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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잡설/공연 후기

GMC 챔버 시리즈 - 2022년 4월 16일 금난새 뮤직 센터(GMC)

by Chaillyboy 2022. 4. 20.
(c) 금난새 뮤직 센터(GMC)

프란츠 슈베르트/프란츠 리스트 : 물방앗간 청년과 시내 S. 565, No. 2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 편곡 中)
피아노 : 조민현

카미유 생상스 : 바순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Op. 168 中
바순 : 김용원, 피아노 : 조민현

라인홀트 글리에르 :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8개의 소품, Op.39 中
바이올린 : 최서연, 첼로 : 박성근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BWV 1007 中 1. 프렐류드 &
조르주 리게티 : 무반주 첼로 소나타 中 2. 카프리치오
첼로 : 박성근

아스토르 피아졸라 : 천사의 죽음
바순 : 김용원, 피아노 : 조민현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 바이올린, 비올라, 피아노를 위한 5개의 소품 中
바이올린 : 최서연, 비올라 : 조우태, 피아노 : 조민현

외젠 부르두 : 프리미어 솔로
바순 : 김용원, 피아노 : 조민현

프란츠 슈베르트/프란츠 리스트 : 물레질하는 그레첸 S.558-9 (슈베르트의 12개 가곡 편곡 中)
피아노 : 조민현
 
진행 : 금난새 
  
2022년 4월 16일, 금난새 뮤직 센터(GMC) 음악홀, 부산광역시
 

 
부산 금난새 뮤직 센터(GMC)를 찾았다. "뮤직 센터는 부산에 본사를 둔 글로벌 와이어 제조 기업인 고려제강 옛 부지 F1963 내부에 자리를 잡았다."고 일간지는 보도했다. 부산 시민이나 도시를 찾은 여행객 모두가 알만할 F1963의 왼쪽 구석에 센터는 2021년 4월 조용히 개관했다.

"가변식 음향제어 장치인 어쿠스틱 배너 등 최첨단 음향설계, (...) 실내악 공연에 최적 울림(RT=1.70s)을 확보했다"는 매혹적인 문구가 보도자료 중 인상적이었다(ibid.). 하지만 금난새 뮤직 센터가 음악 애호가의 화제를 끌 여지는 그리 크지 않다. 연주회의 이벤트성이나 출연자의 스타성이 상대적으로 적고(물론 항상 그렇지는 않다), 공간 규모상 애호가들이 좋아하는 교향악 레퍼토리가 올라오기 힘들다. 금난새 특유의 대중 친화적인 행보를 기괴한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애호가 커뮤니티의 반응과 거부감은 어떤가. 부산이 클래식 애호가의 관심을 끌 여지가 적다는 상황도 여기에 더해진다.

센터의 연주회는 거의 매주 토요일 진행되며 전석 무료로 40석가량을 시간에 맞춰 공개한다. 그 인기가 높아 표를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나 역시 계속 기회를 놓치다가 친한 친구가 예매를 성공한 덕분에 고마운 마음으로 연주회를 볼 수 있었다.

공연 30분 전에 도착한 센터는 공연장 특유의 차분한 분위기에 지하공간의 서늘함이 어우러져 있었다. 산 세리프 느낌의 현대적인 공간 디자인이 서늘함을 강조하는 것도 있었다. 다만 채광에 신경을 쓴 덕분에 공간이 어두운 느낌을 주지는 않았다. 입구 전면 연습실에서는 학생과 아이 여럿이 레슨을 받거나 합주 연습을 하는 중이었다. 악기 소리와 그 집중력은 통유리를 넘어 로비로 전달되었지만 공간 전체의 서늘함을 중화할 정도는 아니었다.
  

 
매표소가 따로 없는 센터에는 네이버를 통한 사전 예매를 확인하는 직원이 돌아다니며 관객을 음악홀로 들여보내고 있었다.

안내를 받아 입장한 직사각형 모양의 음악홀은 무대를 둘러싸게끔 ㄷ자 형태로 의자를 배치해놓은 상태였다. 움직이는 목재 음향판 다발이 벽을 촘촘히 감싸고 정면의 큰 기둥이 시선을 위쪽으로 분산시켜 천장의 볼록한 반사판과 그 너머의 채광까지 눈이 가게 했다. 홀의 상부는 유리 벽으로 구성되어 지상의 현대자동차 갤러리와 가로수, 지나가는 시민을 보이게 했다. 시선은 상호 간 개방되어 근처를 지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홀 내부를 들여다보고 연주를 관람할 수 있었다.
  
교육 중심의 구성, 실내악, 연주자와 청중 간 권위 허물기, 예술 전반을 아우르려는 지향점¹이곳은 여러모로 바렌보임-사이드 아카데미의 베를린 피에르 불레즈 잘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시민을 향한 극단적일 정도의 개방성과 투명함은 베를린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금난새 뮤직 센터만의 개성일 것이다. 이는 사실 근대 음악이 상징하는 개방성이며, 여기에는 이념을 무력하게 만드는 음의 물성, 악보의 투명한 본성, 음악을 통한 소통이 인류를 상승시킬거라는 믿음이 포함된다.  

  
4시가 되자 출입구에서 금난새가 걸어 나왔다. 그가 입은 군더더기 없이 말끔한 수트의 핏과 그 정교한 색 조합이 눈길을 끌었다.
  
자기 명성을 이용할 줄 안다는 점에서 그는 훌륭한 집주인이자 진행자이다. 금난새가 자연스러운 진행과 웃음으로 객석과 무대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곧이어 무대로 나오는 연주자를 소개했다. 도흐나니의 피아노 5중주 1번 전곡이 연주될 예정이었지만, 현악 연주자의 코로나19 확진으로 급하게 프로그램이 바뀌었고, 변경된 프로그램에 더해 예정에 없던 곡들이 사이사이 연주되었다.
   
성큼성큼 걸어온 피아니스트가 슈베르트라고만 소개된 곡을 연주했다(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의 리스트 편곡이었다). 공지되지 않은 선곡이었다. 집중력 있게 흐름을 잘 살린 연주였다. 공간 규모에 비해 스타인웨이 콘서트 그랜드의 음량이 과하게 울린다 싶은 생각은 들었다. 연주가 끝나고 왼쪽에 마스크를 벗고 앉아있던 금난새가 일어나 슈베르트를 위한 박수를 유도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예정에 없는 곡을 연주하는 효과가 꽤나 좋았다. 예기치 못한 놀라움이, 감상자를 상승시키는 측면이 분명히 있었다. 정확히 연주회의 중간쯤, 앙상블의 첼리스트가 다시 나와 바흐의 무반주 프렐류드와 리게티의 무반주 소나타 중 카프리치오 악장을 사전 공지 없이 연주했다. 마치 이 곡들의 초연에 간 듯한 참신함과 흥분이 거기 있었다. 리게티의 변화무쌍한 음향공간이 이곳의 밝은 채광과 조응하며 드나드는 시간을 나는 즐겼다. 곡을 많이 다뤄본 듯 자신감이 서린 연주였다.

한편 즉흥적인 분위기는 가정음악회의 느낌을 주기도 했다.

일반적인 콘서트홀에서 연주회를 내밀하게 관람하기는 힘들다. 관객은 그곳에서 여러 무게와 부담을 스스로 짊어지고, 그 공간과 의례로부터 오는 권위에 흡수되기도 한다. 연주자에 대한 여러 정보와 썰을 머리에 품은 채 관객은 로비에 도착한다. 과도한 예습으로 온 몸이 부푼 채로. 기대가 커질수록 그들의 육체는 긴장하고, 음악과 상관없는 연주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면서 실수를 좇는다. 이때 연주는 음악이 아닌 하나의 퍼포먼스가 된다. 콘서트홀은 일종의 제단이 된다. 이를 수행하는 무대와 조명, 혹은 커튼콜 등의 관습과 함께 말이다. 하지만 그게 음악과 악보에도 새겨진 본질적인 요소인가?

여러 미학 논평가들처럼 현대 콘서트홀의 고전음악 관람 경험이 본질적으로 틀렸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콘서트홀의 그것과 다른 연주 관례를 접하면서 우리가 당연히 받아들이던 연주회의 모습을 다시 생각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오늘의 연주는 소품 위주였지만 아주 내밀하고 자발적인 음악이 오갔다고 평가한다. 청중으로서의 내 경험 중 가장 사적인 종류의 음악회였다. 이런 곳에서 베토벤 현악 사중주와 같은 곡을 들을 기회가 생긴다면 정말 좋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혹은 이런 기획이라던가)

묘한 지점도 있었다. 훌륭한 수완의 금난새는 연주회 전체를 이끄는 인상으로 연주 사이사이 무대로 나와 연주자와 관객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이런저런 '얼음 깨기' 작업을 시도했다. 대체로 관객과 연주자의 웃음으로 연결되는 이 작업은 자기 목적에 걸맞게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이는 직장 상사의 고약한 넉살에 가까워보이기도 했다. 모든 것을 집행하려는 태도에는 아마 예정에 없었을 연주자의 다시 연주하기와 앙코르 유도도 포함된다. 물론 여기에는 양면적인 지점이 있었다. 좋게 보자면 금난새가 연주자를 앞으로 밀수록 그들의 연주가 좋아지는 게 확연히 눈에 띄었다. 그의 경력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교육자의 능력이 바로 그런 것일까? 하지만 개방과 소통이 공간의 정신이라면 이를 집행하는 권위자의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이런 물음을 남길 즈음 금난새는 연주회를 능숙하게 종료했다.
 
1) 연주회 사이사이 금난새는 F1963에 위치한 예술도서관과 현대자동차 갤러리를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