부의 차이콥스키 교향곡은 생소한 곡을 쉽게 따라갈 수 있게 하는 좋은 연주였지만, 기술적 성취가 앞선 프로그램에 미치지는 못했다. 곡의 표정이 또렷하게 드러났다고 하기는 힘들었다, 아무래도 지휘자가 곡을 따라가는데 급급했다는 인상이었다. 그와 오케스트라가 1부에서 놀랄만한 반주를 선보였기에 더욱 아쉬운 대목이었다. 전날의 타이페이 심포니와 비교했을때, 이 오케스트라는 서울시향에 가까운 표정이 다양하고 몸을 좀 더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인상이었다.

 

문화센터의 첫 인상은 위압적이었다. 하지만 그 속으로 들어가자 예상치 못한 다채로운 경험이 있었다. 이걸 어떻게 종합할 수 있을까.

 

먼저 음악은 살아숨쉰다는 당연한 사실을 타이완에서 느닷없이 관찰했다. 제의로서의 콘서트, 박물관 음악의 콘서트를 중화시킬만한 관객들의 능동적인 감상과 참여가 있었다. 또한 자국 문화기관이 위촉한 자국 작곡가의 동시대 음악, '현대음악'과 통속적인 대중가요의 병렬, 음악을 예습하는게 아니라 음악의 내적인 논리를 어렴풋이나마 따라갈 수 있게 만든 음악인들의 구성이 돋보였다. 관객의 능동적인 감상도 이런 요소들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한데 묶을 수 있는 스타성을 가진 음악인까지.

 

한국에서도 이런 요소 각각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이 개별적으로 산발하지 않고 한데 모여 음악회를 빛낸 적이 얼마나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특히 이것이 제도적인 단계에서 시립 교향악단 등에 제대로 이식된 경우는 더 드물었던 것 같다. 음악인들의 노력을 묶어줄 제도 내부의 사려깊은 구성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