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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잡설/공연 후기

전주시향 221회 정기연주회 (바그너, 슈만) - 2017년 6월 29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by Chaillyboy 2017. 6. 30.


리하르트 바그너: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中 1막 전주곡 (1862) 

리하르트 바그너/펠릭스 모틀: 여성 목소리를 위한 다섯 개의 시 WWV 91 "베젠동크 가곡" (1857-58) 

1. 천사

2. 멈춰라! 

3. 온실에서 

4. 고통 

5. 꿈 

로베르트 슈만: 교향곡 제2번 Op.61 (1845-46) 


소프라노: 서선영 

최희준, 전주시립교향악단 


2017년 6월 29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 전주시 



1.

시작부터 연지홀의 음향에 당황했다. 건조하다 못해 앙상한 수준이었다. 그동안 방문한 시민회관식 연주회장은 모두 잔향이 과도했기 때문에 이런 감상은 처음이었다. 실제로 음향이 건조한 녹음을 좋아하지 않기도 해서 걱정되었다. 


우려가 현실이 되고, 오케스트라 문제까지 겹친 1부는 기대 이하였다.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전주곡은 금관이 과하게 돌출되어 다른 악기, 특히 현악을 그대로 먹어버렸다. 공간을 탓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많다. 금관이 쉬는 부분에서도 대부분의 악기는 표정 없이 음을 내는 수준이었다. 합주 역시 시종일관 불안했다. 유튜브에 올라온 최희준의 짜릿한 해석은 전혀 시도되지 않았다. 지휘자는 앙상블 구축, 적나라하게 말하면 세로줄을 맞추는데 모든 힘을 쏟았다. 최희준 특유의 날카로운 사운드는 음향문제와 얽히며 찢어질 것처럼 들렸다.


(특이하게도 호른 중 한대가 피치가 틀어져 있었다. 시선 강탈을 넘어 호른을 찌그러트리고 싶을 정도였다)


베젠동크 가곡의 반주 역시 이런 상황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 곡은 특히 피해를 많이 보았을 것이다. 2곡에서 트럼펫이 흐름을 이끌며 관현악 총주가 파도처럼 쏟아져 소프라노를 덮는 부분, 5곡의 몽환적인 8분음표 화음 진행, 곡 전반에서 나타나는 저음부터 넘실대는 현악, 그 모두가 연주회장 때문에 그저 앙상하게 들릴 뿐이었다. 이 곡이 <트리스탄과 이졸데>와 닮은 꼴이란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게 얼마나 치명적인지는 더 말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서선영은 빛났다. 메조소프라노에 가까운듯한 어둡고 착색된 음성은 특유의 강한 모음 발성과 합쳐져 귀를 즐겁게 했다. 딕션은 명확했고, 4곡에서 보여준 폭발은 마치 숨을 쉬듯 자연스러웠다. 기교가 표현과 합쳐져 숨을 쉬는 듯한 흐름을 보여줬다. 오늘의 어두운 음성은 그동안의 오페라 - <루살카>, <로엔그린> - 에서는 볼 수 없던 것이다. 바그너가 곡에 정확한 음역을 지정하지 않는 것과 연관이 있을지 모르겠다. 


2.

이 글을 산뜻하게 쓸 수 있는 건 온전히 2부 때문이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떻게 같은 오케스트라가 순식간에 변화하는지. 단순히 연습량 차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그게 합리적이지만, 그렇게 넘어가기엔 신기한 순간도 많았다. 


슈만의 시작에서 금관은 놀랍게도 정돈되었다. 그리고 착 가라앉은 현악이 금관을 받쳐주는데, 여기서부터 내가 같은 공연을 듣는건가 싶었다. 이윽고 나온 총주는 균형이 완벽했다. 응 뭐지? 전개부의 부점 리듬은 감칠맛이 났는데, 템포와 유기적으로 얽히는 감각적인 리듬이었다. 미시적인 리듬이 살아나니 자연스럽게 거시적인 흐름도 살아났다. 도돌이표를 지키며 균형과 긴장을 종결부까지 그대로 가져갔다. 


2악장은 제1 바이올린이 혹사당하는 걸로 유명한데, 오늘 제1 바이올린은 놀랍게도 리듬을 그럭저럭 지키며 템포를 당겨냈다. 물론 처음의 합주력은 뒤로 갈수록 흩날렸지만, 이 정도면 충분했다. 최희준은 절묘한 강세로 연주의 매력을 키웠다. 2악장의 코다에서 그런 해석은 모두 성공했다.


3악장은 눈에 띄게 템포가 느렸다. 허를 찌르는 시도였다. 가볍게 탄성이 나왔지만 이내 걱정이 앞섰다. 오케스트라의 합주력이 부족하거나 연주회장의 음향이 건조한 경우 느린 템포는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로타 차그로섹도 그걸 언급하며 <파르지팔>의 템포를 빠르게 가져간 바 있다. 


하지만 최희준은 느린 템포 그대로 연주를 살렸다! 꾹꾹 강세를 주는 현악은 전혀 어색하지 않게 멜로디의 흐름을 잡았다. 방금 전 이 오케스트라는 표정 없이 삐걱대는 바그너를 연주했는데, 3악장 후반부의 현악은 말 그대로 '에스프레시보'였다. 앙상한 잔향을 오케스트라 제어로 뚫어내고, 구구절절한 표현력을 심어낸 것이다.


마지막 악장의 템포는 산뜻했다. 금관은 균형감각을 넘어 팀파니와의 절묘한 앙상블을 만들어낸다. 입이 떡 벌어졌다. 이제 최희준은 '이 오케스트라'의 무게감을 이용하고 있다. 오늘의 해석은 피날레에서 모두 모였는데, 최희준은 템포를 급격히 가속하고, 상응하는 강세를 주며, 총주의 음향은 짜릿하게 이끌어냈다. 마지막은 가죽 소리가 날 정도로 팀파니를 쌔려 박았다. 조금 깨는 장면이지만 그래도 좋았다. 이 정도로 이끌고 왔으면 팀파니가 마지막에 벌거벗고 쳤어도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호른을 뜬금없이 강조한다던가, 틸레만 비팅으로 첼로/베이스를 순식간에 독려하며 소리를 이끄는 부분이 있었다. 해석을 모조리 성공시킨다는 측면에선 이 역시 헉 소리 나는 부분이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었는데, 슈만의 피날레를 제외한 모든 악장에서 마지막 음의 지속이 좀 맥빠졌다. 무슨 해석인가 싶기도 하다. 뭘 못하겠는가. 이 정도면 마법사일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