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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잡설/번역 - 네빌 카더스 평론

카더스 평론 14: 바그너에 대한 상념 (1955년 6월 4일)

by Chaillyboy 2015. 3. 1.

바그너에 대한 상념 (1955 6 4)



1957년 실황(테스타먼트반)[각주:1]


 

BBC 덕분에 런던 밖에 사는 많은 이들이 코벤트 가든의 연례 반지공연을 감상 할 수 있게 되었다. 방송국에 감사를 표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런 생각이 들기도. 수 없이 많은 음악 애호가들이 반지의 진수를 깨닫지 못한 채 집에서 평생을 보냈다는 게 아닌가. “반지는 실제로 보기 전엔 믿을 수 없다. 바그너 마법은 전혀 깨지지 않았으니. 바쁜 현대 사회에도 여전히 열광적인 청중이 전 세계에 퍼져 있고 그들은 바그너가 말하는 터무니 없는 헌신을 몸소 실천할 것이기 때문이다. 상상해 보라. “저녁식사? 집어치워. 일찌감치 일에서 손떼고 여기, 어둠으로 뛰어와. 그 속에 앉아 음표, 나아가 단어, 단어, 또 단어에 귀를 기울여. 내가 하는 말을 또 듣고 다시 들으며 말이야. 샛별이 뜨고 너희 영국인들이 폐점시간이라 말하는 그때까지. 거기 앉아서 꼼짝도 하지 마. 배고프고, 지치고, 아마 따분하겠지만. 그건 알 바 아니라고.”


바그너는 나흘 밤을 불태울 이 터무니 없는 걸작에 어떤 변치 않을 비밀을 숨겼을까? 그건 바로 모두가 가질 만한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감정, 그리고 누구나 해봤을 법한 공상일 것이다. 사랑을 거부하면서부터 찾아온 파멸. 신과 난쟁이, 거인, 야망과 욕망으로 꽉 찬 인간 이야기. 표면적으론 그렇다. 자 그럼 폭풍의 눈, 불길과 홍수 속으로 빠져 보자. 상상 할 수 있을 모든 괴상한 생명체들 사이에 떨어졌다. 어떻게 손짓과 발짓을 해도 표현하기 힘든 용과, 두꺼비, 물의 요정, 곰들이 보인다. 아아, 브륀힐데의 충직한 애마 그라네를 빼먹었다(아쉽게도 요새 극장에선 그를 보기 힘들다). 이 모든 게, 생동감 있게, 매력적으로 음악 속에 녹아 있다.


우리나라에선 소수의 반지관중들만 리브레토 구석구석을 읽어내고 바그너 화성과 관현악법 변화에 전율하리라 짐작된다. 대중이 가진 평범한 취향은 주로 눈에 보이는 문제이며, 아마 발성 중심의 노래 쪽으로 치우쳐있을지도 모르겠다. 올해 반지가 보여준 감탄할만한 완성도는 루돌프 켐페의 지휘 덕분이다. 켐페는 악기 하나하나를 정밀하게 제어했고, 대체로 명가수들이 노래하기 쉽게 이끌어 나갔다. 실제로 정확, 명료했던 켐페의 지휘는 일반청중의 시선을 무대로 모았으며, 현대 오페라 미학의 시선에서 본다면, 이는 가수와 연기에 초점이 맞춰지는 옛날 방식이다.


왕년의 바그너 공연들이 모조리 과장되었고, 시끄럽기만 하고, 미묘한 뉘앙스를 살리지 못한다는 관점들이 종종 보인다. 물론 터무니 없는 소리다. 올해 지크프리트의 어떤 장면도 비첨이 보여준 서정적인 순간에 비하진 못했다는 걸 밝히고자 한다. 비첨은 음악 속으로 들어가 자신을 빛냈고, 바그너가 명가수의 공기를 숨쉬며 살았다는 사실을 알려주곤 했다. 이에 비한다면 켐페가 반지를 다룬 적절했던 방식은 다만 장대한 서사와 설득력이 부족한 듯 보였다. 생각해보라. 관현악이야말로 반지가 존재하는 이유 아닌가. 바그너가 만들어내는 위력은 관현악에서 벼려진다. 그런 어마어마한 과정 속에서 사람들은 제 역할을 한다. 가수, 악단원, 무대인원 모두가. 물론 여기에 적응 못한다면 얄짤없다. 분명한 사실은 반지가 때론 오만하게 위대함을 외치고, 때론 똑부러지게 세련된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이다. 올해 반지의 가창엔 번뜩이는 순간도 거의 없었고, 이를 보완하는 풍부함도 보기 힘들었다. 살펴보자. 한스 호터의 보탄은 그 자체로 권위적이었다. 하쇼우는 드디어 일류 브륀힐데를 보여주나 싶었다. 지크프리트는 발성이나 연기나 그저 그랬으며, 하겐은 악한의 눈빛, 목소리 어느 것도 보여주지 못했다. 호터 역시 방랑자를 연기하며 지친 듯 음표를 빼먹었지만, 어쨌든 그를 제한다면 페터 클라인 정도가 코벤트 가든의 이름값에 걸맞았다. 그의 미메는 노래와 연기를 뚝심있게 연구한 성과로 보였다. 나는 올해 코벤트 가든 반지를 진정으로 즐겼다. 어느 때보다 바그너가 모티프를 주무르는 솜씨에 놀라기도 했다. 하지만 코벤트 가든 반지가 현재로선 세계 최고라는 내 동료들의 이야기를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여론을 몰고 있는 이런 의견들이 영국 촌뜨기의 평가가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몇몇 연출이 거슬렸다. “반지에서 몸연기는 중요하다(“제스처야 말로 바그너 음악의 모든 것.” 니체가 썼다). 지크프리트가 브륀힐데를 깨우며 바이올린 선율이 상승하는 장면. 스멀스멀 올라오는 음향은 마법을 암시하고 짓누르는 잠에서 해방되는 순간이다. 브륀힐데는 위로 팔을 쭉 뻗으며 해방감을 온몸으로 표현해야 했다. 하쇼우 여사는? 바위에 걸터앉아 하품하며 모닝 티를 기다리는 모양새였다. 노른 자매는 흠 잡을 데 없이 노래 불렀지만, 그저 뻣뻣하게 연기했고, 운명의 밧줄을 돌리는 게 아니라 평소처럼 둘러 앉아 뜨개질 하는 걸로 보였다. 밧줄이 끊어지는 그 순간에도 연기에서 어떤 비극적인 파국이나 운명의 눈물을 찾아볼 수 없었으니. 내가 볼 때 막내 노른은 뜨개바늘을 도중에 떨어뜨렸다. 이외에도 무대의 연기와 오케스트라의 균형이 깨진 몇몇 순간으로 보건대 바그너가 가수들과 연출진에 내린 지시들이 무시된 게 분명하다. 왜 하쇼우 여사는 라인강 너머로 사라지는 지크프리트에게 손을 흔들지 않았을까? 그 순간 음악은 눈에 띌 만큼 손을 흔드는데도. 그녀가 황홀한 소리를 내는걸 바그너가 명쾌하게 말해주지 않는가.


바그너가 직접 쓴 지시를 연출자가 따르는 건 기대하지도 않건만, 나는 여전히 바그너가 지시한 그대로 재현한 신들의 황혼의 대단원을 직접 보고 싶다. 브륀힐데가 애마에 올라탄 뒤 뛰어 오르라 명한다. 한번의 몸짓과 함께 불타는 장작더미로 향한다. 불길은 순식간에 치솟아 휘몰아친다. 라인강이 힘차게 넘쳐흐르며 불길을 향한다. 화염이 가장 세게 타오르는 마지막 순간 불길은 발할의 속살까지 밝힌다. 신과 영웅들이 앉아있을 그 안쪽까지. 화마가 신들의 궁전을 뒤덮는 순간, 불길과 함께 신들은 커튼 너머로 사라진다. 어떤 시각 예술가도 신묘한 경지에 오른 마법사 바그너에 비할 수 없다. 과거, 현재, 미래, 그 너머에 있을지도 모를 어떤 인간도 상대가 안되리라.


한편 이론의 여지 없이 켐페와 코벤트 가든 오케스트라에게 찬사를 바친다. 그들은 날 것 그대로의 음악을 풀어놓았다. 마치 바흐나 베토벤을 듣는 것처럼 풍부한 음악적 토양을 펼친 것이다. 그렇게 음악은 자연스레 강하게, 격렬하게 흘렀다. 또한 그들이 풀어놓은 인간미 넘치는 꽉 찬 상상력은 음악에 유연한 여지를 남겨놓았다.


어찌됐건 반지는 우리와 다른 그런 사람들로 꽉 차있지 않다. 보탄과 알베리히, 훈딩, 하겐, 그 외의 인물들이 전부가 아니다. 브륀힐데조차 반지의 가장 매력적인 존재는 아니라 본다. “신들의 황혼에서 그녀는 잠깐동안 그랑 오페라 수준으로 퇴폐한다[각주:2]. 브륀힐데의 희생장면 전까지는 그저 복수심에 불타는 소프라노가 되어있지 않은가. 반지속 증오와 속임수, 배신, 악독한 야망과 계략, 분노와 좌절. 이 모든 걸 지글린데는 정화한다. 켐페의 지휘는 관객을 지글린데에게 가깝게 밀착시켰기에 훌륭했다. 그녀가 무대에서 사라진 뒤에도 여전히 따뜻한 향기가 맴돌았고, 카타르시스가 되어 모두를 정화했다.




첨언: 재밌는 글이다. 뭔가 예지력이 상승한다고 할까. 비첨 관련 코멘트는 빼더라도(ㅋㅋㅋㅋㅋㅋㅋㅋ), 21세기의 애호가 측면에서 껄껄거리면서 읽을 여지가 참 많다. 몇 가지 짚어보자.


새천년하고도 1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연출가의 역할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본다. 물론 레지테아터의 개념에서 작품을 완전히 재해석하는 상황에 불만을 가지는 사람은 여전히 많지만, 그 개념이 등장한지 시간은 꽤나 흘렀고, 불만과 상관없이 시스템은 잘 정착한 상황이기에.(그저 절이 싫어 중들이 떠날 뿐)


그런 우리의 관점에서 카더스의 넉두리는 꽤나 흥미롭다. 바그너 자신의 연출을 '문자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고 투덜대는 모습을 과연 요즘 시대에 볼 수 있을까. 이 사람은 19세기 사람이다. 상상해보자. 대다수의 덕후들이 그렇듯이 10대에 오페라 극장에 처음 가 거기서 헤어나오지 못했을 테고, 도서관에 짱박혀 음악 책을 머리 속으로 빨아들이고 있었을 것이다. 이게 대강 1900-10년대. 코지마가 바이로이트에서 남편의 유지를 그대로 받들던 시절이자, 구스타프 말러와 알프레드 롤러가 빈 궁정오페라에서 전설적인 프로덕션들을 만들어 내던 시절. 이쯤 되면 카더스의 투덜댐도 나름 납득이 간다.


재밌는 점이라면 카더스가 이 글을 쓰던 50년대에 이미 동독에서 발터 펠젠슈타인이 레지테아터 개념을 만들어내고 있었단 것이다. 묘한 공존이랄까.


이런게 통하던 시절


글에서 의아했던 한가지도 이제 풀린다. 카더스가 현대 오페라 미학 어쩌고 하는 부분. 나는 처음에 지휘자 -> 연출가로 넘어오는 주도권을 생각했다. 그래서 카더스가 가수에 초점이 맞춰지는 옛날 방식 어쩌고 하는 말이 잘 이해가 안 갔는데, 아마 우리의 옛날보다 훨씬 더 예전 시대를 언급하는게 아닌가 싶다. 가수가 주도권을 가지던 진짜 옛날 방식.(19세기 시절)[각주:3] 


뼛속까지 카펠마이스터인 켐페는 자신이 할 일을 다 했을 테고, 이는 가수를 최대한 전면에 내세우며 노래를 반주하는 방식이다. 카더스의 지적(?)은 그런 측면에서 타당하다. 과장되지 않은 음향과 명료한 선율을 바탕으로 가수의 뒤에서 자기 할 말을 하는 반주. 지금까지의 글들을 볼때 카더스가 이런 지휘를 좋아햇을 것 같지는 않다.


동독 당국과 관계가 소원해진 루돌프 켐페는 50년대부터 코벤트 가든에 등장한다. 루돌프 하르트만이 연출한 이 프로덕션은 1954년 초연되고, 이후 59년 프란츠 콘비츠니의 지휘를 제외하고는 쭉 켐페가 지휘한다. 본 기사의 55년 공연은 테스타먼트로 정발된 57년과 거의 캐스팅이 비슷한데, 글에서 욕을 먹는 지크프리트와 하겐의 경우 각각 노쇠한 세트 스반홀름과 루드비히 호프만이 노래했다. 지글린데 역시 57년과 다르게 레오니 리자넥이 노래했다.



  1. 책에는 1957년 라인의 황금, 발퀴레, 신들의 황혼 기사가 이어지기에 여기엔 지크프리트 샘플을 올린다. [본문으로]
  2. 원문에는 동사 is corrupted 뒤에 괄호문으로 by Wagner not by Hagen이 덧붙여있다. [본문으로]
  3. 다음 문단에서 옛날 바그너가 과장되고 어쩌고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건 독자 입장에서 옛날 바그너를 말하는 것 같다(1920-40년대)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