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번, 변화의 바람 – 에든버러 축제의 브루노 발터 (1951년 8월 28일)
(네빌 카더스가 ‘맨체스터 가디언’ 런던 주임으로 임명되고 쓴 최초의 글 )
캐슬린 페리어를 반주하는 브루노 발터. 1949년 에든버러 축제
비 내리는 안식일의 에든버러, 브루노 발터와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가 선보인 브루크너 4번 교향곡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정말 인상적인 해석이다. 탄탄한 근육질이 떠오르는 강건한 음색은 눈길을 끌었다. 브루크너가 가졌을 생각도 풍부하게 그려졌다. 나는 뉴욕 필하모닉이 기교적 효율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상황에 동의할 수 없다. 그들이 브리튼 섬에서 작곡가가 평생 정직하게 썼을 음표를 연주하면 어김없이 구호와 외침이 들린다. ‘영혼이 빠진, 관점 부재의, 냉혈한’ 따위의 이야기 말이다. 비슷한 상황이 몇 년 전 푸르트벵글러와 베를린 필하모닉이 연주하던 그때도 벌어지지 않았는가. 음악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아주 허접하다. 애정 어린 눈길로 필요한 무언가를 지적하는 대신 ‘모던’ 2한 방식으로 고만고만한 기술을 제안할 뿐이다. 뉴욕 필하모닉은 음악을 만들어 낸다. 화려한 톤은 한 순간도 헛되지 않다. 땅부자가 보여줄 진짜배기 절약이랄까. 뼛속까지 배인 육감으로 빠르고 확실하게 강세를 조절하는 모습은 전혀 기계적이지 않았다. 투박한 기질을 숨기지 않았기에 자연스러운 연주였고, 이를테면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가 선보이는 최고급 크롬 도금과는 전혀 다른 경지였다 3.
발터와 뉴욕 필하모닉
브루크너는 영국에서 오해되고 있는데, 청중 모두가 그 위대함을 알아챌 날은 꽤나 멀어 보인다. 우리의 바쁘신 평론가들께서 참을성 있게 브루크너를 들어주실 일은 더더구나 요원하다. 나는 마지못해 브루크너를 들으며 몸부림 치는 평론가를 보면서 천국과 영원 너머 지루함의 전주곡이 떠오른다. 브루크너는 사랑과 신념으로 인내하며 들어야 한다. 작곡가 스스로 산맥 같은 교향곡들과 함께 하며 이런 덕목들을 가졌으니 말이다. 브루노 발터는 정상에 펼쳐진 황금빛, 어쩌면 놋쇠빛깔 일출을 안일하게 가로질렀다. 지휘자는 바람 찬 계곡 사이로 청중을 이끌었지만 굽이치는 풍경과 흐르는 개울가를 강조하지는 않았다. 나는 산만했던 브루크너에 연결고리와 낭만을 부여하는 해석에 깜짝 놀랐다. 브루크너는 비논리적이다. 그러나 재차 강조하건대, 해석 아래 브루크너는 논리적이고 타당했다. 수수께끼와 불합리를 지우기 위해 으레 하던 명상도 없었다. 헌신적으로 신을 찬미하던 수도사는 반복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오직 황홀함이 있을 뿐이다. 발터 씨 4는 황홀함을 응시했다. 비록 안단테악장이 늘어졌지만.
브루노 발터, NBC 심포니 오케스트라. 2악장 안단테. 1940년 2월 NBC 실황
해석은 브루크너의 사고방식과 마음에 대한 새로운 무언가를 끌어냈다. 브루크너를 잘 모르면서 일단 베토벤, 슈베르트와 겨룰 거장 정도로 여길 모두에게 유효할 시선이다. 매사에 열심인 촌뜨기 교사야 말로 브루크너에 대한 흔한 시선 아닌가. 사실 브루크너 관현악은 복잡미묘하기에 교향곡 바닥에 촘촘하게 깔려있는 표지판과 교차로들을 지나치며 번뜩이는 영감과 드넓은 정신세계가 뜬금없이 드러나곤 한다. 단언컨대 브람스가 버틸 수 없어 뛰쳐나갈 그런 세계인 것이다. 추종자들도 의심 없이 받아들인 브루크너의 유연한 위력, 형태 없이 드러나는 그 위력은 악보를 넘겨가며 작곡가의 틀을 살필 때 드러난다. 허나 브루노 발터가 꽉 붙잡던 방향타 없이 브루크너를 향한 순례를 이어가는 건 꽤나 힘들어 보인다. 브루크너의 오스트리아가 노래하는 그 세계로 말이다. 순박했던 애정과 열정 속 자연으로 음악과 신앙을 빚어나가던 그 예술가는 아마 위대한 영혼이 아니었을까.
첨언: 브루노 발터의 브루크너에 대해서는 카라얀이 직접 언급한 적이 있다. 거대한 크레셴도를 통한 클라이막스 이후에 긴장감이 확 풀린다는게 요지. 심지어 카라얀도 해석을 산에 비유한다.(카더스의 기사를 카라얀이 봤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잠시 든다) 거대한 산 정상까지 돌진한 뒤 그냥 내려오는데, 음악이 맥 없이 가라앉는다는 것이다. 카라얀은 마지막 마디들을 페르마타를 통해 강조해야 종결부의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다 말하고, 실제로 그렇게 한다.
카더스의 지적 역시 비슷하다. 논조가 왔다갔다 해서 헷갈릴 여지가 있지만 요약해보자. 강한 논리를 통해 혼란스러울 수 있는 브루크너의 교향악을 한 방향으로 이끄는데 성공했지만, 정신성과 본질에 안일한 부분이 있었다. 정도가 아닐까. 사실 폭렬적인 발터 해석의 뼈대를 생각해 볼 때 그의 브루크너가 좋은 조합인지는 잘 모르겠다. 실제로 남아있는 녹음을 들어봐도 그렇고..
발터는 에든버러 축제에 정기적으로 참여했고 실제로 녹음도 여럿 남아있다. 53년 빈 필 독일 레퀴엠이 그 중에선 유명할테고, 캐슬린 페리어를 반주한 49년 리사이틀도 유명하다.(발터와 페리어의 첫 만남은1947년 에딘버러에서 연주한 대지의 노래이다)
- 카더스는 New York Orchestra, New York Philharmonic Orchestra, New York Philharmonic Symphony Orchestra 등의 다양한 단어를 구사했지만 여기선 뉴욕 필하모닉으로 통칭하겠다. [본문으로]
- 모더니즘과 통하는 의미로서 ‘모던함’. 빅토리아 시대에 유년기를 보낸 네빌 경의 입장에서, 모던하다는 표현은 상당히 직설적인 비판일 것이다. 단어를 직역해도 우리는 그런 배경이 없기에 함의를 제대로 느낄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 [본문으로]
- There is nothing here of the chromium plate of the superb Philadelphia Orchestra, which, even if it fell info mortal error or insecurity, might easily find reason for not playing at all. 필라델피아 비유 사이에 조건 절이 붙어있는데, 맥락상 도저히 집어넣을 수가 없어서 일단은 빼버렸다. 영어실력이 더 좋아졌을때 다시 건드려 볼 수 있도록… [본문으로]
- Herr Walter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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