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트 슈만: 첼로 협주곡 Op.129 (1850)
(앙코르)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모데라토
안톤 브루크너: 교향곡 제7번 WAB 107 (1885)
첼로: 알반 게르하르트
마르쿠스 슈텐츠, 서울시립교향악단
2017년 6월 2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서울특별시
객석에는 이미 미세한 전류가 흐르고 있었다. 어제의 대성공이 인터넷으로 빠르게 전해졌고, 청중들은 로비에서 그걸 이야기했다. 기대가 재생산되고 있었다. 너무 큰 기대를 품고 연주를 들으면 온전히 즐길 수 없다는 걸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지만, 나 역시 그런 흥분에 자유로울 수 없었다. 슈텐츠와 게르하르트가 등장하자 사람들은 긴 환호로 화답했다.
슈만의 개성적인 첼로 협주곡은 형식적 분절이나 음향의 분절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독특한 '해석'이 곡에 쌈싸먹히기 쉬워 보였고 실제로 그런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게르하르트는 정공법으로 돌파했다. 가끔씩 음정이 불안했지만, 기교적 과시 없이 평이한듯 보이는 낭만주의 선율을 뛰어난 리듬감으로 음미했다. 그가 만드는 화음은 상쾌하고 즐거웠으며, 날것 그대로였다. 슈텐츠 역시 그를 충실하게 반주했다. 서울시향은 앞의 두 악장에서 평소같이 응집되지 않은 반주를 보여줬지만, 마지막 악장에선 훌륭하게 에너지를 발산했다.
슈텐츠는 브루크너를 시작하기 전 눈에 띄는 정적을 유지했다. 기대감을 가라앉힐 수 있는 소중한 숨 고르기였다. 그리고 브루크너가 울렸다.
첫 트레몰로는 물안개처럼 미세하게 퍼진다기보단 여러 음향 조각을 한데 모아 만든 밀도 높은 파동처럼 느껴졌다. 전자가 오래된 현악 조련으로만 가능하단 걸 감안하면 슈텐츠는 자기에게 주어진 재화가 무엇인지 철저하게 파악한 듯싶었다. 실제로 네 악장 모두에서 바이올린 군은 합주가 정돈되지 않았다. 하지만 돋보기에서 눈을 떼 전체 음향을 봤을 땐 놀랄만한 에너지와 표현력이 어른대고 있었다.
내게 이런 순간은 아직도 고전음악의 불가사의이다. 그래서 할 말이 별로 없는데, 실제로 슈텐츠가 앙상블의 기술적인 구성에 모든 역량을 쏟은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같은 악단과 슈만 교향곡을 지휘할 땐 앙상블과 기술적 마감에 많은 걸 투자했음을 기억한다. 오늘도 적재적소의 개입으로 앙상블을 견고하게 유지하긴 했지만, 그런 순간보단 과감한 해석을 시도한다는 게 더욱 기억에 남는다.
관객을 끌어당기는 해석이었다. 1악장의 긴 전개는 큰 스케일의 템포 낙차로 알기 쉬운 설득력을 얻었다. 슈텐츠는 맨손을 사용한 미세한 떨림과 악상 중심의 비팅으로 오케스트라를 손쉽게 제어했다. 게네랄파우제를 짧게 끊으며 리듬을 빠르게 살리고 순간순간 에너지를 발산시키는 실력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점층적인 긴장의 누적이 아쉬울 수 있겠지만, 금관과 타악기의 체급으로 이를 극복하며 최후의 폭발을 만들어냈다. 클라이막스 이후의 긴장감 역시 여유롭지만 단호하게 유지했다.
특히 7번 교향곡은 클라이막스 이후가 중요한 분기점이다. 좁게 보면 언급한 2악장의 종결부가 그렇겠지만, 초점을 확대해 교향곡 전체를 봐도 거대한 두 악장 이후 3, 4악장을 지휘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슈텐츠는 앞선 분위기를 일소하는 듯 상쾌하고 빠른 템포로 오케스트라를 변화시켰다. 단호한 금관의 치고빠짐과 저음 현의 리드미컬한 반주가 인상 깊었다. 이를 통해 1, 2악장의 분위기에 스케르초와 피날레가 종속되는 걸 막았는데, 쉽게 보기 힘든 탁월한 선택이다. 물론, 견고한 금관 앙상블과 팀파니의 단호한 보조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초기 곡을 들은듯한 상쾌함이 머릿속에 남았다. 하지만 전반부의 거대한 해석과 표현력 역시 잊히지 않을 순간이었다. 정명훈의 말러 9번이 그렇듯이, 이 공연은 앞으로 종종 회자될 것이라 확신했다. 그 시절의 말러처럼 슈텐츠가 자신의 브루크너 사이클을 완주하길 바라는 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결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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