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글린카: 루슬란과 류드밀라 서곡 (1837-42)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제1번 Op.23 (1874-75)
(앙코르)
도메니코 스카를라티: 키보드 소나타 K.141 (L.422) (1756-57)
(인터미션)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10번 Op.93 (1947~1953)
(앙코르)
같은 곡 2악장
피아노: 네이슨 리
로베르토 밍크주크, 대전시립교향악단
2018년 7월 10일,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 대전광역시
쇼스타코비치가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콘서트 홀의 메인 레퍼토리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단순히 그가 천재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도 될 일이고, 당대의 국제적인 정세를 서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요컨대 소련이 밀어준 음악가, 혹은 숙청 빨로 뜬 음악가라고 말이다. 혹은, 므라빈스키와, 오이스트라흐, 로스트로포비치, 리히터를 포함한 그가 누릴 수 있던 최고의 음악가 자원을 언급해도 될 텐데, 이번 대전시향 공연은 후자에 대해 약간 다른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줬다.
사실 이건 1부에서 연주한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때문이기도 하다. 보석같은 순간으로 가득한 2번과 다르게 1번 협주곡은 항상 당혹스러움을 먼저 안겨준다. 거두절미하고 물어보자. 지나치게 늘어지고 짜임새가 없는 이 곡이 지금같은 명성을 얻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다수(특히, 가장 자주 연주되는 교향곡 5, 7, 10번)와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이 가진 공통점이 여기에 있다. 이 곡들이 기술적으로 극히 난해하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나는 이 곡들을 잘 연주한다는게 단순히 기술적인 완성만을 의미하는게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다른 곡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맞는 말일테다. 하지만, 일례로 브람스의 교향곡, 베베른의 곡 다수, 혹은 연주 시간까지 정확하게 지정해놓은 버르토크의 곡들을 생각해본다면 차이점은 분명해진다. 바로크, 혹은 르네상스 시대에 대한 정밀한 연구에서 출발한 이 곡들은 지시사항의 정확한 이행으로 어느 정도의 완성도가 보장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에 비해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이나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은 그 이상을 연주자가 채워넣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쇼스타코비치가 작곡가였지만 동시에 비르투오소였다는 점, 그리고 그의 주위에 안드로메다 수준의 연주자들(갈락티코스?)이 있었던 사실로 부분적인 설명이 가능하다. 차이콥스키의 곡이야 전형적인 19세기 협주곡이니 부연설명이 필요 없을테고.
요컨대,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과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커다란 캔버스와 같다. 캔버스를 어떤 방식으로든 채워넣을 수 있는 연주자의 술수(technique)가 없다면 남는건 극도의 지루함 뿐이다 재능이 넘치지만 기술적인 난점을 극복하는 첫 단계에서 한계를 드러낸 피아니스트와(나이 때문이겠지), 차라리 군악대장에 가까웠던 지휘자의 당혹스러운 접근방식이 하필 그런 곡들과 만나버렸다. 까놓고 말해서, 왜 이런 곡들만 골라왔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1
한 줄 요약: 콘서트 홀에서 쇼스타코비치 대신 베베른을 듣는 날이 왔으면.
p.s. 대전시향 최고의 성과였던 제임스 저드의 말러 9번을 건너뛰고 이 평을 쓰는 것은 상당히 아쉬운 일이다. 어쨌든 그때의 나는 후기를 쓰지 않았으니...
(2018년 8월 16일 추가)
덧글 달아준 ㅁㅇ님의 호의로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에 대한 좋은 글을 많이 접하게 되었다. 관심 있으실 분을 위해 본문에 링크를 덧붙인다(블로그에 복붙방지가 걸려있어..).
https://www.redlandssymphony.com/pieces/piano-concerto-no-1-in-b-flat-minor-op-23
https://www.philharmonia.co.uk/explore/repertoire/506/tchaikovsky_-_piano_concerto_no_1
https://www.hyperion-records.co.uk/tw.asp?w=W10153
https://www.nybooks.com/daily/2015/03/09/real-tchaikovsky/
- 나는 그래서 코파친스카야와 쿠렌치스의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지지한다. 극도로 지루한 곡에 이미 수 백 개의 연주가 붙어있는 상황에서 그런 시도가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독주자의 비르투오시티를 드러내려는 곡의 목적과도 잘 어울리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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