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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잡설/번역 - 네빌 카더스 평론19

카더스 평론 18: 잘츠부르크의 "명가수" - 토스카니니가 통제하다 (1936년 8월 28일) 잘츠부르크의 “명가수” – 토스카니니가 통제하다 (1936년 8월 28일)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브루노 발터, 슈테판 츠바이크. 1936년 잘츠부르크) 1936년 8월 8일 실황 녹음 미국과 잉글랜드의 부자 방문객들이 전통의상을 구매하고 깔끔하고 비싼 자가용으로 산을 오르는 등의 기행을 벌이지만, 여전히 잘츠부르크는 잘츠부르크다. 축제가 한물갔다는 보도자료에 진실은 없다. 물론, 토스카니니가 가져온 율법이 이곳의 편안하고 상냥한 분위기에 어울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페라와 음악축제로서 잘츠부르크의 질이 떨어졌다는 말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나는 며칠간 저녁 공연을 관람했다. 미학적인 성취와 기술적인 마감 모두 세계 어느 곳에서든 쉽게 뛰어넘기 어려운 수준이었고, 잉글랜드 극장의 성과는 잘 봐줘야 아마추.. 2016. 12. 15.
카더스 평론 17: 신들의 황혼 (1957년 10월 7일) 신들의 황혼 (1957년 10월 7일) Opera지 1957년 10월호 전반적으로 탁월했던 “신들의 황혼” 연주였다. 루돌프 켐페가 바라본 반지는 균형감각이 풍만했고, 시작부터 끝을 점쳐볼 수 있었다. “신들의 황혼” 대단원의 클라이맥스에서 켐페는 자신이 “라인의 황금”에서 보여준 작은 규모의 처리가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는 걸 보여주었다. 차분했던 “발퀴레”의 몇몇 장면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비록 기나긴 공연동안 금관군이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용맹했던 코벤트 가든 오케스트라를 탓하지는 말자. 이 나라에서 바그너의 3막을 위해 쌩쌩한 관악주자들을 따로 부르는 대륙의 호화로움을 찾을 여유는 없으니. 켐페는 브륀힐데와 지크프리트의 황홀하게 빛나는 순간부터 하겐과 기비훙족의 어두칙칙한 공간 모두를 섬세하게 .. 2015. 3. 12.
카더스 평론 16: 발퀴레 – 비르기트 닐손 (1957년 10월 9일) 발퀴레 – 비르기트 닐손 (1957년 10월 9일) 57년 9월 Opera지 발췌 금요일 “발퀴레” 공연이 있었다. 연주는 악보에 충실했으며, 브륀힐데의 등장이 런던을 뜨겁게 달궜다는 소식이 금새 퍼졌다. 비르기트 닐손은 명료하고 자연스러운 목소리를 지녔으며 때론 청자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수려한 외모는 덤이다. 약간의 연륜만 더 쌓인다면 지금에 비해 훨씬 심원한 저음을 들려주리라. 닐손은 이미 사려 깊은 성악기교를 구사하며, 보탄이 그녀를 벌하던 뛰어난 장면이 그러했다. “O sag’ , Vater! Sieh mir ins Auge”에서 닐손은 파토스를 밑바닥부터 자연스럽게 끌어냈으며, 지금 없애려 하는 벨중을 창조한 건 보탄 당신이라고 알려주는 “Du zeugtest ein edles Geschlec.. 2015. 3. 6.
카더스 평론 15: 라인의 황금 – 정렬과 균형에 대한 켐페의 감각 (1957년 9월 27일) 라인의 황금 – 정렬과 균형에 대한 켐페의 감각 (1957년 9월 27일) Opera지 1957년 9월호 수요일 밤. 코벤트 가든 오페라 하우스가 또 다른 “반지”를 보여주기 위해 바닥을 치우고 새 단장을 했다. 바그너의 장대한 4부작. 신성에 대한 염원과 권력에 대한 인간적인 욕망 사이에 벌어지는 영원한 갈등. 갈등의 중심에서 피어나는 도덕 법칙은 고귀한 피조물과 그들의 세계까지 자기 방식대로 깨뜨린다. 약동하고 증폭되는 시원(始原)의 동력이 “라인의 황금”의 세계를 힘껏 열어재낀다. 전주곡의 첫 E-flat 화음은 깊은 곳에서 물 흐르듯이 피어오르며, 모든 게 시작된다. 여기 피트에서 조화로운 우주의 원형질이 솟아오른다. 모든 분노와 법열, 다가올 종말의 시발(始發)이다. “반지”는 오케스트라에게 모.. 2015. 3. 3.
카더스 평론 14: 바그너에 대한 상념 (1955년 6월 4일) 바그너에 대한 상념 (1955년 6월 4일) 1957년 실황(테스타먼트반) BBC 덕분에 런던 밖에 사는 많은 이들이 코벤트 가든의 연례 “반지” 공연을 감상 할 수 있게 되었다. 방송국에 감사를 표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런 생각이 들기도. 수 없이 많은 음악 애호가들이 “반지”의 진수를 깨닫지 못한 채 집에서 평생을 보냈다는 게 아닌가. “반지”는 실제로 보기 전엔 믿을 수 없다. 바그너 마법은 전혀 깨지지 않았으니. 바쁜 현대 사회에도 여전히 열광적인 청중이 전 세계에 퍼져 있고 그들은 바그너가 말하는 터무니 없는 헌신을 몸소 실천할 것이기 때문이다. 상상해 보라. “저녁식사? 집어치워. 일찌감치 일에서 손떼고 여기, 어둠으로 뛰어와. 그 속에 앉아 음표, 나아가 단어, 단어, 또 단어에 귀를 기울.. 2015. 3. 1.
카더스 평론 13: 풍요로움 (1968년 8월 30일) 풍요로움 (1968년 8월 30일) 슈베르트 피아노 삼중주 내림 마 장조가 울려 펴지던 저녁. 번뜩이는 천재성이 음악을 완성했다. 가슴이 품고 있던 감정이 격하게 떨렸다. 이스토민의 손가락이 건반 위에서 번쩍이며 흐르는 선율 속으로 태양빛을 불어 넣었다. 그의 강한 제어 덕분에 아르페지오와 화음은 살아 움직였다. 셈여림은 한 순간도 빠짐없이 계산되고 음악이 가진 골격과 연결되었다. 여기에 스턴의 바이올린, 그리고 로즈의 첼로가 현악선율을 덧붙이며 기쁨으로 화답했다. 슈베르트는 어느 때 보다 사랑스럽고, 화려하게 향기를 품었다. 꽉 짜인 소나타 형식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온실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든 야생화, 비너발트에서 자란 듯 자연 그대로의 우아함을 보이는 음악 속에선 우리가 숭배하는 어떤 음악 형식.. 2015. 2. 26.
카더스 평론 12: 말러가 승리한 이유 - 야샤 호렌슈타인과 위대한 9번 교향곡 (1957년 1월 15일) 말러가 승리한 이유 – 야샤 호렌슈타인과 위대한 9번 교향곡 (1957년 1월 15일) 1966년 런던 심포니 실황. 수요일 페스티벌 홀. 야샤 호렌슈타인이 지휘한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뛰어난 연주 아래 말러는 강력한 승리를 쟁취했다. 나는 많은 9번 교향곡을 들었고, 몇몇은 꽤 유명한 말러리안이 지휘했다. 하지만 단언컨대 오늘만큼 악보 속으로 깊숙하게 들어간 적은 없다고 확신한다. 음과 리듬, 팽팽하게 긴장된 현악, 목관의 파토스. 모든 게 시곗바늘만치 정확했다. 금관과 호른은 낭만의 봄바람부터 안치실의 싸늘한 찬바람까지 다양한 소리를 소화했다. 말러의 목소리, 과장 좀 붙여 말러의 유령소리. 어떤 놀라운 최면을 걸었길래 지휘자는 오케스트라가 낼 수 없었던 그런 소리를 만들었을까. 연주가 끝나자 .. 2015. 2. 23.
카더스 평론 11: 제론티우스의 꿈 (1939년 2월 10일) 제론티우스의 꿈 (1939년 2월 10일) 1945년 4월 스튜디오 녹음 그저 삐까번쩍한 솔리스트나 보려고 할레 공연을 찾던 그들이 오지 않았기에 어젯밤 청중은 고요함 속에서 가장 아름다웠고 기억에 남을 연주로 엘가의 걸작을 들을 수 있었다. 깊은 장면을 일궈낸 모든 예술가들이 그 경험을 자랑스러워 하리라. 말콤 사전트 박사는 그 어떤 때보다 눈을 뗄 수 없는 순간을 만들어 냈다. 물론 사소한 실수들이 있었고, 때때로 광활함이 부족해 보였다. 육신 너머의 황홀함, 작은 합창단이 부른 천사들의 탄식으로부터 나와야 할 광활함 말이다. 또한 바이올린은 “O gen’rous love”가 울리는 법열의 순간, 순수한 high E 음을 선보이는데 실패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귀를 잡아 끄는 웅변적인 노래를 보여준 .. 2015. 2.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