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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잡설/번역 - 기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가곡

by Chaillyboy 2020. 2. 5.

Richard Strauss: Selected Lieder Recordings 1901-1946

(Sesquicentennial Edition, Marston Records)의 내지에서 발췌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가곡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여섯 살에 쓴 첫 작품은 가곡이었다. 그는 평생 200편이 살짝 넘는 가곡을 썼다. 1894년 슈트라우스는 부인이 될 파울리네 데 아나를 만났고, 이후 24년 동안 리사이틀에서 그를 반주하며 소프라노 음성의 가능성을 알아가는 값진 기회를 얻었다. 앨런 제퍼슨(Alan Jefferson)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가곡 (Cassell, London , 1971년)이라는 유용한 저서에서 "슈트라우스의 가곡은 종종 피아노 반주가 붙었지만, 예외없이 관현악적 뒷받침과 함께 구상, 작곡되었다"라고 말했다.

 

평론가 헤르만 클라인 (Hermann Klein, 1856 -1934)의 관점은 인용할 만 하다: "이 작곡가는 이제 63살이 되었다. 그는 삼십대에 최고의 가곡을 썼으며, 이후 이에 필적하는 것을 거의 쓰지 못했다. 이것은, 다른 모든 장르의 작곡에서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그에게서 두드러지는 작품 (사이)의 불균형이다: 어떤 작품은 이제 정말 높은 곳으로 격상되어 "숭고"라는 단어가 어울리는데, 어떤 작품은 그런 재능과 자원의 음악가가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놀랄만큼 평범하고 공허한 수준으로 하강하였다 ... 하지만 그가 간결할 때, 그는 거의 예외없이 흥미로워진다; 그는 목소리를 위해 곡을 쓰는 법을 완벽하게 알고 있으며, 쉽게 말해 그는 이를 통해 예술가곡 형식의 장인이 된다. 그의 피아노 반주는, 대부분 끔찍하리만큼 어렵고 극도록 세세한데, 완벽하게 자신을 위한 작품이며, 자기 이외의 사람에게는 자비가 없는 작품이다." (헤르만 클라인, "리트 성악 5," 그라모폰, 1927년 5월)

 

가수의 순례 (London, Grant Richards Ltd., 1923)라는 책에서, 소프라노 블랑쉬 마르케시(Blanche Marchesi)는, 그가 바그너의 음악을 성공적으로 다뤄왔던 것과 달리, 온 힘을 다해 슈트라우스에게 분노를 쏟아낸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아리아드네 , 특히 그 현란한 선율들을, 혹은 그림자 없는 여인의 악보를 읽어본 적 없다면, 음악이 인간 후두에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상상하긴 힘들다." 블랑쉬의 어머니 마틸드 마르케시(Mathilde Marchesi)는 제자들이 슈트라우스의 음악을 노래하는 것을 관례적으로 막았다. 멜바는 마르케시 부인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감히 "세레나데(Staen dchen)"를 레퍼토리에 추가하지 못하고 기다렸던 것이다!

 

반주자이자 지휘자로서의 슈트라우스

 

「스위스 음악신문(Schweizerische Musikzeitung)」 92호 (1952)에는 빈의 음악학자 알프레트 오렐(Alfred Orel)의 회고가 실렸다. 엘리자베트 슈만이 종종 무대에 올랐던 슈트라우스의 가곡 리사이틀에서 오렐은 작곡가의 악보를 넘겼다. "첫 번째 곡의 악보를 펼치자 슈트라우스는 '악보와 꽤나 다르게 연주할 것이니 음표를 따라가서는 절대 안된다'라고 내게 살짝 말했다. 반주의 예술적인 경지를 음미할 수 있었던 그 날 이후 약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비슷한 수준을 다시 경험할 수 없었다. 그런 종류의 자유, 동시에 최상의 정확함으로 가수를 따르고, 한편 그의 해석을 이끌기도 한다, 이런 뒷받침과 가장 미묘한 종류의 이해는 가수를 어디서 도와야 하는지, 숨 쉴 새를 줄지, 호흡 조절을 과장하지 않도록 그를 밀어붙이지 않을 것인지, 쉽게 말해, 가수와 반주자의 완벽한 일체에 있어 슈트라우스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인쇄된 음표는 사실 작곡가의 기억을 보조할 뿐이다, 말하자면, 그의 보컬 스코어는 가수가 그의 연습코치와 작업할때나 사용할 부류의 것이다. 실제로 '관현악'적이지 않고서도 슈트라우스는 인쇄된 악보를 한참 넘어서는 흉내내기 힘든 방식으로 피아노의 가능성을 활용했다. 예를 들어 나는 은밀한 초대(Heimliche Aufforderung)의 유명한 도약구에서 피아노가 낮은 음역으로 멀리 내려가고, 따라서 악보보다 훨씬 빠르게 음표가 흘러간 것을 기억한다. 이것은 이어지는 여린 세기의 8분음표와 더 강하게 대조를 끌어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베이스라인을 더블링하고, 화음들을 풍성하게 덧대는 등, 슈트라우스는 수 없이 많은 경우마다 이 모든 것을 활용했다. (노먼 델 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삶과 작품에 대한 비평적 주석, 3권, 1972에서 재인용)

 

슈트라우스가 즉석에서 "작곡하는" 것을 보여주는 녹음이 남아있다. 방송되지 않은 너의 흑발을 내게 풀어(Breit' über mein Haupt) 연주에서 그는 안톤 데르모타(Anton Dermota)를 피아노로 즉흥 반주하며 그를 좇는다. 이 녹음은 연구할 가치가 있고, 그 결과는 아주 흥미롭다. 데르모타의 음성은 쾌활하고, 고음이 잘 나왔지만, 강약이나 음색을 과감하게 하기에는 기교가 흔들린다 (CD 1, Track 12).

 

 

 

슈트라우스는 테너 로베르트 후트(Robert Hutt)를 같은 곡에서 반주하기도 했다. 1920년의 이 녹음에서 슈트라우스는 즉흥적인 연주 대신, 아르페지오로 화음을 연주하며 왼손으로 리드하려고 한다. 요즘 피아니스트들이 하듯이 말이다. 후트는 바이로이트 테너로 여기서 그는 율리우스 크니제(Julius Kniese)에게 사사하며 얻게된 최악의 목소리에서 벗어나있다. 그의 음색은 듣기 좋고, 고음은 눈부시다. "너의 눈빛(deiner Augen Licht)"을 부르는 후트의 레가토는 단단하고, 우아한 발음에, 디미누엔도는 훌륭하게 구사되었다. (CD1, Track 27) 슈트라우스는 "내일!(Morgen!)"에서도 후트를 반주했다. 그는 한가로운 분위기로 반주를 시작하지만 곧 페이스를 당긴다. 슈트라우스가 단호하게 밀고 나가려는 동안에도 후트는 버티려고 하기에 그들의 합이 항상 맞지는 않다. 슈트라우스는 사랑스러운 이 노래를 감상에 젖게 하지 않는다 (CD1, Track 28).

 

화려한 커리어의 바그너 소프라노 힐데 코네츠니(Hilde Konetzni)는 지독한 날씨(Schlechtes Wetter)를 부르며 그가 목소리를 낮추고 즐길 줄 안다는 것을 보인다. 슈트라우스는 그와 비슷한 기분으로 유희스럽게 비바람을 묘사하며 피아노를 친다(CD2, Track 7). 그는 딸랑!(Kling!)을 부르는 레아 필티(Lea Piltti)를 반주한다. 반주가 완벽하게 맞춰주지는 못했지만, 환희의 넘치는 이 노래의 높은 음역대는 그의 목소리와 잘 맞으며, 예쁜 그의 목소리는 필요한 지점에서 매력적인 고음을 부드럽게, 또한 성공적인 하이 C를 내준다. 슈트라우스는 한 두개의 음을 여기저기 더해가며 쾌활함과 열기 속에 연주한다 (CD 2, Track 19).

 

1885년에 작곡된,  아가씨, 대체 왜(Wozu noch, Mädchen)는 이 음반에 수록된 가장 오래된 곡이다. 알프레트 포엘(Alfred Poell)은 탁월한 게르만 바리톤으로, 그의 음성은 제대로 훈련받아 이런저런 조음(modulation)이 가능했다. 그는 가사에 암시된 교활함을 어느 정도 놓치지만, 슈트라우스는 품격있는 연주로 이를 만회한다 (CD 2, Track 20).

 

슈트라우스는 1920년 여름에 제작된 여섯 편의 훌륭한 음반에서 하인리히 슐루스누스(Heinrich Schlusnus)를 반주한다. 그는 베를린 궁정 오페라의 주역 바리톤으로 1918년 베를린에서 첫 리트 리사이틀을 가졌다. 가창 기교, 리듬, 표현에서 보이는 이탈리아식의 접근법에서 바티스티니(Battistini)의 영향력은 분명하다. 슐루스누스는 내성적인 사람이었고, 여기서도 그는 과한 해석으로 치닫지 않는다. 귀향(Heimkehr)의 첫 페이지에서 얼마나 아름답게 그가 "너를 향해 귀향하는 내 마음(zu dir kehrt heim mein Herz)"의 프레이징을 구부리는지, 이 프레이즈는 E음 옥타브 도약으로 높은 E음이 피아노로 불리며, 이후 가볍게 포르타멘토로 이어진다. 이후 요동치는 가운데 부분에서 음성은 힘 있게 울리며, 정교한 여린 가창으로 복귀한 뒤 시의 마지막 행으로 다정하게 이어진다. 그 시절 스튜디오에 메트로놈은 없었다. 가수와 반주자는 아름다운 프레이즈를 즐기기 위해 속도를 자주 늦춘다 (CD3, Track 3).

 

심지어 슈트라우스조차 당신을 사랑합니다(Ich liebe dich)의 난이도 있는 반주를 부담스러워하는데, 그에게 템포에 맞춰 아르페지오로 연주할 기회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시종일관 격렬하게 불을 뿜고, 눈부신 후주에서 그는 의기양양하다 (CD3, Track 6). 슐루스누스와 슈트라우스는 헌정(Zueignung)을 적절하게 빠른 템포로 연주하지만, 루바토를 많이 섞는다. "사랑이 우리 심장을 아프게 하네(Liebe macht die Herzen krank)"라는 구절은 약간의 랄렌탄도(속도를 늦춰서)로, 이후 슈트라우스는 속도를 더욱 늦추며, 다음 구절 "감사하라(habe Dank)"의 콘 에스프레시오네(표정을 담아)를 두드러지게 한다. 악보에 없는 다음 랄렌탄도는 "그때 너가 술잔에 축복을 내렸지(und du segnetest den Trank)"에서 나오는데, 여기서 슐루스누스는 꿀을 바른 듯한 메차 보체(mezza voce)로 노래한다 (CD3, Track 1). 밤(Die Nacht)에서도 악보에 없는 리타르단도(ritards)가 여러 번 나온다. 슐루스누스는 악보대로 소토 보체(sotto voce)로 시작하며, 이어지는 연결구 "나무에서 살며시 빠져나오네(aus den Bäumen schleicht sie leise)"를 완벽하게 부른다. 웅변조의 C음 패시지, "다가오라, 영혼에서 영혼으로(rücke näher, Seel’ an Seele)"는 음성이 호흡위에 얼마나 완벽하게 자리 잡았는지, 또한 얼마나 완벽하게 균일한 모음을 구사하는지 보여준다 (CD3, Track 2).

 

비밀(Das Geheimnis)에서 슈트라우스는 몇몇 화음을 아르페지오로 연주하며 그는 서스테인 페달에 발을 가까이 붙이고 있다. 섬세하고 표현력있는 리타르단도의 사용으로 이 연주는 사랑스럽고 기쁨을 주는데, 의기양양한 결말에서 슐루스누스는 매혹적으로 높은 F-sharp음을 피아노시모로 부른다 (CD3, Track 4). 그는 "해석"을 시도한다는 느낌을 주지 않으면서 쉬어라 나의 영혼이여(Ruhe, meine Seele)의 단어와 음악 사이로 깊은 감정을 불어넣는다. 그는 동시에 쉽게 울리는 포르티시모를 통해 노래의 조용한 부분과 극적인 중간 부분을 대조한다. "밝은 햇살이 훔쳐가네"에서 그는 피아니시모로 높은 F-sharp으로 올라가고, 이후에는 같은 음의 "가슴과 마음이 아프네"를 포르티시모로 부른다. 녹음용 깔때기가 슈트라우스의 가장 높은 음표를 포착하지 못하지만, 그는 감각적으로 연주하고, 세 번째 마디에서 그는 세 옥타브에 걸쳐있는 화음을 어떻게 나눌 수 있는지 보여준다 (CD 3, Track 5). 1943년에 슐루스누스가 녹음한 사랑찬가(Liebeshymnus)는 그가 루이 바흐너(Louis Bachner)와 레슨을 시작했던 1921년 이후로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보여준다. 그의 따뜻하고 생기있는 음색은 시작하는 프레이즈 "그날을 찬미하라(heim jenem Tag)"에서 밝게 어른거리며, 이는 "당신 눈의 광채 속에서 길을 잃네(In deiner Augen Glanz verloren)"에서 부드럽고 상냥해진다 (CD 3, Track 7).

 

우리는 은밀한 초대(Heimliche Aufforderung)를 생기 넘치게 부르는 율리우스 파착(Julius Patzak)을 반주하는 슈트라우스의 지휘를 듣는다. 여기서 그는 가수를 몰아붙이거나 삼켜버리지 않는다. 또한 악보에 없는 수 많은 리타르단도가 있다. 파착은 기분 좋은 목소리를 가졌는데, 이는 잘 훈련받았지만, 호흡에 의해 완전히 보조받지는 않는다. "그리고 난 웃네(dann lächle ich)"라는 구절에서 그의 목소리는 정말 웃는다, 매력적으로. 그와 슈트라우스는 "그리고 정원에서 걸어나오면(und wandle hinaus in den Garten)"에서 어떻게 물러섰다 다시 시작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CD 2, Track 16).

 

포노그래프에 잡힌 초기 슈트라우스 가수들

 

우리는 역사적인 가치를 가진 콘트랄토 엘리제 파이날스(Elise Feinhals)와 소프라노 로테 슐로스(Lotte Schloss)의 초기 베를리너-G & T 레코딩을 포함시켰다. 둘 모두 이류 가수로, 그들은 일정 수준의 전문성으로 노래했고, 괜찮은 경력을 쌓았다. 파이날스가 녹음한 쉬어라 나의 영혼이여는  (1894년에 쓰인) 난해한 현대 가곡과 씨름하는 예술적인 시도이다. 비록 그가 가끔 맥아리 없게 부르긴 해도(CD1, Track 17). 로테 슐로스는 가볍고 예쁜 소프라노 음성을 가졌으며, 나는 그녀가 부른 세레나데(Ständchen)와 내일!이 매력적이라 느꼈다 (CD 2, Tracks 24 and 25).

 

몇몇 평론가는 슈트라우스 가곡을 녹음한 초창기 가수들이 연주에 필요한 올바른 스타일을 획득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파울리네 데 아나를 반주하는 슈트라우스의 녹음이 있었다면 이 주장은 반박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슈트라우스의 1920년 녹음은 그가 하인리히 슐루스누스와 로베르트 후트의 스타일에 만족했음을 암시한다. 이 음반의 가수 대부분은 19세기 독일 전통을 이어받은 오페라 가수들이다. 그들은 안정된 발성을 가졌고, 종종 이탈리아식 호흡법에 기초했다. 그들은 단어 각각에 집착하지 않았다. 그들은 과장 없이 깔끔하고 자연스러운 발음으로 유동적인 레가토 라인을 유지하려고 했다. 그들은 독일 성악의 오래된 발음 스타일을 따랐다. "sie wieder einen"라는 프레이즈에서 그들은 "wieder"의 "r"을 "einen"의 "e"와 이어 붙이는 식으로 발음을 생략했는데, 요즘 같으면 연주자들이 성문 폐쇄음으로 두 단어를 분리했을 것이다. 현대 독일어의 권위자들은 옛 가수들의 이런 발음 생략을 반대하지만, 이 녹음들이 증명하는 것처럼 이런 관행이 여기저기서 보인다면, 성악가들은 당대의 이러한 미감을 잘 살펴봐야만 할 것이다. (독일 성악에 프랑코-이탈리아 스타일의 발음 생략을 누가 처음 도입했는지 알아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폴린 비아르도(Pauline Viardot), 마틸드 마르케시, 율리우스 슈톡하우젠(Julius Stockhausen)과 같은 가르시아(Manuel Garcia)의 제자들이 후보로 꼽힌다. 물론 누가 이런 스타일을 배척했는지 알아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테다.)

 

이들 성악가의 음성은 아름답고 그들은 아름답게 부르길 바란다. 그들은 언제 속도를 올리고 줄일지 안다, 그리고 그들은 우아하게 프레이즈를 처리하기 위해 포르타멘토를 사용한다. 그들은 악보의 기호를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을때조차 음악의 정신을 모두 구현한다. 작곡가가 악보에 적은 그대로 노래해야 한다는 생각은, 얼핏 논리적으로 보이고 로시니가 살아있던 동안에도 몇몇 비평가 그룹에서 주장하던 내용이지만, 1914년 이전에 작곡된 음악 대부분에 적용하는 것은 역사적이지 못한 일이다. 슈트라우스의 연주와 지휘가 증명하듯이 말이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청교도적인 엄격함이 콘서트 홀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루바토와 포르타멘토는 배척되었고, 가수들은 단어의 과장된 발음을 위해 음악 선율을 희생하기 시작했다. (일례로, 마리안 앤더슨(Marian Anderson)이 아름답게 부른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Der Tod und das Mädchen)의 녹음에는 자의적인 낮은 D음이 포함되었다. 하지만 그는 포르타멘토 없이 가장 엄격한 템포로 불렀다.) 슈트라우스 본인도 시대가 바뀌었다는 것을 느꼈음이 분명하다. 1944년의 녹음에서 그는 1920년과 다르게 왼손 리드와 아르페지오 처리를 줄인 것이다. 슈베르트가 테너 미하엘 포글(Michael Vogl)과 함께 가정집의 사적이고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그의 가곡을 선보이던 시대는 멀리 지났다. 포글이 마왕(Der Erlkönig)을 "공식" 초연한 1821년 3월 7일 빈 케른트너토어테아터(Kärntnerthortheater)에도 비슷한 정신이 가득 채워졌음을 상상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내가 살던 1960년의 런던에서 리트 리사이틀이란 신성한 의식에 가까웠다. 노래가 이어지는 동안 페이지를 넘긴 불행한 관객은 화를 당할 지어다!

 

이 오래된 녹음들 다수는 우리가 들어야 하는 중요한 "연주 관행"의 면면을 고이 모시고 있다. 슈트라우스의 세레나데에서 많은 가수들은 "높게 빛나리(hoch glühn)"의 높은 A-sharp을 두 배로 늘여 부르는데, 이는 슈트라우스 본인이 엘리자베트 슈만에게 지시한 사항으로 보인다. 슈트라우스와 슐루스누스는 헌정을 녹음하며 "신실, 신실하게 그대 마음으로 젖어들리(heilig, heilig an’s Herz dir sank)"의 두 마디를 적어도 두 배 이상 늘어져 연주하는데, 당대의 다른 가수 대부분이 이들의 방식을 따라했다. 황혼몽(Traum durch die Dämmerung)에서 많은 가수와 피아니스트는 한 행의 끝을 드러내기 위해 짧게 멈춘 다음 다음 행으로 진행한다. 유동적인 템포 설정은 일반적이었다. 이들 오페라 가수는 모차르트와 베르디를 부르던 그들의 경험을 살린 것이다.

 

아멜리에 마테르나(Amélie Materna)와 같은 19세기 후반의 오페라 가수 몇몇은 목소리를 잃고 가곡 리사이틀을 열기로 결정했다. 다른 이들이 그들을 따르면서, 이는 유감스러운 선례로 남았다. 리트 가수는 "오페라적인" 넉넉한 목소리를 가질 필요가 없다. 리사이틀의 조밀한 조건에서는 다이나믹과 색채를 대조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하지만 이는 가수의 훌륭한 음성과 사운드 테크닉, 심오한 음악성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Michael Aspinal,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