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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잡설

필립 K. 딕 -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1968년)

by Chaillyboy 2016. 8. 1.


소설이 영화보다 낫네요. 오랜만에 읽은 SF였습니다. 여기저기서 SF 좋아한다 말만 많고 정작 읽은 건 별로 없는... 아마 몇 안 되는 소설이 스타니스와프 렘의 <솔라리스>나 로저 젤라즈니의 중단편선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라서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손꼽힐만한 경험이었으니까요. (여담이지만 젤라즈니는 세계문학전집으로 묶인 판본은 사지 마시길. <프로스트와 베타>가 빠져서 구매 의미가 없습니다)


원래 블로그에 책으로 글을 남길 생각은 없었지만, 남기는 이유는...



반가운 이름이 나오더군요. 필립 K. 딕은 유명한 음악애호가죠. 28년생인 딕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스반홀름, 사양 (영미권 습관상 사야오라 읽었겠죠), 레만, 핀짜, 쿨만같은 전전(戰前) 황금가수부터, 5-60년대 킹, 델 모나코, 테발디, 바르나이, 바스티아니니같은 위대한 냉전 가수를 모두 경험했을 겁니다. 지인들에게 열정적으로 '런던' 레이블에서 나온 <라인의 황금> 레코드를 소개했다는 증언도 있죠. 네, 존 컬쇼가 기획한 전설적인 데카 반지 맞습니다.


흥미롭습니다. 딕은 오페라를 단순한 팬심으로 언급하지 않습니다. 주인공 데커드는 안드로이드 성악가를 사냥하며 처음으로 '감정'의 혼란을 느낍니다. 그(와 독자)의 혼란은 동심원을 그리며 서서히 커져가죠. 음악 애호가라면 사냥꾼이 사냥감에게 '슈바르츠코프처럼 노래한다' 말하는 게 그저 사무적인 감정이 아니란걸 느낄겁니다. 안드로이드 성악가라는 새로운 범주를 인식하며 생기는 모순, 게다가 팬이 느끼는 공감과 애정을 물건에서 느끼면서 오는 묵직한 혼란이 얹히는걸 그리는 장면이기 때문이죠. 어쩌면 이런 구성은 작가가 애호가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애정 어린 선택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음악을 소재로 쓴 - 김기택의 <전원 교향곡>같은 - 시와는 전혀 다른 감성이기도 합니다.


여담. 유럽 파시즘은 자기 예술 생태계를 스스로 파괴했고, 미국 서부는 순식간에 풍요로운 (유럽의) 문화적 토양을 집어삼킵니다. 음악은 특히 극적이죠. 3-40년대 샌프란시스코와 LA의 공연 실황들이 좋은 예시인데, 정말이지 다시 올 수 없는 과거입니다. 샌프란시스코 오페라는 아카이브가 착실한 편인데, 4-5-6-7-80년대로 넘어갈수록 가수의 기량이 적나라하게 떨어지는 게 보이니까요. 


물론,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고음악과 실내악 단체, 그리고 서부 오케스트라는 절대 엉터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어지간한 유럽의 생태계를 능가할 정도죠. 게다가, 하향새가 너무 급격해서 아무도 모르게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진 남미의 극장을 생각해본다면, 샌프란시스코 오페라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찌 됐건, 여긴 미국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