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 - 올라프 베어/제프리 파슨스(1986, EMI). 젊고 아름다운 목소리지만 당사자성이 희미해 아쉬움이 많다. 안정된 가창이라는 느낌이 막 들지도 않는다. 묘하게 맥아리가 없는 것은 해석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센 음이 묘하게 떨리거나 특정 모음이 왜곡되는 경향은 한번 들린 다음부턴 계속 신경 쓰여서 개인적인 아쉬움이 남는다. 다만 유명한 19번 곡(데어 뮐러 운트 데어 바흐)는 순음악적으로 좋은 연주같다.
신세대는 옛세대의 과잉을 항상 부담스러워하고 이건 연주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베어가 등장하던 맥락 역시 올드스파이스같은 기존 가창에 대한 부담이 아니었을까 싶긴 하다. 시를 듣는다는 관점에서 나는 이런 목소리가 좋긴 하다. 하지만 올드스파이스가 광고를 바꿔달고 부활하듯이 베어 이후에 괴르네가 나왔을 뿐이고.. 위에서 언급한 아쉬움과 내가 이 곡에서 바라는 점을 종합하면 그냥 테너 버전의 大 프레가르디엥을 들을듯(DVD 되게 좋았다).
샹송 프랑수아의 1953-4년 프랑스 방송/실황(1953-4, Meloclassic). 정말 아무런 감흥도 없음. 그래서 연주에 대해선 할 말이 별로 없다.
레이블 이야기. 멜로클래식에는 이런 밍밍한 음반이 유난히 많아서 여러모로 당황하곤 한다. 연주자 이름과 프로그램을 기대하고 샀다가, 이게 내가 알던 그 사람인가 싶은 의구심과 이딴걸 발매하나 싶은 레이블 비난으로 끝나는 구매. 하지만 유난히 보석같은 연주도 잊을만 하면 발매하는 레이블이라 버릴 수도 없다. 하지만 이런 녹음까지 죄다 내는건 곰탕에 물 타는 방식의 장삿속이라는 것이 이제는 분명해보인다.
근데 한편 내가 프랑수아랑 잘 안맞나 싶기는 함. 다른건 모르겠는데 실황 프랑수아를 좋게 들은 적은 거의 없다.
한스 슈미트이세르슈테트/BBC심포니의 1971년 런던 실황(1971, BBC Legends) - 이세르슈테트 실황이 별로였던건 이번이 처음인듯. 구렸던 순서대로 언급하자면 우선 티페트. 영국 작곡가는 영국음식보다 나쁘다는 심증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그것은 틀리지 않았다. 어차피 영국 입장에선 비틀스와 아델 보유국이니 별로 아쉬울 건 없겠지만.. 브람스는 관현악 짜임새가 충분히 단단해지지 않는데 지휘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여름밤에 들으면 생각보다 괜찮을지도.. 오이리안테 서곡은 훌륭한 연주다. 그러나 옛 세대 거장들이 선호하던 이 낭만주의 서곡에는 훨씬 탁월한 연주가 즐비해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번, 29번, 바가텔 Op.126 No. 1, 4, 6 -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1975, BBC Legends). 올드버러 인근의 교회에서 열린 연주회가 담겨있다. 내지에 의하면 리히터는 프로그램을 공지하지 않은 채로 공연을 진행했다고 한다. 소나타 3번은 훌륭한 연주다. 현악 사중주로 치면 1바이올린이 연주를 주도하는 전통적인 형태의 해석이다. 그 프레이징이 단호하기에 다른 성부가 묻혔다고 느껴지기보단 그들이 중심 테마를 훌륭하게 보조한다는 인상이 더 강하다. 셈여림은 훌륭하게 대비되고 있다. 이런 미덕은 한데 모여 4악장에서 밝게 빛난다.
바가텔 역시 대곡들을 연결하는 단순한 소품을 뛰어넘는 존재감이다.
이어서 연주된 함머클라비어는 첫 인상이 유순하다. 에너지가 곱게 정제된 이런 함머는 처음 들어본다. 직전의 소나타 3번, 바가텔과 대비되는 성향의 연주다. 내지는 시작하는 음의 강려크함을 주목하라면서 "빅뱅" 운운하는데 나는 그와 달리 빅뱅이 없는 우주에 살고 있나... 해설가는 악장간 콘트라스트를 언급하는데 내가 듣기로 이렇게 단악장처럼 연주된 함머는 잘 없었다. 좌우간 이게 리히터 최고의 함머클라비어는 아닐 것 같다. 다만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는 제목에 걸맞게 음이 여운을 남기며 훌륭하게 연주되었다. 푸가 역시 베토벤이 의도했을 보이싱을 얼추 잘 드러냈는데 이건 리히터가 잘하는 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더 거칠고 거침없는 4악장을 선호한다. 그런데 리히터는 이때부터 야마하 피아노를 썼을까? 리히터 특유의 꽉찬 유리알같은 톤은 여전하지만 표준적인 스타인웨이랑은 어딘지 다른 인상이 있다. 하지만 영국 클덕 지인과 이야기를 종종 나누는데 그에 의하면 올드버러는 정말 허허벌판에 있는 깡촌이라고 한다. 거기 페스티벌 가는건 차 있는 '중산층' 아니면 상상도 못한다고(영국 사람답게 아주 삐딱한 사르카즘을 얹어서 말해줬다). 그리고 내 생각에 1975년의 잉글랜드 허허벌판에는 야마하 피아노가 있었을 것 같지 않다.
'지하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TAR 타르(2022) (0) | 2023.02.27 |
---|---|
음반들(하이페츠, 바세비치, 자발리쉬, 기제킹) - 최근 감상 (2) | 2023.0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