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닌 드보르자크 : 정오의 마녀 Op. 108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 죽음의 섬 Op. 29
구스타프 말러 :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 中
- 라인강의 전설(Rheinlegendchen)
- 아름다운 트럼펫 소리 울리는 곳(Wo die schoenen Trompeten blasen)
- 지상의 삶(Das irdische Leben)
- 근원의 빛(Urlicht)
- 기상나팔(Revelge)
- 북치기 소년(Der Tamboursg'sell)
바리톤 : 마티아스 괴르네
홍석원,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2023년 4월 1일,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 통영시
프로그램의 구성만 놓고보면 간주곡적인 느낌이 들었다. 아마 2부를 구성하는게 '대곡'이 아니라는 이유였겠다. 물론 이것은 위험한 발상이거니와(말러의 초기 가곡같은 생생한 세계가 다른 작품에 어디 있기나 한가), 모순적이게도 나는 이 공연과 같은 구성에 담긴 깊이를 좋아한다. "콘서트 콘서트"의 정형화된 구성(에피타이저 - 독주쇼 - 머곡 심포니)이 주는 식상함을 싫어하는 내 마음의 힙스터와 '박물관 콘서트'을 뿌리 깊게 학습한 나의 안온함이 충돌하는 것이다.
익숙한 얼굴들 사이를 헤치며 단단한 체격의 장신인 홍석원이 등장했다. 홍석원은 어떤 곡에서든 믿음을 주는 지휘자이다(쇼스타코비치, 브루크너, 베르디 등). 그는 극장 경력을 잘 살린듯한 통솔력으로 1부를 훌륭하게 지휘했다. 자기 완결적인 10-20분 가량의 드라마를 병렬시키는 1부의 구성에서 홍석원은 각 드라마의 큰 그림을 명확하게 설정한 다음 클라이막스까지 에너지를 착실하게 누적하는 접근법을 택했다. 다만 '죽음의 섬'의 경우 첫 번째 클라이막스에서 음악적 에너지가 완벽하게 모이지 못한 채로 발산되었는데, 이것이 지휘의 문제인지 연주자의 문제인지 곡이 가진 결점인지는 모르겠다. 또한 교향시이기도 한 이 곡들의 풍부한 묘사-세부사항이 그 자체로 생명력을 가지지는 못했다고 느꼈다.
하도 좋은 오케스트라(올해의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먼저 들어버리는 바람에 국립심포니 입장에서는 불리한 측면도 있었다. 이 공연을 단독으로 서울에서 들었다면 좋은 이야기만 적었을지도 모르겠다.
괴르네의 기량이 전성기를 지나며 꺾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사적으로나 평단의 평으로나 종종 들어왔다. 다만 오늘 연주만 놓고 봤을 때는 그러한 평가에 동의할 수 없다. 괴르네는 목소리는 정말 필요한 순간이 아니면 강하고 단단한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의 발음은 모서리가 둥글게 깎여있는 인상이었다. 하지만 먼 곳에서 찾아온 듯한 독특한 발성은 청중을 곡의 분위기로 서서히 끌고간다는 점에서 도취적이며 은근하다.오늘 들은 뿔피리는 2000년에 작업한 뿔피리(샤이/콘체르트헤바우, Decca)나 이후의 실황(2009년 가티/프랑스국향, 2017년 호넥/피츠버그심포니 등)과 해석과 그 퍼포먼스가 대체로 유사했다. 스튜디오와 비교했을때 오늘 연주는 가창이 더 희미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곡의 특징으로 비춰볼때 세부적인 해석의 변화일 가능성도 커보인다. 스튜디오의 '북치기 소년'이 더 기똥찬 목소리이긴 하지만 이것은 샤이의 선명한 반주 영향을 받은 것도 있을테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북치기 소년'은 오늘 연주를 포함하여 스튜디오 이후의 더 미묘하게 옅어지는 듯한 목소리가 어울려보인다.
문제는 우리다. 성악 공연은 잊을 만하면 이런 일이 일어나는데.. 첫 곡부터 곡이 끝나자마자 박수가 나와서 당황한 모습의 괴르네를 보는 심정이란... 여기서 능숙하게 분위기를 잃지 않고 관객에게 인사를 건네던 괴르네도 두 번째 곡의 박수에는 침묵해달라는 몸 동작을 긴급하게 취했다. 3곡과 4곡은 끊김없이 연주되었지만 결국 마지막 6곡이 끝나자마자 분위기를 미리 깨버리는 미적지근한 박수에 괴르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고통스러운 순간..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환호가 이어졌지만 괴르네가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였을지는 잘 모르겠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 리뷰의 초고는 통영 모 카페의 괴르네 선생 맞은편 좌석에서 쓰였습니다. 대가의 기운 잘 받아서 남은 기간 열심히 후기 남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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