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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잡설/기타

피가로의 결혼에 대한 잡생각들

by Chaillyboy 2014. 10. 5.

기회가 생겨 피가로의 결혼을 계속 듣게 되었고, 들으면서 떠올랐던 잡생각들 (혹은 찾아본 자료 정리)





1. 작곡가와 리브레티스트의 협업을 이야기 할때 가장 먼저 이야기 되는 조합이 바로 모차르트-다 폰테 조합일텐데, 피가로의 결혼을 처음 들었을때 다 폰테의 업적에 의구심을 가진것도 사실이다(한 3년 전?). 아마 산으로 가는 듯한 스토리하며, 3막 이후로 떨어져 보이는 집중력, 근대 오페라의 세련된 리브레토를 먼저 경험한 것등등이 그런 생각을 부추겼으리라. 

결론만 이야기 하자면 이런 생각을 버린지는 오래이다. 피가로의 결혼을 이야기 하면서 모차르트만을, 혹은 다 폰테만을 이야기 하는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다 폰테가 모차르트 이후에 두드러지는 걸작이 없다는 걸로 봐서 모차르트에 지분을 더 줘야겠지만(다 폰테는 신대륙으로 건너가서 그저 그런 삶을 살다 생을 마친다), 그게 다 폰테의 중요성을 폄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2. 원작 피에르 보마르셰의 '광기의 하루, 혹은 피가로의 결혼(Le Folle Journee on Le Mariage de Figaro)'은 출간 전부터 상당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며, 당국의 검열로 인해 집필 4년후 초연될 정도의 문제작이었다. 21세기의 우리에게 섬뜩한 느낌까지 주는 루이 16세의 예언적인 언급(이 끔찍하고 외설적인 희곡은 바스티유가 무너질 때나 상연될수 있을것이다)은 이런 점을 거들 뿐인데, 흥미로운 점은 당대에 이루어진 대부분의 비판이 작품의 외설적인 측면이었다는 점이다. 특히, 부인과 쉐뤼뱅(케루비노)의 미묘한 관계설정이 높으신 분들의 심기를 자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작품의 중심적인 주제에는 사회비판적인 의식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으며, 보마르셰가 처음 지었던 '바람둥이 남편(L'Epoux Subourneur)'이란 제목을 보면 명확해진다. 작품은 마치 양반이 희롱당하는 봉산탈춤을 연상시키며, 19세기 말 흔들렸던 조선의 신분제와 프랑스 혁명 전후의 신분구조역시 상당히 유사성을 가진다.[각주:1]


3. 그러나 보마르셰가 단순히 계급구조의 문제만을 제기하지는 않았고, 이는 모차르트-다 폰테의 피가로로 오면서 더욱 견고해진다. 오페라에서 보이는 주제는 인간을 억압하는 각종 관습에 대한 전방위적인 비판에 가까운데, 이는 수잔나-부인-케루비노 과 피가로-백작-바르톨로로 나뉘는 남녀 대립구도에서 하나씩 확인할 수 있다. 


4. 중심인물이 누구냐는것 만큼 바보같은 질문은 없지만, 음악을 들여다보면 이 점은 명확해진다. 서곡에 이어지는 첫 이중창에서 피가로와 수잔나는 상반되는 선율을 가진다. 질서있고 계획적인 피가로의 선율(심지어 피가로는 침대치수를 '측정'하고 있다.),과 수잔나의 부드러운 선율(모자가 예쁘냐고 물어보는)은 대립적인 음악적 장치이다. 결과적으로 피가로가 수잔나의 외침에 대답하면서 수잔나의 하행선율을 노래하며, 이는 초장부터 작품에서 수잔나가 주제-음악적 우위를 가질 거란 점을 보여준다. 이후 내용을 살펴봐도 단순한 피가로의 시도들과 계획들은 모두 실패하며, 이 똥을 수잔나가 모두 처리하는 느낌이 아닌가.


4-1. 우위는 4막 26.27번 아리아에서도 드러난다. 4막 중반부는 피가로의 아리아(No.26 Tutto è disposto)와 수잔나의 아리아(No.27 Deh vieni, non tardar)가 병렬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수잔나가 백작에게 넘어갔다고 생각하는 피가로는 여자는 모두 사기꾼이고 교활한 여우라는 아리아를 분노에 찬 목소리로 노래한다. 그러나 아리아는 설득력 있다기 보다는 우스꽝스럽게 묘사되며, 아리아 끝부분의 3번의 호른 팡파레(horn의 동사형인 hörnen은 '남편을 속여 간통하다'는 뜻을 가진다)는 열창을 끝낸 피가로를 대놓고 조롱하는듯 보인다. (저 새1끼 바람났대~ 바람맞았다고 한다는 소리 들어봐~ 느낌) [각주:2]

이어지는 수잔나의 아리아는 완전히 대조적인데, 피가로를 골려줄거라는 레치타티보 뒤에 등장하는 아리아는 목가적인 분위기 속에서 상상의 연인(혹은 백작을 의도하고)에게 노래한다. 피가로를 골려주는듯한 아리아는 중간에 6/8박자로 바뀌면서 진지한 사랑노래로 바뀌는데, 이는 상상의 연인이 진짜 연인인 피가로로 바뀐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바이올린의 피치카토는 연인을 생각하는 심장박동을 떠올리게 한다. 

이 아리아는 여러 측면에서 세리아적인 분위기를 내고 있는데, 정신없는 이 오페라의 세리아적인 아리아를 부르며 순수한 사랑을 노래하는 수잔나를 보고 있자면 숭고한 느낌까지 받게 된다.(27번 아리아는 오페라의 마지막 아리아이다)


4-2. 작품의 모든 중창에선 수잔나가 등장한다. 모든 중창에서 수잔나는 다른 감정과 다른 역할을 드러낸다(성악이 기악처럼 사용되는 피날레 앙상블은 뺴고) 이쯤되면 명확해 보인다.


4-3. 이런 의미에서 작품의 가장 중요한 인물은 수잔나라고 생각하는데, 제목 버프를 받아서인지 보통은 피가로에 캐스팅을 집중하는 느낌이다. 


5. 피가로의 결혼에는 흥미로운 인물이 한 명 등장하며 이는 돈 바질리오이다. 모두가 욕망과 관계의 늪속에서 허우적대지만, 유일하게 욕망을 관조하는 위치에 서있으며, 대놓고 현학적인 멘트를 날리지 않는가. (여자는 다 그래! 부터 4막의 철학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25번 당나귀 가죽 아리아) 이 부분에서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할텐데, 게이로 바꿔버린 맥비커의 연출부터 케루빔의 장난에 유일하게 안놀아난다는 구트의 연출 모두 납득할만하다고 생각한다. 


6. 케루비노는 작품의 인물들중에 관계보다 욕망에 치우친 유일한 인물이다. 모두들 욕망에 따라 움직이지만, 관계란 덫에 걸려 허우적거린다. 그런 요지경 속에서 케루비노는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느낌. 가장 덜 인간적인(인간계에서 반쯤 벗어난 인물같다는 뜻) 인물일텐데 보마르셰는 원작 희곡 서문에서 쉐리벵을 대놓고 '사랑스러운 젊은 자연' 으로 표현한다. 외설적인 인물로서 가장 심한 비판을 받았던 쉐리벵의 본질은 관습과 도덕에 의해 억눌린 성욕에 대한 변호로 보이며, 모차르트는 이런 설정에 맞게 케루비노에게 상당히 목가적인 반주와 선율을 붙인다. 문명화와 섹스는 양립할 수 없는 측면이 있지 않은가.(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생각해보자)

피가로의 결혼이 단순한 계급비판적 이야기가 아님은 이런 부분에서 드러난다. 케루비노의 두 아리아(No.6 Non so più cosa son, cosa faccio ,  No.11 Voi che sapete)는 단순한 사랑노래가 아닌, 도덕과 계몽이란 이름으로 억압된 인간 본성에 대한 찬가라고 생각한다.


7. 피가로는 어떤 인물이어야 하는가? 먼저, 3번 카바티나 Se vuo ballare 에서 볼 수 있듯이 억압되는 인간성과 그 속에서 종종 표출되는 폭력성이 드러나야할 것이다.(이 카바티나는 음악적으로 너무나도 탁월한 모차르트의 역량이 드러나는 하나의 예이다) 

그러나, 단순하게 섹시한 야인으로 묘사되는건 회의적인 입장인데, 전작인 이발사에서 알수 있듯이 피가로는 마을의 해결사, 넉살좋은 동네 아저씨의 모습도 분명하게 드러난다.(원미동 사람들 김반장?)

그런 의미에서 시에피랑 프라이 반씩 섞어놓은 그런 사람이 있으면 좋을텐데,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 


8. 모차르트가 많은 수의 오페라를 이탈리아어 리브레토를 이용해서 쓴것은 당대의 관습 내지는 흥행을 위한 방식같아보이는데, (아바의 영어버전 노래를 생각하면 되려나?) 모국어가 아닌 이탈리아어에 이렇게 절묘한 음악을 붙인거에는 그냥 경의를 표할 뿐이다.


추후 추가예정


참고자료: 

권송택(2009), 모차르트 오페라의 관습적 이디엄, 서양음악학 Vol. 12 No.1

김세환(1998), 피가로의 결혼의 흥행 실적 분석, 불어불문학 연구 Vol. 36 No. 1

김세환(2000), 18세기 신문비평에 나타난 [피가로의 결혼]의 부도덕성에 대한 비판, 불어불문학 연구 Vol. 44 No. 1

김미영(2009), 모차르트의 오페라 부파 [피가로의 결혼]에 나타난 희극성: 그 사회비판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서양음악학 Vol. 12 No.2 

이남재(1995),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에 나타난 음악적 요소와 음악외적 요소의 관계, 연세음악연구 Vol.13



  1. 희곡-오페라 모두에서 피가로의 결혼을 즐겼던 관객들은 대부분 부르주아 계급이란 점은 주목할 만하다. [본문으로]
  2. 실제로 모차르트는 이런 종류의 음악적 알레고리를 그의 오페라에서 상당히 자주 활용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