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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잡설/공연 후기

온드레이 아다멕 : 디너 - 23년 통영국제음악제 10일차

by Chaillyboy 2023. 4. 15.

온드레이 아다멕 : 특히 희거나 검은 결과물
온드레이 아다멕 : 디너

미술 : 샤를로트 기베
로메로 몽테이로 : 에어머신

온드레이 아다멕, 앙상블 모데른

 


2023년 4월 9일, 통영국제음악당 블랙박스, 통영시

축제 마지막 날이 되었다. 오전 11시에 시작하는 온드레이 아다멕의 무대작업을 보러 음악당으로 향했다. 블랙박스 로비에는 마르그리트 뒤라스와 윤이상의 생애를 병기한 양혜규의 작업이 인쇄되어 있어 이것을 읽으며 여유를 즐겼다. 명료한 구성이 유난히 화창한 오늘의 날씨와 어울리는 듯했다. 양혜규의 작업을 통해 그동안 몰랐던 윤이상의 참여(engeging)적인 모습을 알게 되었다. 고요한듯 에너지를 발산하는 윤이상의 작품세계에서 단순하게 복기할 수 있는 사실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온드레이 아다멕의 작품을 이번 음악제를 통해 처음 들었다. 통영에 오기 전 들은 몇 가지 작품에서는 재치 넘치고 유연하게 들리는 음향이 유난히 인상적이었다. 현대음악을 듣다보면 나름의 편견을 강화하는 곡들이 많다고 생각하는데(다시 말해 진부한), 쌔한 소리가 답답하게 깔리다 우르릉쾅쾅하는 식의 그런 일련의 곡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이 정형화된 어법 속에서 각자의 개성을 섬세하게 구별할 정도로 내가 훈련 받은 사람도 아닐 뿐더러... 아무튼 아다멕의 경우 그런 느낌이 전혀 없어 좋았다. 단단한 구성이 인상적이었던 작년 음악제의 앤드류 노먼의 곡들보다 조금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도 이 사람의 미덕이겠다 싶었다.

무대는 커다란 천으로 장치들이 가려져 있었지만 뭐랄까 난장판이 된 채로 시작을 기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평소처럼 다양한 정체성의 관객들이 한데 모이고 시간이 되자 조용하게 블랙박스 전체가 어두워졌다. 파란 조명이 무대를 살짝 비추더니 전면의 어떤 기계 뒤에서 한 사람이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푹푹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에어머신을 연주할 가브리엘 몽테이로였는데, 기계 뒤에 몸을 숨긴 채로 고무장갑이 묶여있는 관들을 기계 위쪽에 잽싸게 끼웠다. 기계가 리듬에 맞춰 공기를 내뿜고, 관을 지나 고무장갑이 부풀어오르며 다양한 소리가 들렸다. 퓍퓍거리는 소리는 긴장을 주면서도 익살스러웠는데 어떤 고무장갑이 빵! 하고 터질 때 이런 인상은 정점을 찍었다.

 

 

몽테이로가 연주하는 에어머신은 전자콘솔로 리듬과 바람의 양 등을 설정할 수 있는 기계로 바람이 지나가는 상면 배출부에 다양한 관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소리를 냈다. 단순히 소리를 내는 악기를 넘어 일종의 무대장치로서 에어머신은 다양한 시각 효과 또한 눈에 띄었다. 소리와 이러한 효과 때문인지 에어머신이 일종의 기계 광대같다는 느낌도 있었다. 오늘 연주는 정말 다양한 관을 사용했는데, 그러니까 에어머신도 거의 오르간 수준으로 다양한 음색을 만들어내지 않겠나 싶었다. 때로는 전자음 같은 독특한 음향을 만들기도 했지만 이것들이 모두 자연음이라는 사실이 되게 기묘했다.

 

프로그램북을 읽어보니 아다멕이 에어머신의 아이디어를 얻은건 진공청소기라고 한다.

 

에어머신 곡이 끝나고 무대가 정리되자 곧바로 다음 곡이 연주되었다. 두 번째 곡 "디너(Le Dîner)"는 저녁 먹는 소리를 음악으로 재해석한 무대 작업으로 화가 샤를로트 기베의 작업을 그린 영상과 그가 즉석에서 그린 그림, 그리고 그의 퍼포먼스가 여기 결합되었다. 정방형의 커다란 식탁에 지휘를 맡은 작곡가와 앙상블의 단원들이 여럿 착석하고, 그 양 옆에는 하프, 피아노 등의 덩치 큰 악기가 위치했다. 작품은 식사의 순간을 순서대로 따라가며 중간중간 미술 작업들이 병치되는 식이었다. 때로는 미술과 음악이 결합되기도 했는데, 앙상블 모데른의 단원들은 기베가 만든 오브제를(접시에 집어넣은 물감 등) 연주 중 활용하기도 했다.

 
구상과 연주 모두 좋았지만 이상하게 음악적 에너지가 잘 모이지는 않는 느낌이었다. 또한 미술 작업들이 조금 느슨하게 음악에 걸려있다는 느낌도 들었는데, 이것은 음악가의 작품이니 어쩔 수 없었나 싶기도 하다. 모두가 바그너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구성적 측면에서 효과적인 시도는 많았다고 본다.

 

ps. 연주가 끝나자마자 아쉬운 마음에 로비에서 파는 온드레이 아다멕의 음반(Wergo)을 샀다. 이 사람한테는 더 재밌는게 있을 것 같은 느낌? 그 음반을 오디오에 걸어놓은 채로 나는 이 후기를 마치고 있는데.. 정말 좋다. 어차피 여기까지 와서 이 리뷰를 읽는 분들이라면 현대음악에 거부감은 덜하실테니 기회 되면 꼭 찾아 들어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