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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잡설/기타

마술피리 (1964년 잘츠부르크 축제)

by Chaillyboy 2016. 10. 7.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마술피리 (1791)

자라스트로: 발터 크레펠

밤의 여왕: 로베르타 피터스

파미나: 필라르 로렝가

타미노: 발데마르 크멘트

파파게노: 발터 베리

파파게나: 레나테 홀름

대변인: 파울 쇠플러

모노스타토스: 레나토 에르콜라니

첫째 소년: 루치아 포프


이슈트반 케르테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빈 국립 오페라 합창단

연출: 오토 솅크

무대 디자인: 외르크 침머만

의상 디자인: 힐 라이스-그로메스

촬영: ORF


1964년 8월, 대축제극장, 잘츠부르크


VAI 4520


전곡 감상: http://to.goclassic.co.kr/vod/103816


1

운좋게도, 60년대 잘츠부르크의 오페라 영상이 드문드문 남아있지요. 현재로서 시청가능한 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963년 마젤의 <피가로의 결혼>, 64년 케르테스의 <마술피리>, 65년 뵘의 <낙소스의 아리아드네>와 메타의 <후궁으로부터의 유괴>, 66년 뵘의 <피가로의 결혼>. 물론 1960년에 찍힌 기념비적인 카라얀의 <장미의 기사>를 뺀 이유는 잘 아실 겁니다. 그리고 조금 더 완성도 있는 카탈로그를 원한다면 여기에 빈에서 찍힌 62년 뵘의 <룰루>, 메노티의 작품 두 편, 63년 넬로 산티의 <팔스타프>, 빈트가센과 유리나츠가 부르는 <오텔로>를 추가해야겠죠. 이렇게 60년대 ORF의 오페라 카탈로그가 대강 완성됩니다. 물론 이 카탈로그는 70년대로 연결이 안되는데, 그때부턴 제작자가 오페라 영화로 눈길을 돌렸기 때문일겁니다. 아쉬운 순간이죠.


이 영상들은 TV용일겁니다. 세세한 편집을 거의 볼 수 없죠. 실수가 드러나거나, 당시로선 자르는게 당연했을 박수까지 그대로 잡혔습니다. 카메라의 각도나 동선으로 보건대, 작품으로서 영상을 만든게 아닌 것 같죠. 즉, 카라얀처럼 영화관에서 상영할 목적은 더더욱 아니었을겁니다. 


하지만 이런 무심함이 역설적으로, 현장의 생동감에 익숙한 우리의 취향에 맞게 되었습니다. 현 시점에서 카라얀이 만든 오페라 영화들이 얼마나 찬밥 신세가 되었는지는 굳이 되새길 필요는 없겠죠. 물론, 그 영화들은 실험적인 가치가 있겠지만, 저라면 차라리 도이체 오퍼에서 찍힌 일련의 실황을 보겠습니다.


2

제피렐리보단 차라리 오토 솅크가 낫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취소해야겠어요. 당대의 감수성으로 연출했다 하더라도, 귄터 슈나이더-짐센의 환상적인 무대가 사라지니 솅크의 장점이 뭔지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어느 하나 알맞는 게 없어보여요.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예컨대, 루돌프 하르트만의 연출은 그런 측면에서 뛰어납니다. 앞서 언급한 카라얀의 <장미의 기사>에서 인물들은 그 위치만으로 말하는 게 분명하죠. 무대와 함께 각자 변위의 조합들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겁니다. 


확실히 이전 세대 제작자에게 동화나 환상 오페라가 얼마나 까다로웠을지가 이 영상물에서 드러납니다. 사실상 그들의 재료는 제한되어 있었죠. 컨셉트는 발이 묶여 있었고, 사실성을 추구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마술피리 역시 마찬가지일텐데, 당시로선 밤의 여왕이 프롬프터 구멍으로 보이는 곳에서 솟았다가 다시 땅으로 꺼지는 정도 연출하는게 가장 적절한 특수효과였을 겁니다.


솅크의 연출은 대체로 동선은 일차원적이고, 그 넓은 잘츠부르크의 무대를 평면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조잡한 소품으로 무대의 깊이를 없애 버리는데, KBS홀에서 똑같은 방법으로 연출하는 개그콘서트를 보는 느낌도 듭니다. 물론, 동시대의 귄터 레네르트가 <피가로의 결혼>을 연출하며 무대 깊이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는걸 생각한다면, 솅크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연출의 장점은 있을 겁니다. 가수들의 연기와 음성 자체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죠. 최근 코미디언 구봉서의 무대 영상을 봤는데, 연출 방향이 이와 비슷하더군요. 인물들은 제한된 동선에서 몸짓과 대사를 제한 없이 활용하며, 관객들을 요리하죠. 이 연주에서 가수들은 어떤 통제도 없이 배역에 대한 자기 해석을 끝까지 드러냅니다. 본능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감각적인 대사 처리와 애드립 역시 이런 조건에서 가능할 겁니다. 


3

사실 캐스팅만 훓어봐도, 이 연주의 질은 어느 정도 보장된다고 할 수 있죠. 케르테스는 스튜디오에 비하면 정도를 지키며, 뻣뻣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적지 않지만, 충실하게 빈 필을 지휘하며 가수를 살립니다. 가수들의 감각이 무대를 지배하는 상황에서 (조지 셀 같은) 괜한 통제나, (경험없는 지휘자들이 보이는) 허튼 수작은, 극을 방해할 뿐입니다. 케르테스는 가수들이 발산하는 상황에서도, 균형잡힌 템포와 음향으로 극의 중심을 잡아갑니다.


가수는 뭐... 발터 베리를 보면 헤르만 프라이가 한수 아래로 느껴질 정도더군요. 프라이의 공들인 성취를 베리는 쉽게쉽게 도달하는 듯 보입니다. 저는 프라이를 좋아하기 때문에, 비교는 이 정도로 하죠. 크멘트는 서정적인 고음이 인상적인데, 얇은 목소리와 단단한 심지가 묘한 대비감을 이루어냅니다. 이런 대비감이 성악적으로 백프로 즐겁지는 않죠. 그런데도 전혀 거슬림 없이 만족스러웠다는건, 크멘트의 목소리 연기가 기대 이상이라는 뜻일겁니다. 기교적으로 고음으로 올라가기 전에 중저음이 미세하게 여려지는 순간이 있는데 이게 개인적으론 취향저격.


반면 파미나와 밤의 여왕은 제 취향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습니다. 필라르 로렝가는 위엄있는 목소리가 인상적이지만 순도높다는 느낌은 안들었어요. 로텐베르거나 폽이 아마 제가 생각하는 이데아가 아닐까 싶네요. 피터스는 좋아요. 음색이 매력적인 데가 있습니다. 물론 로렝가가 그랬듯이 목소리가 순도높지는 않겠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