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비히 판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3번 Op. 37 (1800)
피아노: 손정범
(인터미션)
루트비히 판 베토벤: 교향곡 제3번 Op. 55 "에로이카" (1802-04)
정명훈, 원 코리아 유스 오케스트라
2018년 1월 12일, 롯데콘서트홀, 서울특별시
정명훈의 에로이카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주저 없이 롯데로 향했다. 2013년 서울시향과의 에로이카를 이미 봤지만, 당시에는 연주가 얼마나 과감하고 위험을 무릅쓴 종류의 것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번 연주회에서는 정명훈이 곡의 맥박과 질감을 극단적으로 표현해낸 당시의 해석을 어디까지 밀어붙일 것인지, 학생 오케스트라에서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제한된 조건에서 자기 의도를 포기한다면 그것은 어떤 부분이 될 것인지, 그리고 5년 동안 그의 시선이 얼마나 나아갔을지 궁금했다.
그런 상황에서 관심을 덜 두던 손정범에게 허를 찔렸다. 피아노 협주곡 3번은 비교적 익숙한 곡이었지만, 장대한 규모에 맞서 빠른 템포로 곡을 헤쳐나가는 경우만 보았을 뿐 그 반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느릿한 템포와 확신있는 터치, 악상기호를 증폭한 듯한 유기적인 호흡으로 손정범은 곡의 개성을 온전히 살려냈다. 물론 느린 템포를 보조하기 위한 페달링이 롯데홀의 난삽한 울림과 겹쳐 아쉬운 부분을 자아내기도 했지만, 감상을 방해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정명훈의 반주는 독주자의 개성을 흘림없이 보조했다. 오케스트라가 지휘를 온전히 따라오지는 못했지만, 막 창단된 학생 오케스트라로서는 기대 이상의 정돈된 합주력을 보여주며 지휘-독주-반주 사이의 균형을 그럭저럭 맞추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이어진 에로이카의 첫 마디는 단단하고 흔들림 없었다. 가볍지만 서두르지 않은 템포로 정명훈은 곡을 이끌었는데, 특유의 해석을 절제하는 대신 오케스트라에서 많은걸 끌어냈다. 특히 현악 중심의 앙상블이 정명훈의 정교한 비팅에 힘입어 - 그는 여기서 많은 것을 양보한 것처럼 보였다 - 다양한 진폭의 음향을 만들어냈다. 이는 1악장과 2악장의 복잡한 현악 악구에서 드러났는데, 경우에 따라 비브라토를 조절하며 곡의 짜임새를 정말 명쾌하게 드러낸 것이다. 여기에 일순간 현악 앙상블을 폭발시키는 능력이 겹치며, 곡의 극적인 면모가 극대화되었다. 놀라운 순간이었다.
아쉽게도 3악장으로 이어지며 그런 놀라움은 사그라들었다. 곡의 살인적인 난이도를 오케스트라가 버티지 못한 것이다. 전반적으로 훌쩍 앞서간 시간을 연주가 급하게 쫓아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협주곡 반주에서 종종 느껴졌던 머뭇거림이나 어색함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은 인상적이었다. 프로로 성장하는 모습이 바로 그런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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