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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잡설/공연 후기

대전시향 마스터즈 시리즈 6 (모차르트, 차이콥스키, 슈만) - 2017년 6월 22일 대전예술의전당

by Chaillyboy 2017. 6. 23.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교향곡 제35번 K.385 “하프너” (1782)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 Op.33 (1876)
(앙코르)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제1번 BWV1007  (1720?) 
    1. 프렐류드
    6. 지그

로베르트 슈만: 교향곡 제3번 Op.97 “라인” (1850)
(앙코르)
프란츠 슈베르트: 로자문데 간주곡 제3번 (1823)

첼로: 제임스 정환 김
마티아스 바메르트, 대전시립교향악단

2017년 6월 22일,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 대전광역시

마티아스 바메르트가 포디엄으로 느릿하게 올라가 지휘봉을 가볍게 흔드는 동작은 그 자체로 공연 전체를 관통하는 듯 보였다. 그는 마타치치와 라인스도로프를 합친듯한 외모를 가졌지만, 스타일은 두 지휘자에게 전혀 환원되지 않을 것이다. 독일 곡 중심의 오늘 연주는 그의 단점도 보여줬지만, 오케스트라의 수준이 통째로 바뀌었다는 측면에선, 나쁜 오케스트라는 없다는 유명한 금언을 다시 상기시켰다.

"하프너"의 첫 음부터 관현악은 깊고 풍성했다. 커튼을 친 듯한 대전 특유의 악조건에서도 복잡하게 얽힌 현악의 짜임새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하프너"는 좋은 곡이다. 저음과 고음이 엇갈리면서 리듬과 풍성한 음향공간을 만드는 모차르트 특유의 짜임새가 잘 드러나고, 역시나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는 공격적인 목관 사용이 눈에 띄며, 해석에 따라 천차만별의 모습을 보여주는 곡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메르트는 20여분 내내 옛 모차르트 전통처럼 깊고 표정이 살아있는 관현악을, 특히 현악을 들려주었다. 

물론, 이런 구식 모차르트에 거부감이 있거나, 노장 지휘자 특유의 쳐지는 템포가 어색했다면 별로였을 것이다. 실제로 박수는 미적지근했고, 청중들은 깊게 공감하지 못했다. 충분히 이해되는 상황이다. 실제로, 소리의 표정과 별개로, 템포가 축 쳐져 모차르트 특유의 활기찬 흐름을 꾸준하게 막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양극단의 템포 설정이 가능한 미뉴엣과 다르게 1악장과 4악장은 느린 템포에서 설득력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그걸 넘어서는 센스가 있었다. 1악장 저음현과 바순의 패시지는 실수 없이 리듬을 살려냈고, 바메르트의 셈여림 조절로 그 뼈대를 그대로 들을 수 있었다. 2악장의 목관 코랄은 그 동안 이 부분을 왜 그저 들었나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아마 곡의 형식미를 느낀게 아닌가 싶다. 볼륨감의 극단적인 대비로, 목관의 읊조림을 제대로 들은 것이다. 대전에서 이런 연주를 들은건 솔직히 말해 행운에 가깝다.

차이콥스키에서 뒷통수를 맞았다. 관심 없는 곡을 연주하는 관심 없는 첼리스트가, 빼어난 집중력과 기교로 순식간에 감상세포에 불을 붙였다. 부침없는 음색과 망설임 없는 손놀림이 인상적인 제임스 김은 멍해질 수 있는 곡을 그대로 돌파했다. 자신감이 느껴지는 뛰어난 연주였다. 바메르트의 반주 역시 무난하게 그를 도왔다. 저음 현악기의 편성을 줄인 반주가 인상깊었다.

슈만의 경우 논란이 남을 것이다. 큰 편성의 오케스트라가 모차르트만큼 멋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점이 일차적인 아쉬움으로 남았는데, 시간이 흐르며 합주가 나아졌기 때문에 그걸 탓 하고 싶진 않다. 실제로 적재적소에 금관을 강조하거나 쳐질 수 있는 순간 오케스트라를 독려하는 바메르트의 모습은 노련한 거장의 모습이었다. 모차르트가 그랬듯이 3악장의 섬세한 순간들이 살아있었고, 피날레는 장대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표정의 양 극단이 어지럽게 섞여있는 슈만의 곡에선 바메르트 특유의 축 쳐지는 템포에 적응할 수 없었다. 누군가 모차르트에 공감하지 못한 이유로 나 역시 슈만을 제대로 못 들은 셈이다. 산만함을 느꼈고, 처음엔 오케스트라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발작하는 분위기 변화를 살리지 못한데는 지휘자 탓도 있을 것이다. 2악장을 시작하는 "라인"의 흐름은 1악장의 기분좋은 발산을 합쳐 모으지 못했고, 3악장에서 4악장으로 넘어가는 절벽같은 분위기 전환은, 마치 같은 곡인것 처럼 슬며시 이루어졌다.

(물론 단정짓기는 싫다. 대전 대첩을 동점 스코어로 만들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겠지만. 모차르트에서 설명한 이유가 크다. 누군가는 한계를 넘어 또 다른 장점을 봤을게 분명해보여서... 대전시향 평이 올라오는건 흔치 않는 일이지만 그런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이 글 보시거든 댓글이라도 제발~)

그는 8월에 다시 올 것이고, 전혀 다른, 프랑스 레퍼토리를 선보일 것이다. 우려와 기대가 겹치는 선곡이지만, 바메르트는 기본적으로 부침없이 다양한 레퍼토리를 들려줄 사람이다. 풍성한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조련사는 미세한 지휘봉의 낙차로 리듬 구석구석을 살려낼 것이다. 어쨌든 대전에서 이런 연주를 듣기란 쉽지 않고, 그런 의미에서 바메르트의 꾸준한 방문은 가장 짜릿한 사건중 하나임에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