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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들(텐슈테트, 켐페, 라이너, 주이트너, 아담 피셔) - 최근 감상이었던 것

by Chaillyboy 2023. 3. 28.

베토벤 교향곡 9번 - 텐슈테트/런던 필하모닉 (1985, BBC) - 2악장까지만 듣고 껐다. 허탈감에 찾아보니 더 가디언에서 별점 3/5점 줬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영국 매체에서 버린 영국산 연주라면 더 볼 필요 없을듯. 물론 텐슈테트는 같은 오케스트라와 절치부심해서 몇 년 뒤 기어이 명연을 만들고야 만다.
 

브루크너 교향곡 4번 - 켐페/뮌헨 필하모닉(1975, BASF/Scribendum). 섬세하게 듣지 않으면 평이한 연주처럼 들린다. 요리할 때 틀어놓았다면 '응 끝났네' 하고 그냥 넘길만한 음반. 그럼 다시 들어보자. 도입부가 조심스럽게 스며든다. 머뭇거리는 템포는 독일 지휘자들이 선호하는 전진하는 템포(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는 전혀 다른 정체성같다. 이어지는 플루트의 독주는 현악 트레몰로와 정밀하게 균형을 맞춘다. 아티큘레이션은 강하지 않다. 이런 도입부는 곡 전체에서 보여줄 해석이 모두 드러나는 전주곡처럼 느껴진다. 툭 하면 쓰는 비유라 여기서 또 쓰기 조심스럽지만 마치 존 포드 영화 같은 것이다. 명장면에 집착하지 않고 한 장면이 다른 장면보다 두드러지는 걸 막아 표면적인 평온함을 유지하는 게 아닐지(프랑수아 트뤼포). 이건 오페라 지휘자의 감각이라 해석해도 될 것이다.
 
이후에 목관 금관이 어떻게 존재감을 드러내는지에 대해 길게 쓰던 와중에... 들어버린 같은 음반의 5번은 4번과 완전 다른 경향처럼 들려서 나 혼자 헛소리했다는 느낌을 받고 말았다. 다 지우고 일단 이 정도의 흔적만 남겨놓는다. 
 

프리츠 라이너/시카고 심포니의 스페인(1958/1963, RCA). 1958년에 녹음된 "스페인"음반은 파야의 삼각모자 모음곡, 짧은 인생 발췌, 알베니스의 이베리아 발췌, 그라나도스의 고예스카스 간주곡이 들어있다. SACD 재발매에서는 "스페인"에 레온틴 프라이스가 합류한 파야의 사랑의 마술사(1963, RCA)를 커플링했다.
 
프라이스의 목소리가 좋다. 프라이스를 좋게 들은 적은 카라얀 크리스마스 앨범밖에 없는 것 같다. 생각보다 이런 류의 곡에 잘 어울리나보다(카르멘을 다시 들어볼까?). 라이너의 반주도 찰떡같다. 한편, 삼각모자 모음곡은 집중력이 마지막 악장에서 풀어지는게 아쉽다.

모든 곡이 기능적으로 완벽에 가깝게 연주되었다. 여기서의 시카고 사운드는 그 자체로 완결적인 무언가처럼 들린다. 최근에 계속 하는 생각 중 하나는 미국 오케스트라가 독자적으로 발전한 사운드를 단순히 유럽 오케스트라(그러니까 독일)의 카피캣 정도로 생각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히틀러의 집권과 전쟁으로 넘어온 유럽 (대부분 유대인) 음악가들이 미국 음악계의 수준을 끌어올렸다는 흔한 이야기를 떠올려본다. 나는 이게 틀린 말이 아닐거라 믿는다. 하지만 그 유명한 시카고 브라스와 당시 잘나가던 미국 오케스트라의 단원 풀을 보면 생각보다 토종 미국인이 정말 많지 않나. 그래서 '시카고가 브루크너까지는 못해도 그래도 좋은 오케스트라'와 같은 말이 그렇게 설득력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물론 지휘자 풀만 따져본다면 이민자가 끌어올린 미국 음악계라는 명제는 절대적으로 타당할 것이다. 마지막 유럽 이민자들과 피난민이 미국에 도착할 무렵 가장 위대한 양키 지휘자(윌리엄 링컨 크리스티)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관현악집 - 오트마 주이트너/슈타츠카펠레 드레스덴(Profil). 우와... 상상을 초월한 사운드. 위에 독창적인 미국 오케스트라 사운드 어쩌고 적어놨는데 정작 이런거 들어보면 또 할 말이 없어진다. 미국 오케스트라는 죽어도 이런 소리 못 냄! 음색을 설명하는건 되게 힘든 일이다. 이 음반은 더 많이 듣고 고민하면서 다른 글을 준비하는걸로.. 
 
 
cf. 대회에서 받은 Honorable Mention은 Award인가요 아닌가요?(출처 : 네이버 미국 유학 카페)
 

 
모차르트 교향곡 41번 - 아담 피셔/잘츠부르그 모차르테움 오케스트라(2023, 한경arteTV). 한 주 스트레스가 심할 땐 토마토를 구겨넣고 파스타 소스를 만들면서 금요일을 불태운다. 1악장 말미부터 뒤늦게 틀었는데 평소보다 파스타 소스가 잘 나온걸 보면 모차르트 이펙트인듯.
 
한경TV의 녹음은 그 악명높은 KBS보다 구린 순간들이 있어서 뜨악했다. 예를 들어 파스타 소스를  만들며 듣는 와중에 나는 연주에 내추럴 트럼펫이 쓰인 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대충 들은 내 잘못 같지만서도 이건 한경의 녹음기사들한테 책임전가를 해야겠다. 한편 모차르테움 오케스트라는 모차르트 전문 오케스트라를 표방하는 것치곤 항상 소리가 거칠다(아마 모스틀리 모차르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다음으로 소리가 안 좋을듯). 이 연주 역시 그런 성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편이다. 그럼에도 곡에 대한 연주자들의 이해도는 뛰어난 편이라고 짐작된다. 지휘자가 큰 틀을 그리면 연주자들은 훌륭하게 세부사항을 메워간다. 
 
앙코르의 피가로 서곡은 정말 신포니아 느낌으로 가줘서 즐겁게 들었다. 이 즈음에는 파스타 소스를 다 끓여서 이미 탈리아텔레 면에 비비고 있었을 텐데... 소스를 조금 더 늦게 끓였으면 신포니아 풍의 더 야무진 맛이 나왔을까 싶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