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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잡설/공연 후기

광주시립교향악단 375회 정기연주회(헨델, 하이든, 베토벤) - 2023년 9월 1일 광주예술의전당

by Chaillyboy 2023. 9. 3.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 : "솔로몬" "시바 여왕의 도착"
요제프 하이든 : 첼로 협주곡 제1번 C장조 Hob. VIIb:1
(앙코르)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 무반주 첼로 모음곡 3번 BWV 1009 프렐류드
가스파르 카사도 : 무반주 첼로 모음곡 3번 "Intermezzo e Danza Finale - a Jota"
 
루트비히 판 베토벤 :  교향곡 제4번 B-flat 장조 Op. 60
(앙코르)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 K.525 中 1악장 알레그로
 
첼로 : 최하영
홍석원, 광주시립교향악단
 
2023년 9월 1일, 광주예술의전당 소극장, 광주광역시
 
9월에 접어들자 저녁이 선선해졌다. 광주예술의전당은 서광주IC와 붙어있어 광주의 대문처럼 느껴진다. 참 반가운 곳. 근처 고속버스 정류장에서 내려서 급하게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번잡한 도심지에서 시작되는 예당의 계단을 끝없이 걸어가자니 고요한 느낌이 점차 짙어졌다. 업힐에서의 육체가 지쳐가며 점점 고요한 상태가 되는 느낌이라 참 오묘했다. 탁 트인 풍경 속에 대극장이 계단 전면으로 나타났고 그 오른쪽에 자그만한 소극장이 붙어있었다.
 
386석의 소극장은 객석과 무대가 단 없이 접해있었는데, 베를린 피에르 불레즈잘을 반으로 잘라 지붕만 씌워놓으면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음향을 걱정했는데 자그마한 규모에 맞게 선명한 소리가 있는 그대로 전해져 연주를 즐기는데 문제가 없었다.

헨델의 잘 알려진 곡으로 오케스트라가 몸풀기를 마치자 최하영이 무대로 등장했다.

최하영의 연주는 다채로운 음색이 마치 첼로를 여러 차원으로 넓혀놓은 느낌을 주어 듣는 내내 즐거웠다. 무겁지 않은 프레이징과 현대음악에서 가져온 듯한 새로운 소리가 평범하게 들리기 쉬운 곡을 새롭게 만들어냈다. 이어지는 앙코르는 최하영의 연주 경향을 두 개의 키워드로 요약하는 느낌이었는데,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에서 그는 유연한 호흡으로 춤사위같은 자유로움을 펼쳐냈고, 카사도의 무반주 독주곡에서는 폭이 넓은 소리으로 기교적 강렬함과 음 하나하나의 의미를 모두 살려냈다. 연주 전반이 고전적 양식이 어떻게 새로워질 수 있는지에 대한 좋은 답변 같았다.

베토벤 교향곡 4번에서는 음반으로 들을 땐 눈치채기 힘든 곡의 개성이 직접적으로 드러나 참 인상깊었다. 베토벤스러운 강렬한 음향은 3, 5번 등의 여타 유명 교향곡과 크게 다르지 않으나, 이 곡에는 단촐한 구성(플룻 1대, 트롬본 없음 등)이 주는 묘한 날렵함이 있다. 소극장 음향과 더불어 이에 맞는 작은 편성 덕분인지 오늘 연주는 정교하면서도 강렬한 소리를 그대로 보여줄 수 있었다. 1악장과 4악장의 실내악적인 얽힘이 그대로 살아났고, 현악과 더불어 여타 파트도 모두 훌륭한 앙상블을 만들었다.  여기에는 홍석원 지휘자의 공이 컸다고 보는데, 그는 긴장감을 꾸준히 끌어올리면서 필요할 때는 과감히 풀어주는 지휘법을 통해 단원들이 확신에 차서 연주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다만 작품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서정적인 흐름을 살리는 것은 다소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2악장은 음향에 몰두하는 단편적인 접근으로 인해 대화조의 구성이 잘 드러나지 못했고, 3악장 역시 형식적인 대비가 깊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또렷한 방향 설정으로 확실한 결과를 보여준 오늘 같은 연주에서 나는 큰 감동을 느낀다. 베토벤 교향곡 실연이 만족스럽기는 참 쉽지 않다고 느끼는데, 오늘 연주는 참 좋았다.

(아, 그리고 플룻 주자는 칼을 갈고 나왔는지 정말 훌륭한 연주를 들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