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 포레 : 파반느 Op. 50 (1887)
프란시스 풀랑크 :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D단조 FP 61 (1932)
엑토르 베를리오즈 : 환상 교향곡 Op. 14 (1830)
피아노 : 이혜전, 강충모
홍석원, 광주시립교향악단
2023년 9월 23일, 광주예술의전당 대극장, 광주광역시
광주예술의전당 대극장은 걱정했던 것만큼 크지 않았다. 비교할만한 다른 공간(대전예술의전당, 경남문화예술회관, 부산문화회관 등)보다 객석 규모가 작아보였다. 하지만 파반느의 음향이 예상보다 훨씬 멀리서 느껴져서 당황스러웠다. 객석에 비해 무대가 지나치게 깊은 탓으로 추측했으나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
포레의 파반느는 프랑스적인 내밀함(명료한 화성과 프레이즈)을 가진 곡이지만 앞서 말한 음향적인 문제로 연주는 내밀하다기보단 어수선하게 들렸다. 그래도 서늘해진 초가을 공기를 듬뿍 쐬고 온 덕일까. 연주를 듣다보니 어떤 분위기 속으로 조금씩 빠져들 수 있었다.
두 대의 스타인웨이가 제 위치를 찾고 곧이어 이혜전과 강충모가 무대로 나왔다. 오케스트라가 두 대의 피아노와 함께 "꾸짖을 갈(喝)!"같은 강한 소리를 내면서 곡은 시작된다. 풀랑크는 20세기 초 혁신의 치열한 무대에서 개성을 잃지 않고 독특한 어법을 만들어냈다. 감미롭고 수수께끼같은 멜로디는 곡의 여러군데에서 존재를 드러낸다. 여기 몰입할 때 우리는 모차르트의 시대로 향하기보다는 어떤 패러디와 형식과 마주하게 된다. 오늘 연주는 곡의 역동적인 얽힘을 보이는데는 실패했지만, 풀랑크가 의도했을 기묘한 정념에 가까이 다가간 연주였다고 평가하고 싶다.
베를리오즈의 회고록(원문)에는 19세기 초중반 음악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소비되었는지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특히 불안해보이는 연주여건이 나의 눈길을 끌었다. 학생 베를리오즈와 전업 작곡가 베를리오즈 모두 자기 곡이 있는 그대로 연주되게끔 노력했다. 한정된 자원으로 알맞는 공간과 연주자를 동원하여 금전적인 이득을 거둬야 하는 그에게 "악보에 쓰인 그대로 연주하기"란 완벽하게 곡을 쓰는 것만큼 달성하기 힘든 이상이었을 것이다. 베를리오즈는 인디 뮤지션이나 게임 개발자의 임기응변을 발휘했다. 그리고 조악한 환경에 대한 오만가지 불평을 적었다. 그리고는 어떤 수준에서 체념하기도 했다.
이러한 과거에서 내가 받은 느낌은 이렇다. 19세기 음악에는 현대음악 식의 기술적인 정답이 있다기보다는, 고정악상(idée fixe)처럼 물성과 형식이 바뀌어도 영원히 핵심적인 것이 있다. 물성과 형식에 앞서는 악상이라면 그것을 둘러싼 조건들 역시 선결되어야 할 문제는 아닐 것이다. 조건을 '게임의 규칙'이라 생각하면 어떨까? 나는 각 조건에서 달성될 수 있는 최선을 생각하고, 게임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를 감상한다. 예를 들어 스튜디오와 실황은 다른 규칙 속에서 흘러간다. 하이팅크/빈필하모닉(1979, DECCA)은 소피엔잘의 녹음 환경에서만 가능한 독특한 결과이다. 같은 사람이 RCO와 만들어낸 연주(1989, ARTHAUS MUSIK)는 실황, 즉 관객이라는 규칙 속에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다른 예시를 들어보자. 베를리오즈의 회고록에는 그가 멘델스존의 환대를 받은 라이프치히 연주회가 묘사되어있다. 멘델스존이 직접 친 피아노로 하프를 대신한 이 연주회는 꽤나 성공적이던 것 같다. 하지만 2023년에 피아노로 (다른 곡도 아닌) 환상 교향곡의 하프를 대체한 연주는 어떤 평가를 받을까?
홍석원의 지휘는 지난 연주회보다 훨씬 기술적인 모습이 두드러졌다. 그 덕분일까. 구성을 훌륭하게 살린 이번 연주는 단원들이 집중력을 잃지 않은 채로 종악장까지 멋지게 마무리될 수 있었다. 목관 앙상블은 대체로 훌륭했다. 특히 금관과 타악기가 지구력과 함께 짜릿한 순간을 만들기도 했다. 홍석원답게 힘있게 응집된 현악 파트는 곡의 운동감을 잘 살려냈다. 조건을 생각해봤을 때 연주는 훌륭했다. 그러니까 하프를 지휘자의 날개처럼 달아놓지 않더라도 좋은 연주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이제는 악평(악령?)만 남아버린 시민회관 계열의 홀들에서도 좋은 연주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다만 곡에 어지럽게 흩어져있는 악상들까지 살아났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통솔하며 어지럽히는 연출이 어떻게 가능한건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고 오늘도 그 비밀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연주의 흐름은 밋밋했던 1, 2, 3악장을 지나 4, 5악장에서 기괴해진 악상들과 함께 살아났는데 요컨대 오늘 연주는 사랑보다는 마약에 가까웠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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