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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잡설/공연 후기

대전시향 마스터즈 시리즈 8 (브람스) - 2018년 8월 14일 대전예술의전당

by Chaillyboy 2018. 8. 15.



요하네스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Op.77 (1878) 

(앙코르)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 2번 BWV 1004 中 사라방드 (1720) 


(인터미션)  


요하네스 브람스: 교향곡 제4번 Op.98 (1884-85) 

(앙코르) 

요하네스 브람스: 헝가리 무곡 WoO 1 中 1번 (1869) 


바이올린: 김다미 

정명훈, 대전시립교향악단 


2018년 8월 14일,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 대전광역시

  

     

   

서울시향이 아닌 다른 국내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정명훈의 모습은 낯설다. 나 역시 최근 클갤에서 미는 “시향세대”라는 범주에 속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느낀 낯섦은 약 10년에 걸친 짧은 세대가 가진 정체성에 가깝다. 다르게 말해 2005년 이전부터 클래식을 들어온 넓은 연령대의 애호가들, 혹은 정명훈의 사임 이후 클래식을 듣기 시작한 엷은 애호가층은조성진 이후의 독주자 팬덤이 여기 속한다내가 느낀 낯섦을 낯설게 여길테다. 이는 제2공화국의 짧은 여명기에 (서울시향에서) 경력을 시작한 정명훈에게도 낯선 감수성일 것이다. 


새로운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게 낯설지 않은 지휘자는 없을 것이다. 특히 정명훈은 인터뷰에서 그런 이야기를 종종 해왔으며, 아마도 그런 이유로 (특히 독일과 미국에서) 경력의 폭을 좁혀 ‘마음이 맞는’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고 서울의) 오케스트라와 친밀한 종류의 음악을 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정명훈과 대전시향은 브람스의 난해함에 더해 낯섦이란 또 다른 짐을 이겨내야 했다. 그리고 여기에는 제한된 리허설이라는 현실적인 문제까지 겹쳤다.


정명훈은 서울시향과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에서 실현한 독창적인 연주의 일부분만 들려줬다. 1악장에서 정명훈이 시도한 변칙적인 템포 낙차와 강세 조절, 악구간의 유기적인 흐름을 오케스트라는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2악장부터 오케스트라는 점차 안정적인 연주를 들려주었지만, 독창적인 관점 역시 같이 희석되었다. 정명훈의 오케스트라 장악능력에 감탄하면서도 아쉬움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지점이었다. 


그럼에도 체조선수를 떠올리는 스케르초(알레그로 조코소)악장의 강인함과 피날레의 극적인 구성은 충분히 설득력 있었다. 새로운 악기를 다루는 정명훈의 모습은 효율적이고, 능숙했으며, 장인적이었다. 타악기 섹션(이래봤자 팀파니와 트라이앵글이지만)이 시종일관 연주를 불안하게 만들었지만, 대전시향의 아킬레스건과 같은 ‘수동적인’ 음향이라던가, 유기적이지 않은 앙상블은 온데간데 없었다. 연주회를 열어재낀 협주곡의 첫 구절부터 이런 변화는 뚜렷했다. 특히, 목관의 자연스러운 음향과—이를테면, 대지에서 피어오르는 듯한 서두의 오보에치밀하게 구성된 앙상블은 놀라울 수준이었다. 그리고 정명훈의 인장이라고 할 만한 특유의 관현악 사운드 역시 풍부하게 연주회장을 울렸다. 정명훈의 관현악 사운드는 토스카니니를 떠올릴 정도로 깊이와 무게, 색채를 모두 갖췄다. 


독주자로 나선 김다미는 안전하게 연주를 마쳤다. 스튜디오 레코드에 익숙한 애호가 입장에서 명인적인 끼가 부족했다는 평을 내릴 수 있겠지만, 이 거대한 난곡에 전혀 주눅들지 않고 큰 사고 없이 집중력 있게 연주를 마쳤다는건 대단한 일이다. 특히, 탑 커리어의 본토 바이올리니스트도 실황에서 브람스를 연주할때 대형 사고를 자주 낸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김다미의 연주를 단순히 무사안일한 연주라고 치부하는건 크게 틀린 말이다. 특히, 3악장의 살인적인 진행을 정공법으로 돌파하는 모습은 일품이였다. 과장 없는 단호한 음색은 종종 폐부를 찌르며 유럽의 옛 바이올린 전통을 상기시켰다. 정명훈은 느긋한 템포로 곡의 짜임새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며 김다미를 효과적으로 반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