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음악잡설/번역 - 네빌 카더스 평론

카더스 평론 07: 런던의 새 오케스트라 – 그들의 첫 공연 (1932년 10월 8일)

by Chaillyboy 2015. 2. 1.

런던의 새 오케스트라 그들의 첫 공연 (1932 10 8)



오늘밤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퀸즈 홀[각주:1]에서 의기양양하게 첫 삽을 떴다. 토마스 비첨 경이 마침내 자기 악단을 꾸린 것이다. 비첨이 어떤 영국의 오케스트라도 규칙적으로 지휘하지 않았던 사실[각주:2]에 대륙의 음악가들은 놀라곤 했다. 여기 영국은 누군가 주어진 사실조차 질투했을, 그런 천재를 썩혀왔다. 오늘 아침 런던 필하모닉이 세심하게 연습했고, 토마스 비첨 경은 열정적이고 손재주가 많은 연주자들을 마지막으로 손보았다. ‘서열과 연줄이 없는 여기서는 모두가 리더입니다.’ 많은 첼리스트들을 제치고 18살밖에 안된 유망한 청년이 곧 수석이 될 것처럼 말이다[각주:3].


베를리오즈 '로마의 사육제 서곡', 1936년 11월 스튜디오 녹음


모든 위대한 지휘자들처럼, 리허설은 토마스 경의 주무기다. 음악적이자 연극적인 그의 천재성은 돋보인다. 토마스 경은 악보 속에 머물며 연기하고, 춤추고, 이를 빨아들인 뒤 단원들에게 생생한 몸짓과 함께 표현한다. 바닥에 쭈그렸다가, 근위병처럼 꼿꼿이 서면서 말이다. 소리지르고, 흥얼대기도 한다. 어느 순간 황홀한 듯이 만족했다가, 갑자기 오케스트라를 멈추고 두려워하며 머리를 잡아뜯는다. 토마스 경의 몸이 빙글빙글 돌며 휘청거린다. 그의 동작이 과하다 생각 한다면 이는 부당하다. 공연에서 토머스 경은 절제를 위한 순교의 고통을 느끼고 있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비첨과 함께라면 곱절은 더 잘할 거라 모두가 말할 것이다. 그는 플루트가 연주를 못했더라도 연주가 훌륭했다고 납득시킬 사람이다. 오늘 아침 비첨은 대단한 자신감으로 말했다. “단원들은 뼛속까지 음악을 알고 있지. 한 음도 틀리지 않는다고.” 자신감은 얼마 지나지 않아 브리그의 장날[각주:4]에서 약간 흔들렸고, 토마스 경은 리허설이 끝날 무렵 불안한 악절을 다시 연습하자고 요구했다. 아주 베이트먼[각주:5]적인 장면이 아닌가. ‘섬나라 오케스트라 단원이 반 시간 전의 불안했던 악절을 다시 맞춰보는 장면’.



열정이야말로 신참 오케스트라가 가진 훌륭한 자산이며, 세계에서 가장 활동적이고 설득력 있는 지휘자만이 불어넣을 그런 자극이다. 악장 폴 버드는 날카롭고 세심하다. 유연한 이 바이올리니스트는 시종일관 정확한 음색과 스타일을 선보인다. 비록 금관이 아직 두드러지지 않더라도, 오케스트라에는 레온 구센스[각주:6]를 포함한 유연한 목관 주자들이 포진하며, 금관 역시 머지않아 뛰어난 실력을 드러낼 것이다. 호른 수석이 브리그의 장날을 아름답게 연주했듯이. 현재 오케스트라는 새로 산 기계처럼 빳빳하고 광택이 넘친다. 몇 주 뒤에야 오케스트라는 무르익을테고, 토마스 경이 항상 영향을 줄 것이다. 대륙 사람들은 오직 좋은 지휘자와 나쁜 지휘자만 있을 뿐, 나쁜 오케스트라는 없다 말 한다. 이런 관점에서,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곧 세계 최고가 될 것이다.


오늘 밤의 프로그램은 신중하게 짜였다. 베를리오즈의 로마의 사육제 서곡’ (놀랄 만큼 열정적인 곡)으로 시작했고, 델리어스의 브리그의 장날’, 모차르트의 프라하 교향곡’, 슈트라우스의 영웅의 생애로 끝을 맺었다. 멋지게 계산된 음악 속에서 토마스 경의 진수가 드러났다. 토마스 경 아래서 브리그의 장날의 짜임새는 빛났다. 비록 지휘자와 단원들이 느린 악장을 보란 듯이 심하게 강조하는 게 얼핏 보였지만(어쩌면 여기서 약간의 겸양의 미덕[각주:7]을 잃었는지도 모르겠다), 모차르트의 걸작에 숨겨진 위트와 신랄함 역시 제대로 드러났다. 이어진 시간은 영웅의 생애로 후끈 달아올랐다. 어마어마한 연주였다. 뉴욕과 비엔나 사이의 어떤 곳에서도 이렇게 호화롭고 대담했던 관현악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슈트라우스는 자기 자신보다 비첨의 지휘봉 아래서 더욱 위대해 보일지 모르겠다. 폴 버드의 바이올린 독주는 반려자를 생생하게 그려냈다. 연주는 영국 관현악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첨언: 현대 오케스트라들이 대부분 19세기 중후반에 결성됬다는 사실은 충분히 주목할 만 하다. 아마 표준적인 관현악법이 확립된 시기와 겹치는 부분이 있을테고(베를리오즈의 등장을 생각해보라), 프랑스 대혁명 이후 근대가 형성되는 흐름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영국, 정확히 런던은 20세기에 들어서야 지금 보이는 오케스트라들이 등장한다. 현존하는 영국 최고(最古)오케스트라 리버풀 필하모닉, 이를 잇는 할레 오케스트라, 왕립 스코틀랜드 오케스트라 모두 다른 도시를 연고지로 두고 있다. 우리가 알고있는 런던과는 전혀 다른 모습인 것이다.


물론 이를 음악적 토양이 빈약한 영국 어쩌고와 무작정 연관시키는 건 비약. 런던에는 로열 필하모니 소사이어티가 1813년부터 자체 오케스트라를 가지고 공연을 열어왔고(잠깐 덧붙이자면 2-30년대의 로열 필하모닉 음반은 여기 오케스트라 연주라 보면 된다), 이외에도 많은 오케스트라들이 활동했다 사라졌다. 뼈저린 구조조정과 경쟁의 결과라 보는게 차라리 맞을듯.


아무튼 우리가 보고 있는 런던의 음악 풍경은 20년대를 지나고 50년대가 지나야 완전히 자리잡는다. 그리고 비첨이야 말로 이런 풍경을 만들어낸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의외로 비첨이 여러 오케스트라에 관여한 이유는 별게 아닌데, 한마디로 월급 받으면서 일하기는 싫다는 것이었다. 피터지게 경쟁하는 지금 런던의 여러 오케스트라들이 생각해본다면 뒷목을 잡을만한 이유일지도.


런던 필하모닉의 결성도 그런 상황이다. 말 안듣는 런던 심포니가 꼴뵈기 싫었고(단원 교체문제에서 충돌했고, 무엇보다 런던 심포니는 재정자립된 오케스트라) 당시 젊은 지휘자 말콤 사전트 경과 협의 하에 사비를 털어 오케스트라를 만든 것이다. 런던 심포니의 단원들을 빼오고, 갓 음악원을 졸업한 애송이들을 끌어모아 그렇게 런던 필하모닉이 창설된다. 의외로 비첨의 인맥빨인지 당대 뛰어난 주자들이 많이 참여했는데, 본문에 언급된 구센스 뿐만 아니라 하피스트 마리 구센스, 유명 클라리네티스트 레지널드 켈 등이 오케스트라에 참여했다. 


그렇게 30년대 영국 최고의 앙상블이 탄생한다. '비첨의 런던필, 보울트의 BBC'는 하나의 대명사였다. 특히 런던 필하모닉은 코벤트 가든에서도 정기적으로 연주했고, 이는 지금까지도 여러 녹음들이 남아있다. 참고로 이 이유도 간단한데, 당시에는 코벤트 가든 자체 오케스트라가 없었기 때문(예당 오페라하우스와 국립오페라단을 생각해 보면 되겠다)


비첨은 이후 39년까지 런던 필을 정기적으로 지휘한다. 의사의 조언으로 39년 안식년을 가지고 지휘에 손을 떼는 순간 전쟁이 터지며 비첨은 미국으로 피란. 만수르급 위엄답게 미국으로 가기 전 런던 필에 돈을 쏟아부어 런던필은 재정자립을 이루어낸다.


여담이지만 비첨이 46년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설립하는 배경도 여기서 나온다. 귀국 후 다시 만난 런던 필하모닉은 이제 급료를 받고 지휘해야 되는 독립한 오케스트라. 그렇게 비첨은 쿨하게 거절하고 로열 필하모닉을 만들어버린다.


  1. 퀸즈 홀(Queen’s Hall) : 1941년 런던 대 공습으로 파괴된 런던의 공연장. BBC 심포니와 런던 필하모닉의 상주홀이었다. [본문으로]
  2. 사실 1915년부터 5년간 할레 오케스트라의 음악고문으로 있기는 했다. 제대로 된 상임을 맡은 적이 없다는 뜻이지 싶다 [본문으로]
  3. 런던 필하모닉 결성 당시 비첨은 음악원을 갓 졸업한 새내기들도 끌어모은다. [본문으로]
  4. 델리어스의 관현악곡 ‘브리그의 장날 – 영국 광시곡’ [본문으로]
  5. 베이트먼이 하도 많아서… 동시대 풍자만화가 Henry Bateman이 아닌가 추측. [본문으로]
  6. 레온 구센스 (Léon Goossens, 1987 - 1988) : 영국의 유명 오보이스트. 유명 지휘자 유진 구센스의 형. cf. 구센스 집안은 영국의 유명한 음악가 가문.. [본문으로]
  7. Modesty of nature: ‘햄릿’ 3장 2막의 햄릿의 말. 집에 있는 햄릿은 요상하게 번역되서, 현대영어판과 적당히 대조해서 번역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