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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잡설/번역 - 네빌 카더스 평론

카더스 평론 05: 필하모니아와 함께한 카라얀 (1952년 5월 12일)

by Chaillyboy 2015. 1. 22.

필하모니아와 함께한 카라얀 (1952 5 12)





성공적인 유럽 투어를 위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는 이번 주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두 차례 공연을 가졌다.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화려한 음색과, 능수능란하게 제어된 다이나믹의 강도을 통해 뛰어난 연주를 선보였다. 사실 카라얀은 지나치게 계획된 강약변화를 보여주곤 했고, 브람스 1번 교향곡의 몇몇 피아니시모는 작곡가 자신이 거절했을 게 분명한 수줍음 많은 작곡가의 모습과 어울렸다.


 


전반적으로 교향곡은 심각함이 인상깊었다. 카라얀 씨는 세련된 기교에 대한 명인의 소질, 그리고 진짜배기 음악가의 본질을 꿰뚫는 감을 합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템포는 청중들로 하여금 중심으로부터 펼처지는 음악 대신 오히려 바깥부터 세세하게 조작된 음악을 보여주는 듯 했다. 연주는 이를테면 이탤릭체로 강조된 훌륭한 브람스 산문이자 멋들어지게 교양있는 의상이었다. 교향곡은 청중들의 귀를 만족시켰고, 사나이 같은 달음박질로 청중이 가진 고전 교향악에 대한 감각을 만족시켰다. 그러나 가슴은 뛰지 않았다. 나는 푸르트벵글러의 느린 악장이 가진 감수성이 그리워졌다. 변화무쌍한 리듬들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카라얀과 모호하게 비교되며 입방아에 오르곤 하던 그가 아닌가.


3악장. 1952년 5월. 킹스웨이 홀 스튜디오 녹음


물론 카라얀은 최고의 오페라 지휘자다. 그가 작년 바이로이트에서 보여준 명가수 는 정말이지 뛰어났고, 자연스럽게 즐기는 수준에 이른 슈트라우스의 돈 후안은 더욱 그러하다. ‘돈 후안에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는 피 끓는 자유를, 다채로운 음색의 경지를 선보였다. 교향시의 시작은 그야말로 정확하고, 쏟아지는 듯 했다. ‘돈나 안나의 낭만이 빛났으며, 완벽하게 촉촉했던 게르만 감성의 뒤를 이어 사랑스러운 코다가 다가왔다.


허나 카라얀 씨의 부자연스러운 접근은 해밀턴 하티 경이 편곡한 핸델의 수상음악에서 다시금 드러났다. 아름다웠지만, 원곡이 가진 깊은 신선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삐까번쩍한 저수지부터 연결된 늘씬한 수도관이 느껴질 뿐이었다.[각주:1]




첨언: 짧은 글이다. 카라얀은 필하모니아와 48년에 첫 공개연주를 선보인다. 이후 49년 한 차례의 공연 뒤 52년부터 본격적으로 필하모니아와 연주한다. 본문에도 언급되었듯이 52년에 필하모니아는 창단 이후 처음으로 유럽투어를 가는데, 당시의 사단은 오스본의 카라얀 평전에 잘 묘사되어있다.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다.


[각주:2]


철저하게 필하모니아와 카라얀이 발매했던 정규 음반으로 이루어진 프로그램이다. 월터 레그는 뛰어난 음악인이자 비즈니스맨이었고, 이는 EMI의 음반 홍보를 위한 곡 선정이었음이 분명하다. 물론 투어 총 책임자로서의 능력은 빵점에 가까웠기에 투어 과정은 재앙에 가까웠다고 평전은 묘사한다. 


다시 본론으로. 카더스는 가시돋친 혹평을 가한다. 공연이 어땠는지는 여러 자료를 통해 추측할 수 있다. '더 타임즈'의 호평에도 계산된 불안감 따위의 표현이 포함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필하모니아는 50년대 최고의 악단이지만 연주 경험이 부족했기에 훗날 베를린 필이 보여줬던 뼛속까지 음악을 아는듯한 경지-카라얀 자신과 카더스의 표현-에는 이르지 못했다. 신생 악단의 어색함은 당시 카라얀의 스타일과 맞물려 작위적인 느낌을 줬을 가능성이 높다. 악장 마노그 파리키안 역시 이런 이유로 연주가 형편없었다 회고한 바 있다.(자기 파트를 전부 연주해본 적이 없기에 모두 신경이 몹시 예민해졌어. 정말 형편 없는 연주였다고 생각하네) 이런 문제는 브람스에서 보기 좋게 드러났을테고, 푸르트벵글러를 선호했던 카더스로서는 더욱이나 펜이 근질근질 했으리라.


'돈 후안'을 통해 카더스는 50년대 카라얀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기술적 완벽함[각주:3], 누구도 이루지 못했을 유연함, 재치있는 영감, 섹시함까지. '돈 후안'이야말로 카라얀과 필하모니아를 가장 잘 나타내는 곡이 아닐까. 51년의 스튜디오 연주는 잘 나타낸다는 말로는 부족하고 여러 측면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카라얀의 가장 뛰어난 성과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카더스의 표현은 적절해보인다. 숨이 멎을듯한 명쾌함과 관능미를 보여주는 녹음을 통해 당시 공연이 어떘는지를 간접적으로나마 추측해본다. 


여담. 월터 레그는 투어도중 밀라노에서 토스카니니의 부름을 받고, 그렇게 전설적인 필하모니아와의 브람스 실황이 탄생한다. 카더스는 공연을 관람하고 기사를 남기는데, 이 역시 다음에 소개하려고 한다.



  1. 실제 기사 원문에는 한 문장이 더 실려있다. ‘아무튼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는 넘치는 자신감을 품고 이제 유럽으로 떠날 것이다.’ 맥락상 편집자가 문장을 뺀 것으로 추측된다. [본문으로]
  2. 위의 포스터자료와 함께 카라얀 영국 디스코가 출처 [본문으로]
  3. 안타깝게도 이 표현은 카라얀에 대한 악의적인 비난에 주로 사용되곤 한다. 지금까지도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