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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테 레만4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1936/7년 잘츠부르크 축제 Immortal Performances) 리하르트 바그너: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1867)한스 작스: 한스 헤르만 니센에파: 마리아 라이닝 (1936: 로테 레만) 발터 폰 슈톨칭: 헹크 누트 (1936: 찰스 쿨만)식스투스 베크메서: 헤르만 비더만막달레나: 셰르스틴 토르보리파이트 포크너: 헤르베르트 알센다비트: 리하르트 잘라바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빈 국립오페라 합창단, 빈 국립오페라 발레단연출: 헤르베르트 그라프무대 디자인: 로베르트 카우츠키의상: 빌리 바너복각: 리처드 카니엘 1937년 8월 5일(1936년 8월 8일), 축제극장, 잘츠부르크 Immortal Performances IPCD 1069-5 1930년대 중부유럽의 풍파로 많은 녹음이 실종된 걸 떠올린다면, 토스카니니 가 최근 겪은 불운은 사소한 일화도 못될.. 2016. 12. 16.
카더스 평론 18: 잘츠부르크의 "명가수" - 토스카니니가 통제하다 (1936년 8월 28일) 잘츠부르크의 “명가수” – 토스카니니가 통제하다 (1936년 8월 28일)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브루노 발터, 슈테판 츠바이크. 1936년 잘츠부르크) 1936년 8월 8일 실황 녹음 미국과 잉글랜드의 부자 방문객들이 전통의상을 구매하고 깔끔하고 비싼 자가용으로 산을 오르는 등의 기행을 벌이지만, 여전히 잘츠부르크는 잘츠부르크다. 축제가 한물갔다는 보도자료에 진실은 없다. 물론, 토스카니니가 가져온 율법이 이곳의 편안하고 상냥한 분위기에 어울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페라와 음악축제로서 잘츠부르크의 질이 떨어졌다는 말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나는 며칠간 저녁 공연을 관람했다. 미학적인 성취와 기술적인 마감 모두 세계 어느 곳에서든 쉽게 뛰어넘기 어려운 수준이었고, 잉글랜드 극장의 성과는 잘 봐줘야 아마추.. 2016. 12. 15.
월터 레그 평론 04 : 코벤트 가든 반지 (5월 1934년) 5월 1934년. 코벤트 가든 반지 (1933년의 코벤트 가든) 뱃머리에 선 비첨, 방향키를 쥔 토이와 함께 코벤트 가든의 새로운 시대가 밝았다. 새 무대장치, 새 조명시설, 새 드레스룸, 새 프로듀서, 심지어 로비와 전면의 새로운 도장(塗裝)은 오래된 극장을 낯설게 했다. 사람들은 옛 무대에 너무 익숙해져 그 한계점과 흠마저 소중히 여겼다. 하지만 신임자들이 이를 일소했고, 비첨과 토이는 그들의 재임 기간에 코벤트 가든을 옛 모습으로 오해하는 일이 없도록 일할 것이다. 이번 독일 레퍼토리 기간에 보인 익숙한 여섯 작품 중, 다섯은 무대장치를 통째로 갈았고, 새롭게 초연한 두 작품, 와 는 자연스럽게 특별한 무대를 받았는데, 전자는 여기서 특별히 제작했고, 후자는 나치가 바인베르거를 인종적인 이유로 거부.. 2016. 3. 17.
카더스 평론 09: 장미의 기사 – 풍성한 삶과 사랑의 감각 (1934년 1월 25일) 장미의 기사 – 풍성한 삶과 사랑의 감각 (1934년 1월 25일) 1933년 스튜디오. 로베르트 헤거와 장미의 기사 3인방. HMV가 고민 끝에 ‘장미의 기사’의 으뜸가는 장면들을 골라 유성기(留聲機)로 옮겼다. 녹음이 빈에서 이뤄졌음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슈트라우스의 향취를 품은 ‘그 오케스트라’, 빈 필하모닉이 연주했음은 물론이다. 가수 또한 완벽했다. 모두가 기다렸을 로테 레만의 원수부인은 영원미를 머금은 채 극 속 아이러니를 깊은 마음으로 이해하는 가창의 전형이었다. 그녀의 음성과 더불어 엘리자베트 슈만의 조피는 레코드를 통해 생생하게 전해졌다. 사랑 앞에 용감한 옥타비안을 노래한 올셰프스카 역시 빛나는 목소리를 뽐냈다. 허나 불한당 옥스를 그려낸 마이어의 육감적인 연기야말로 유머.. 2015. 2.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