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하르트 바그너: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1867)
한스 작스: 한스 헤르만 니센
에파: 마리아 라이닝 (1936: 로테 레만)
발터 폰 슈톨칭: 헹크 누트 (1936: 찰스 쿨만)
식스투스 베크메서: 헤르만 비더만
막달레나: 셰르스틴 토르보리
파이트 포크너: 헤르베르트 알센
다비트: 리하르트 잘라바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빈 국립오페라 합창단, 빈 국립오페라 발레단
연출: 헤르베르트 그라프
무대 디자인: 로베르트 카우츠키
의상: 빌리 바너
복각: 리처드 카니엘
1937년 8월 5일(1936년 8월 8일), 축제극장, 잘츠부르크
Immortal Performances IPCD 1069-5
1930년대 중부유럽의 풍파로 많은 녹음이 실종된 걸 떠올린다면, 토스카니니 <명가수>가 최근 겪은 불운은 사소한 일화도 못될 겁니다. 두 가지가 떠오르네요. 1
세스 위너와 워드 마스턴은 2000년대 초반 연주를 "들을만하게" 만듭니다. 기적적인 작업이었죠. Andante에서 나온 음반은, 하지만, 회사가 통째로 망하며 현재 1,000달러가 넘는 가격에 팔리고 있습니다. 이런 연주에 으레 있는 조악한 복각은 또 다른 불운이죠. 토스카니니를 오해시키고 순진한 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입니다. 예컨대 연주를 처음 발매한 Eklipse 레이블은 적법치 않은 절차로 마스터를 구했고, 복각 또한 수준 미달입니다. 최근 저는 주세페 디 스테파노라는 정체불명의 레이블까지 목격했죠. 표지와 내지가 다른 말을 하는 경우도 있고요. 최근 아카이브.com에는 안단테를 능가하는 복각이라 자랑하는 음원이 올라왔지만, 전문가의 의견은 다릅니다. 뻔한 작업으로 음질을 속이는 수작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대다수가 안일한 마음으로 1,000불을 내거나 정신분열 리마스터링에 만족할 때, Immortal Performances 협회의 리처드 카니엘은 문제를 느꼈다고 합니다. 문제의식이 새로운 복각을 낳았죠. 2013년에 시작한 작업이 최근 끝나 토스카니니 150주년을 기념해 출시됐습니다. 결과는 상상 이상입니다.
리마스터링에는 여러 층위의 경지가 있습니다. 이건 음질 개선과 전혀 다른 문제에요. 예컨대 DG가 자랑하는 OIBP는 단순한 신호처리 기법에 불과합니다. 음원 전체에 기법을 적용해 다이내믹과 해상도를 높이는 거죠. OIBP의 탁월한 성과를 감사하게 듣는 입장이지만, 수준 높은 복각이라 보기는 힘들어요. 기술 자체에 철학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향점도 불분명하잖아요?
한 차원 높은 복각은, 음질을 색다르게 바라봅니다. 예술가를 심층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죠. 요컨대, 철학이 있습니다. 오해하진 마세요. 잡음이 음악성을 만든다는 '감성복각'을 말하는 게 아니라구요. 정체불명의 맥락으로 감수성을 건드리는 복각도 아닙니다. 고차원의 관점은 연주 당대의 오디오 지향점과, 그것과 연주 사이의 상호작용을 이해합니다. 따라서 조건 없는 잡음제거를 반대하고, 명료함에 대한 맥락 없는 지향 역시 반대합니다. 또한, 예술가를 바탕으로 복각을 시도합니다. 당대의 비평과, 동료들의 증언을 종합하고, 시대의 맥락과 연주공간의 음향적 특성까지 머릿속에서 재구성합니다. 그런 정보를 바탕으로 낡은 녹음에 생명을 불어넣는 거죠.
리처드 카니엘이 그렇습니다. 그는 토스카니니 전담 엔지니어 리처드 가드너를 사사했고, 1966년에 일찌감치 <명가수> 마스터를 확보합니다. 상당수의 토스카니니 연주는 그를 거쳤습니다. 이 음반은 반세기간 그가 이해한 토스카니니를 집대성한 결과입니다.
몇 가지 짚어보죠. 원본 녹음은 토스카니니를 제대로 담아내질 못합니다. 먼저, 마이크 배치에 문제가 많았습니다. 비정상적으로 목관과 호른이 돌출되고 성악과 현악이 과도하게 억제되었습니다. 토스카니니 미학을 생각한다면 이건 심각한 오류인데, 본인도 연주 직후 들은 녹음에 불만이 많았다고 합니다. 원본 매체 또한 문제가 있습니다. 당대 관행과 다르게 이 녹음은 셀라노폰이라는 광학 필름에 기록되었습니다. 셀라노폰은 테이프 교체 주기가 비교적 길어 녹음 작업이 편하지만, 음향적인 단점이 분명하죠. 다이내믹이 답답할 정도로 제한적입니다. 게다가 고음이 거칠고, 금관이 과하게 강조되죠. 심지어 녹음기사가 녹음 레벨을 계속 바꿉니다. 여기에 광학 필름의 특성상 시간이 지나며 잡음과 왜곡이 급증합니다.
워드 마스턴의 Andante 복각은 셀라노폰의 열화를 해결하는 데 집중합니다. 저주파 잡음을 줄여 원본에 가까운 소리를 들려줍니다. 요컨대 토스카니니가 불만을 표시한 그 음을 살려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토스카니니 본인은 재껴두죠... 감상에 아무런 장애가 없고, 놀랄만한 깔끔함과 묵직한 음밀도 때문에 이쪽을 선호하는 감상자도 많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현재로선 파란 Memories 레이블이 - 허가없이 복사한 - 마스턴 복각을 상식적인 가격에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아무튼, 리처드 카니엘은 멀리 내다봅니다. 토스카니니가 중시했던 자연스럽고 균형이 뛰어난 음향을 살리는 목표 말입니다. 이거 잿더미로 건물을 되살리는 격 아닙니까? 먼저, 과도한 목/금관을 줄이고 현악/성악의 밸런스를 당깁니다. 그리고 셀라노폰 매체의 근본적인 한계를 지웁니다. 좁혀진 다이내믹을 놀랄 만큼 살려냅니다. 대단한 결과에요. 생생하면서 감각적인 음향, 즉 넓게 트인 음향을 부활시키니까요. 물론 여기서 잃는 것도 많습니다. 필터링을 자제해 잡음이 남아있고, 고음이 거친 편입니다. 원본 마스터의 한계인지 땜질한 듯 끊기는 순간도 많습니다. 본인 역시 이런 한계를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집중을 해치는 단점에 불만을 느끼면서도, 이 결과를 몇 번 들으니 마스턴의 좁은 원본 다이내믹에 손이 가질 않습니다. 2
카니엘은 토스카니니 사운드를 실증적으로 복기합니다. 가드너의 증언을 바탕으로 토스카니니가 만족했던 음반(1951년 베르디 레퀴엠)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토스카니니의 스튜디오 바그너 녹음들도 참고했습니다. 또한, 1936년 <명가수> 음원을 참고했으리라 추정합니다. 중요한건, 수 십 년간 토스카니니를 다루면서 쌓인 독창적인 이해가 복각을 완성했단 점일겁니다.
(잠깐 짚죠. 1936년 <명가수>는 녹음 주체가 홀란드 방송국입니다. 오스트리아 기술진이 녹음한 1937년과 음향 특성이 완전히 달라요. 토스카니니는 37년과 달리 이 녹음을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전보기사의 실수로 이 녹음과 1935/6년 <피델리오>는 미국으로 옮겨지지 못합니다. 1938년 나치는 잘츠부르크를 점령했고, 마스터가 파괴됩니다. 다행스럽게 그 찰나에 78rpm으로 연주 일부가 옮겨져 지금까지 살아남습니다. 미국으로 숨은 잘츠부르크 연주는 1937년 브루노 발터가 지휘한 두 편의 오페라 - <피가로의 결혼>과 <돈 조반니>, 토스카니니의 <명가수>와 <팔스타프>, <마술피리>입니다)
재밌는 건 시작 박수를 모두 자릅니다. 이것도 여러 증언을 토대로 한 논리적인 선택입니다. 토스카니니는 관객의 박수를 병적으로 싫어했어요. 축제를 취재한 뉴욕타임스에도 묘사되었죠.
"환호와 열광, 발 구르는 소리가 3막에 앞서 등장한 마에스트로를 뒤따랐다. 소리가 줄어들자 한 남성이 박스석에서 Eviva Toscanini(영원하라 토스카니니)! 를 외쳐대며 분위기를 되살렸다. 지휘자는 이를 갈고 보면대를 분노의 바톤으로 내려치며 짜증을 감추지 않았다." (1937년 8월 6일)
자료를 종합해 카니엘은 막을 시작하는 박수를 자르고 - 안단테 발매에는 남아있습니다 - 끝날 때의 환호와 열광만 남겨놓습니다. 토스카니니라면 박수를 자를 거란 생각이었겠죠?
호불호가 뚜렷할 선택들이에요. 이 사람은 거침이 없죠. 본인의 감각을 확신하고, 논리로 뒷받침합니다. 워드 마스턴의 장인정신과 놀랄만한 완성도조차 차원이 다른 접근으로 압도합니다. 이건 예술적인 복각입니다. 여러 흠을 알면서도, 설득당하고, 듣을 수밖에 없죠. 결국 예술이란 흠집까지 세계관의 일부로 포섭하는 것이니까요.
(브루노 발터, 토마스 만,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1935년 잘츠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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