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너드 번스타인: 슬라바! 정치적 서곡 (1977)
레너드 번스타인: 교향곡 제2번 "불안의 시대" (1948-49)
(앙코르)
프란츠 리스트: "사랑의 꿈” 中 3번 S. 541 (1850)
(인터미션)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6번 “비창” (1893)
피아노: 윌리엄 울프람
제임스 저드, 대전시립교향악단
2018년 10월 6일,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 대전광역시
"불안의 시대"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관현악에 포함된 피아노 파트(피아니노)가 아닐까. 번스타인 본인이 회고했듯이 피아노 독주가 W. H. 오든의 원작에 등장하는 인물 (네 명)의 대사와 같고, 관현악이 그들을 비추는 거울과 같다면 말이다. 널리 알려진 “가면극” 섹션의 스윙감 있는 독주 피아노가 끝나고 이어지는 피아니노의 나지막한 반향은, 그런 의미에서 작품의 관현악이 인물의 ‘거울상’을 넘어, 자아가 맥동하고 스스로와 투쟁하는 내적 공간임을 드러낸다. 따라서 관현악이 싱그럽게 표효하는 피날레는 ‘유토피아’로 향하는 희망이지만, 동시에 자신의 목소리(대사)를 압도하고 잠식하며 내면이 분출하는 광경일지도 모른다.
(이런 느낌...?)
윌리엄 울프람의 섬세하고 낭만적인 타건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그가 앙코르로 연주한 리스트의 소품이 말하듯이, 그 자체는 흠 없이 완성된 종류의 것이다. 또한 멜랑콜리한 불안의 시대를 (그리고 에드워드 호퍼나 텔로니어스 몽크를 함께) 떠올리면 이런 접근은 더할 나위 없이 타당할 것이다. 하지만, 기술한 것과 같은 독주와 관현악의 관계를 고려해보자. 독주자의 개성이 곡의 매력에 선을 그은 한계가 된건 아닐까. 불안한 개인, 특히 분출하는 자아를 드러내는 장치가 이미 곡 자체에 내장되어 있다면, 피아노 독주의 역할은 대사를 읊는 낭송자에 가까울지 모른다. 이 경우 피아노는 연주의 극적 구성력을 높이는 배우의 성격을 가질 것이다(오슨 웰스의 목소리를 먼저 떠올렸다). 울프람의 접근법은 새로웠지만, 또렷한 타건을 바탕으로 강세를 극대화하는 기존의 해석, 예컨대 번스타인 본인의 독주나, 번스타인이 함께한 루카스 포스, 필립 앙트르몽,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등의 것과 비교했을때 크게 설득력 있지 않았다.
물론 이는 관현악이 독주자의 성향에 맞는 ‘반주’를 못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품의 형식에 관한 이견이 좁혀지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협주곡으로서 곡을 바라본다면, 관현악이 울프람의 독특한 성향에 반응하는 연주를 하지 못한 점은 끝내 아쉬움으로 남게 될 것이다. 물론, 이런 주문은 과한 것이다. 곡의 기술적인 어려움을, 그리고 오케스트라의 초연이었음을 잊지 말자. 여러 난점에도 불구하고, 박수 받을만한 연주였다. 번스타인이 공들여 짠 음향을 저드와 대전시향은 효과적으로 살려냈다. 물론 음향과 음향 사이의 유기적이 연결이 있었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말이다. 목관과 타악기 세션은 곡 특유의 활기찬 우울을 능숙하게 그려냈다. 울프람의 연주에서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도 결국 목관/타악기가 울프람과 반응하는 순간들이 눈에 띄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 슬라바 서곡은 “슬라바!” 외치는 부분만 두어번 더 연습했어도 인상이 확 달라졌을 것 같다.
이에 비해 2부의 <비창>은 눈에 띄는 모험이 보이지 않은 안일한 연주였다. 음향 밸런스가 다른 연주회에 비해 살짝 높아진 것에서 표준화된 해석과 다른 무엇을 기대했는데, 결국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결과물이 나오고 말았다. 흘러가는 시간에 묻어가는 연주, 새로운 시도가 가능한 모든 순간에 가만히 웅크리는 연주. 그 결과는 정체성 없이 동그랗게 뭉친 찰흙덩어리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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