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크너 교향곡 8번 (1951년 10월 23일)
요제프 크립스, 뉴욕필하모닉.1961년 뉴욕 실황
지난밤 로열 페스티벌 홀. 런던 심포니가 요제프 크립스의 장대한 지휘 아래 브루크너의 8번 교향곡을 연주했다. 관객들은 숨죽여 네 개의 거대한 악장을 들었다. 8번은 절대 접근하기 쉬운 교향곡이 아니다. 예컨대 7번 교향곡마냥 길게 노래하는 악절은 보이지 않는다. 여기 브루크너는 상승부에서 짧고 하품까지 나는 음형들을 반복시키며 교향곡을 다져나간다. 반복되는 음형 1들은 금관의 하강 경과구와 조바꿈, 게네랄파우제 2에 의해 갑작스럽게 끊긴다. 누군가 브루크너를 처음 들었다면 한슬리크 3의 열변에 공감할지도 모르겠다. “브루크너는 짧은 반음계 모티프로 곡을 시작한 뒤 이를 끊임없이 반복하고 무한정 음계를 상승시키며 쭉 늘이다가 확 줄이면서 엇갈리는 움직임을 만들어 끝내 듣는 이가 기약 없는 한숨 아래 짜부라지게 만든다.”
포괄적인 음악예술의 관점에서만 브루크너가 내놓은 재료는 그럴듯한 크기로 가공될 수 있다. 브루크너를 순박한 작곡가로 여기던 낡은 머리론 상상 못 할 관점일테다. 짜임새 있는 감정표현에 서툴지만 반면에 특유의 복잡한 음악 사고-미묘한 조성관계에서 드러나는-를 만들어낸 브루크너는 역설덩어리다. 그의 목소리가 갑작스레 바뀌듯이 음악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예상했겠지만 평론가들은 낡아빠진 이빨로 브루크너를 물고 늘어진다. “너무 늘어지고”, “산만하고”, “형식을 찾아볼 수 없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명상을 통해 우리는 자유로운 마음 속으로 향하는데, 형식논리가 없는 세계임은 분명하다. 합리적인 브루크너의 팬이라면 그 결점들을 거부하지는 않으리라. 지루하고 불필요하게 반복되는 순간은 그 세계의 중요한 특징이자 어쩔 수 없는 결점이다. 그렇게 우리는 한 곡씩 한 곡씩 가슴으로 품게 된다. 고백하건대, 8번 교향곡을 최고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허나 천재성 하나로 묵직함과 광대함, 불필요한 꼬리 모두를 작곡했다는 사실을 브루크너는 아마 성을 내며 거부했을 것이다.
작품은 강세와 향기, 정신자세, 극도의 진실됨, 염원, 용기, 인내를 한꺼번에 보여준다. 의심 없이 이런 덕목들은 미학을 뛰어넘은 도덕의 차원에 포함된다. 고향 4에 대한 애정 그리고 하느님의 전지전능함에 대한 회한조의 음악을 작곡한 브루크너를 논할 때 빠져선 안될 덕목이기도 하다. 요컨대 브루크너는 ‘오스트리아 엘가’다. 물론 둘은 다른 교파 5인데다 브루크너에 곁들여진 바로크 음악은 덤이다. 또한 브루크너가 자연과 조국에 쏟은 애정은 무지렁이 농부(der Deutsche Michl)가 가졌을 애정인데, 이를테면 제국의 땅덩어리가 무지막지하게 넓어지는데는 6 전혀 신경 안 쓸 그런 종류인 것이다.
이 나라에서 브루크너가 더 큰 지분을 얻을 확률은 작아 보인다. 브루크너는 말러처럼 매력적인 기악을 확실하게 뽐내지도 않는다. 적어도 말러의 기악적 양분은 종종 영국 현대 작곡가들이 가져다 쓰기라도 하니 말이다. 교향곡들은 작곡가가 바라보는 도덕적 실존에 가장 가깝게 다가섰다. 육체의 어느 부분보다도 가깝게. 거기 풍기는 음과 향은 가장 깊숙한 차원의 예술이 되었다. 또한 자기를 의식하지 않는 본능에 가까운 경지라는 관점에서, 8번 교향곡은 몇 년간 악보를 뚫어지게 연구해야 될 정도로 완벽한 수준에 이르렀다. 처음부터 끝까지 화려함과 점잖음에 초연한 음악을 생각해보라. 순간 음악은 꽤나 졸렸지만 나는 어느 때보다 브루크너의 위대함과 음악이 가진 영감에 감화되었다. 비록 아직도 8번 교향곡의 가장 뜨거운 정수를 내 손에 쥘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첨언: 크립스란 지휘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전후 빈 오페라의 재건과정에서 큰 역할을 맡았고(흔히 "테아터 안 데어 빈 시절"이라 부르는), 짧은 런던 심포니 재임기간에도 좋은 성과를 꽤나 남겼지만 말이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건 아닌게 심지어 런던 심포니 홈페이지에도 별 다른 언급이 없다. 캐안습... 오스본의 카라얀 평전에서도 카라얀을 불쾌하게 여기는 지휘자1 정도로 언급되고. 뭐 그렇다.
하지만 저 두 자리는 시기상으로 상당히 중요해 보인다. 빈 슈타츠오퍼는 전후 새로운 성악가 풀을 바탕으로 다시 세계 최고의 극장으로 재건되는데 성공하는데, 그 바탕엔 크립스의 공로가 적지 않다는게 개인적인 생각. 런던 심포니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상임 지휘자를 쭉 훓어보면 알 수 있다. 니키슈, 비첨, 멩엘베르흐, 코우츠, 하티. 그리고 크립스, 몽퇴, 케르테츠, 프레빈, 아바도, 엠티티. 전쟁 이전과 이후 지휘자 스타일이 확 달라지는걸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크립스의 50년대 초반 런던 심포니 녹음부터 그 소리가 들린다. 우리가 런심 사운드라고 부르는 그거. 그래서 나는 크립스가 런심 사운드의 초석을 깔고, 이게 몽퇴랑 케르테츠에서 조금씩 발전하다가, 프레빈이 터트린 다음, 아바도가 말아먹었다는 가설을 미는 입장이다.
크립스와 굴드
아무튼 크립스는 런던 심포니와 여러 녹음들을 많이 남기고, 그중 알려진 녹음은 슈베르트 교향곡과 베토벤 교향곡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베교는 그저 그랬고, 슈베르트는 정말 좋게 들었는데 콘체르트허바우와 남긴 모노 녹음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아무튼 카더스 입장에서도 크립스는 그저 듣보 지휘자였는지 크립스에 대한 이야기는 딱 한줄로 끝낸다. 그러고서는 쭉 브루크너 이야기. 근데 사실 저번 4번 교향곡 글과 비슷한 맥락이라 대충 훓어도 내용이 보이는 느낌. 카더스가 브루크너에 대해 할 말은 대충 정해져 있는데 포인트는 영국 관객과 멍청한 평론가들이 브루크너의 진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정황상 영국에선 브루크너가 인기가 없었던걸로 보이는데 월터 레그가 아직 영국에서는 브루크너를 연주할 때가 멀었다며 클렘페러에게 말했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참고로 크립스가 지휘한 판본은 1892년 요제프 샬크 판본이다. 크립스는 유난히 빠른 템포를 가져가는 편인데, 솔직히 연주가 좋은지는 모르겠다.
- 원문은 Sequence. 음악 사전에는 동형진행으로 나와있지만, 문맥상 앞문장의 음형 반복을 일컫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다. [본문으로]
- Total silence. ‘브루크너 휴지’ [본문으로]
- 에두아르트 한슬릭 (Eduard Hanslick, 1825 - 1904): 프라하 태생의 오스트리아의 음악평론가. 바그너, 브루크너를 반대하며 브람스를 지지한 걸로 유명하다. [본문으로]
- Heimat [본문으로]
- 카톨릭 신자 브루크너와 (아마도)성공회를 믿었을 엘가의 차이 [본문으로]
-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제국이 성립한 사건을 말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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