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잡설/번역 - 네빌 카더스 평론19 카더스 평론 10: 브루크너 교향곡 8번 (1951년 10월 23일) 브루크너 교향곡 8번 (1951년 10월 23일) 요제프 크립스, 뉴욕필하모닉.1961년 뉴욕 실황 지난밤 로열 페스티벌 홀. 런던 심포니가 요제프 크립스의 장대한 지휘 아래 브루크너의 8번 교향곡을 연주했다. 관객들은 숨죽여 네 개의 거대한 악장을 들었다. 8번은 절대 접근하기 쉬운 교향곡이 아니다. 예컨대 7번 교향곡마냥 길게 노래하는 악절은 보이지 않는다. 여기 브루크너는 상승부에서 짧고 하품까지 나는 음형들을 반복시키며 교향곡을 다져나간다. 반복되는 음형들은 금관의 하강 경과구와 조바꿈, 게네랄파우제에 의해 갑작스럽게 끊긴다. 누군가 브루크너를 처음 들었다면 한슬리크의 열변에 공감할지도 모르겠다. “브루크너는 짧은 반음계 모티프로 곡을 시작한 뒤 이를 끊임없이 반복하고 무한정 음계를 상승시키며 쭉.. 2015. 2. 17. 카더스 평론 09: 장미의 기사 – 풍성한 삶과 사랑의 감각 (1934년 1월 25일) 장미의 기사 – 풍성한 삶과 사랑의 감각 (1934년 1월 25일) 1933년 스튜디오. 로베르트 헤거와 장미의 기사 3인방. HMV가 고민 끝에 ‘장미의 기사’의 으뜸가는 장면들을 골라 유성기(留聲機)로 옮겼다. 녹음이 빈에서 이뤄졌음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슈트라우스의 향취를 품은 ‘그 오케스트라’, 빈 필하모닉이 연주했음은 물론이다. 가수 또한 완벽했다. 모두가 기다렸을 로테 레만의 원수부인은 영원미를 머금은 채 극 속 아이러니를 깊은 마음으로 이해하는 가창의 전형이었다. 그녀의 음성과 더불어 엘리자베트 슈만의 조피는 레코드를 통해 생생하게 전해졌다. 사랑 앞에 용감한 옥타비안을 노래한 올셰프스카 역시 빛나는 목소리를 뽐냈다. 허나 불한당 옥스를 그려낸 마이어의 육감적인 연기야말로 유머.. 2015. 2. 11. 카더스 평론 08: 고결한 낭만의 화신 (1947년 3월 26일) 고결한 낭만의 화신 (1947년 3월 26일) 1937년의 클렘페러(좌)와 미국 망명자들. 쇤베르크의 모습도 보인다. 지난밤 클렘페러 박사가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 육중했던 대 푸가가 먼저 홀에 울려 퍼졌다. 현악 오케스트라가 연주했던 대 푸가는 콰르텟이 모든걸 쏟아 만들어내는 강렬한 원곡의 무게감에 견줄 만 했다. 클렘페러는 원곡을 훌륭하게 뒤바꿨다. 모든 악기가 놀랍도록 깔끔하게 들렸는데 다이나믹이 세심하게 조절되었기에 가능한 경지다. 거인에서부터 매섭게 휘몰아친 의지 앞에서 음악은 자신의 지평선 너머까지 품어내려는 듯이 보였다. 베토벤은 조성과 짜임새, 리듬으로 씨름하며 거대한 대 푸가 악장을 다듬었다고 여겨졌는데, 반면 클렘페러는 이런 통념들을 경솔한 신성모독이라 .. 2015. 2. 6. 카더스 평론 07: 런던의 새 오케스트라 – 그들의 첫 공연 (1932년 10월 8일) 런던의 새 오케스트라 – 그들의 첫 공연 (1932년 10월 8일) 오늘밤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퀸즈 홀에서 의기양양하게 첫 삽을 떴다. 토마스 비첨 경이 마침내 자기 악단을 꾸린 것이다. 비첨이 어떤 영국의 오케스트라도 규칙적으로 지휘하지 않았던 사실에 대륙의 음악가들은 놀라곤 했다. 여기 영국은 누군가 주어진 사실조차 질투했을, 그런 천재를 썩혀왔다. 오늘 아침 런던 필하모닉이 세심하게 연습했고, 토마스 비첨 경은 열정적이고 손재주가 많은 연주자들을 마지막으로 손보았다. ‘서열과 연줄이 없는 여기서는 모두가 리더입니다.’ 많은 첼리스트들을 제치고 18살밖에 안된 유망한 청년이 곧 수석이 될 것처럼 말이다. 베를리오즈 '로마의 사육제 서곡', 1936년 11월 스튜디오 녹음 모든 위대한 지휘자들처.. 2015. 2. 1. 카더스 평론 06: 제 4번, 변화의 바람 – 에든버러 축제의 브루노 발터 (1951년 8월 28일) 제 4번, 변화의 바람 – 에든버러 축제의 브루노 발터 (1951년 8월 28일)(네빌 카더스가 ‘맨체스터 가디언’ 런던 주임으로 임명되고 쓴 최초의 글 ) 캐슬린 페리어를 반주하는 브루노 발터. 1949년 에든버러 축제 비 내리는 안식일의 에든버러, 브루노 발터와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선보인 브루크너 4번 교향곡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정말 인상적인 해석이다. 탄탄한 근육질이 떠오르는 강건한 음색은 눈길을 끌었다. 브루크너가 가졌을 생각도 풍부하게 그려졌다. 나는 뉴욕 필하모닉이 기교적 효율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상황에 동의할 수 없다. 그들이 브리튼 섬에서 작곡가가 평생 정직하게 썼을 음표를 연주하면 어김없이 구호와 외침이 들린다. ‘영혼이 빠진, 관점 부재의, 냉혈한’ 따위의 이야기 말이다. 비슷.. 2015. 1. 27. 카더스 평론 05: 필하모니아와 함께한 카라얀 (1952년 5월 12일) 필하모니아와 함께한 카라얀 (1952년 5월 12일) 성공적인 유럽 투어를 위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는 이번 주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두 차례 공연을 가졌다.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화려한 음색과, 능수능란하게 제어된 다이나믹의 강도을 통해 뛰어난 연주를 선보였다. 사실 카라얀은 지나치게 계획된 강약변화를 보여주곤 했고, 브람스 1번 교향곡의 몇몇 피아니시모는 작곡가 자신이 거절했을 게 분명한 수줍음 많은 작곡가의 모습과 어울렸다. 전반적으로 교향곡은 심각함이 인상깊었다. 카라얀 씨는 세련된 기교에 대한 명인의 소질, 그리고 진짜배기 음악가의 본질을 꿰뚫는 감을 합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템포는 청중들로 하여금 중심으로부터 펼처지는 음악 대신 오히려 바깥부터 세세하게 조작된 음악을 보여주는 .. 2015. 1. 22. 카더스 평론 04: 코벤트 가든의 푸르트벵글러 – 트리스탄과 이졸데 (1935년 5월 22일) 코벤트 가든의 푸르트벵글러 – 트리스탄과 이졸데 (1935년 5월 22일) 지난밤 코벤트 가든을 아름답게 빛낸 보기 드물었던 시적 순간을 논하기 전에 먼저 토마스 비첨 경에게 감사를 표한다. 모든 지휘자가 걸출한 동료에게 오페라 좌를 비우고 흔쾌히 기회를 주지 않으며, 그가 바로 얼마 전 같은 곡을 지휘했다면 더더욱 쉽지 않은 선택이기 때문이다. 음악극에 대한 두 예술가의 걸출한 해석에 우위를 매길 필요는 없다. 한쪽에는 태양이 맞은편에는 달이 자신들의 찬란함을 드러낼 뿐. 비첨은 서정적인 광채와 흥분되는 리듬을 통해 비극을 적극적으로 관객 앞에 가져왔다. 반면 푸르트벵글러는 비극이 가진 비감을 온 마음으로 느꼈다. 그는 음표를 무겁게 가져가며, 시종일관 ‘거리의 파토스’를 음악 속에 집어넣었다. ‘트리.. 2015. 1. 19. 카더스 평론 03: 토스카니니와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 (1935년 6월 4일) 토스카니니와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 (1935년 6월 4일) 오늘 밤 토스카니니는 BBC 심포니를 처음 지휘했고, 이는 단순한 연주를 넘어 음악과 천재를 고결하고 경이롭게 드러내는 장면이라는 측면에서 가장 드물고 뛰어난 음악적 체험이었다. 지금부터 침착한 논조로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지휘자의 예술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토스카니니에서 우리는 역설을 본다. 여기 이 남자는 가장 강력하면서 개인적인 -그의 폭압적인 태도를 빼더라도- 지휘자이자, 어떤 명인들을 모아놓은 오케스트라에서도 거대한 지시를 이끌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스카니니는 단 한 순간도 과시욕을 드러내지 않는 지휘자이며 그가 제사장으로서 봉사하는 거장들의 작품 바깥으로 자신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토스카니니의 브람스, 토스카니니의 .. 2015. 1. 17.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