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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잡설/번역 - 네빌 카더스 평론

카더스 평론 17: 신들의 황혼 (1957년 10월 7일)

by Chaillyboy 2015. 3. 12.

신들의 황혼 (1957 10 7)



Opera지 1957년 10월호[각주:1]


 

전반적으로 탁월했던 신들의 황혼연주였다. 루돌프 켐페가 바라본 반지는 균형감각이 풍만했고, 시작부터 끝을 점쳐볼 수 있었다. “신들의 황혼대단원의 클라이맥스에서 켐페는 자신이 라인의 황금에서 보여준 작은 규모의 처리가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는 걸 보여주었다. 차분했던 발퀴레의 몇몇 장면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비록 기나긴 공연동안 금관군이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용맹했던 코벤트 가든 오케스트라를 탓하지는 말자. 이 나라에서 바그너의 3막을 위해 쌩쌩한 관악주자들을 따로 부르는 대륙의 호화로움을 찾을 여유는 없으니. 켐페는 브륀힐데와 지크프리트의 황홀하게 빛나는 순간부터 하겐과 기비훙족의 어두칙칙한 공간 모두를 섬세하게 조정해냈다.


영웅이 라인강을 따라 움직이는 장면이다. 이제 진실되었던 브륀힐데와 지크프리트에게 작별인사를 하자. 지금부터 변용과 카타르시스가 타락한 세계로 뛰어들 테니. 브륀힐데와 지크프리트는 서로 배신한다. 그리고 바그너는 모두를 배신한다. 바그너가 자기 음악에 항상 만족하지는 않았을 거다. 합창은 뻔뻔해졌고, “맹세복수따위의 뒤쳐진 이야기를 하는 걸 보라. 악보에 새겨진 요소들은 작곡가 바그너가 그렇게도 떨쳐내려고 하던 것들이 아닌가.


바그너가 악역을 만드는 순간에 정직함, 내지는 베르디가 가졌던 천재성이 부족했다니 정말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다. 조화로운 음악이 떠오르긴 하지만, 바그너는 하겐을 통해 바깥세상의 악을 그저 표현했을 뿐이다. 여기 그가 작곡한 많은 음악이 모방을 넘어서지 못했다. 바그너는 베르디의 이아고처럼 역할 속에 매혹적이고 물결 치는 듯한 절묘함을 새겨 넣지 못한 것이다. 이아고가 카시오의 꿈에 대해 속삭이며 오텔로의 귓가에 부은 독약을 바그너는 알지 못했다.


지크프리트가 하겐의 마수에서 풀려나는 순간, 지크프리트의 죽음으로 브륀힐데가 평범한 여인의 감정과 욕정에서[각주:2](끔찍한 말이지만, 바그너가 잠시나마 그렇게 연주하랬으니) 풀려나는 순간, 바그너는 특유의 손길과 함께 웅장한 순간으로 돌아온다. “신들의 황혼” 2막은 지크프리트와 브륀힐데 뿐만 아니라 진짜배기 바그너 음악이 어떻게 더럽혀 졌는지를 보여준다. 잠깐이라니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원상복귀는 엄청나게 힘들었다. 켐페는 변화의 포인트를 한 번도 빼먹지 않았다. 장송 행진곡은 치고빠짐과 변화가 절묘했으며 섬세한 진행에는 심오함마저 느껴졌다. 비르기트 닐손은 세기의 목소리로 브륀힐데를 불렀다. 이젠 빛나고 고귀하며, 격렬하기까지 한 목소리이다. “희생 장면의 마지막 구절에서 영적인 무언가만 있었다면 완벽했을 가창이었으니.


빈트가센은 오늘날 볼 수 있는 지크프리트중에 가장 뛰어나다 할 수 있겠다. 그가 죽어가는 첫 장면은 뛰어났는데 연기는 감동적이고 노래 역시 웅변적이었다. 헤르만 우데의 군터는 근엄함과 비감을 가졌으며, 구트루네를 노래한 엘리자베트 린터마이어 또한 약한 감정선과 음색을 잘 살렸다. 그 역할에 가련한 그림자가 졌으니 말이다.


쿠르트 뵈메의 하겐은 충분한 울림을 가졌고, 그가 더러운 일에 능하다는 걸 널찍하게 암시했다. 발트라우테에 대해 말하자면, 마리아 폰 일로스바이는 단 한 장면 등장했지만 우리 시대 바그너 성악가에 걸맞게 위엄있는 딕션으로 무대를 지배했다.


다시 말하지만 멍청한 연출은 기억에 남을 연주를 거의 끌어내리는 수준이었다. 바그너를 연출하는 상징적인 새 방법들은 아마도 좋은 방식일 것이다. 하지만 넌센스를 만들뿐인 구닥다리 리얼리즘은 정말로 비난받아야 한다. 지크프리트의 시체는 가구처럼 옮겨졌는데 비르기트 닐손이 자신을 불태우려 향하는 중이었다. 절정의 순간 그녀는 횡한 무대에 홀로 서있을 수 밖에 없었다. 무대가 마치 콘서트홀로 보이는 상황이었다. 좀 있으면 꽃다발을 받는 브륀힐데를 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왜 오늘날 반지 연출가들은 바그너의 합리적인 지시사항들을 죄다 무시할까. 바그너를 통해 자기를 과시하려는 탓인가.




첨언: 링사이클이 드디어 끝났다. 장대했던 평론은 결국 연출에 대한 넉두리로 끝을 맺었으니 그저 웃픈 상황. 대부분의 논조는 앞선 글과 비슷하지만, 특이할 점 하나라면 카더스가 "신들의 황혼"을 바라보는 시선이 복잡미묘하다는 것이다.


어쩐일로 카더스가 바그너를 까는데, 이래저래 풀어썼지만 요약하자면 "2막 싫어". 사실 "신들의 황혼"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입장이라서, 카더스의 말에 대강 수긍이 가는 상황이다. 바그너식 장황/산만함은 이젠 어지간해선 즐기는 상황이지만, 아직 신들의 황혼은 적응이 덜 됬다 해야되나... 카더스가 파르지팔 2막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지가 궁금하다. 여담이지만 책에는 라이너의 코벤트 가든 파르지팔 평론이 포함되어있다.(임모탈 퍼포먼스에서 1막 발췌로 발매)


방학동안의 번역작업은 이 정도로 정리할까 싶다. 학기 중에도 꾸준히 진행하고 싶은데, 진득하게 앉아 번역할 마음의 여유가... 




  1. 프릭이 뵈메의 땜빵이였나보다.. 자세히는 모르겠다. [본문으로]
  2. Bitchiness. 도대체 이걸 어떻게 번역할까 하다 적당히 점잖은 단어를 사용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