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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잡설/번역 - 기타

카라얀의 지크프리트 (리처드 오스본, 1969년 DG)

by Chaillyboy 2021. 1. 9.

 

카라얀의 지크프리트

 

"결국 반지는 유린당한 자연에 대한 우화가 아닐까요? 이와 함께 지식을 보유한 연장자가 젊은이의 본능과 충격력을 동경하는, 아버지-아들 콤플렉스가 있습니다. 바그너는 두 가지를 모두 확인했죠." -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 

 

1969년 4월. 카라얀은 돌아오는 잘츠부르크 부활절 축제의 일정을 발표했다. 반지 전곡은 포함되지 않았다. 매년 열리는 10일간의 축제 기간동안 한 두편의 오페라가 무대에 올랐다. 네 편의 바그너 오페라를 연속해서 올리는 것은 축제의 규모와 재정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카라얀의 잘츠부르크 반지를 쭉 훓고자 했던 사람은 그라모폰 녹음에 만족해야 할 것이다. 

 

카라얀은 <지크프리트>와 <신들의 황혼>에 오를 새로운 브륀힐데를 찾아야 했다. <발퀴레>에 출연한 레진 크레스팽은 위대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사부작의 남은 오페라가 요구하는 바에 적합하지 않았다. 카라얀은 헬가 데르네슈를 발탁했는데, 그는 브리튼 섬과 유럽 대륙에서 이미 바그너를 부르며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쿠르트 호놀카는 카라얀 반지의 지지자가 아니었지만 오페라지에 이렇게 썼다. "카라얀이 발견한[sic] 브륀힐데, 빈에서 온 젊은 헬가 데르네슈는 정말 훌륭했다. 걸출한 소프라노로서, 놀라운 탑 C음은 힘 들이지 않은 듯 했고, 드라마틱한 그 음성은 깊고 고상했다."

 

<지크프리트>의 연주와 지휘자-연출자로서 카라얀이 작품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볼프강 쉬밍은 이렇게 적었다. "그의 목표는 작품 속 인물 각각의 개인적인 면모를 명확하게 조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방랑자는 "보탄 3세"로서, 최고 권력을 의식하는 <라인의 황금> 속 모습에서, 운명의 희생양으로서 자신의 권위를 포기하는 <지크프리트> 마지막 막의 모습으로 발전한다. 끊김 없는 데크레셴도와 같은 전개인 것이다." 

 

쉬밍은 계속한다. "이 녹음의 방랑자는 고상한 목소리를 가졌고, 차분한 권위와 초월적인 존재의 위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놀랄 정도로 잘 이해한다. 이를 통해 그는 우리로 하여금 <지크프리트>의 악보가 포르테를 요구하는 경우가 드물고, 오히려 메조포르테와 피아노를 자주 요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스포르찬도에 대한 잦은 요구는 대개의 공연에서 잘못 표현되어 왔는데, 이는 음성과 악기로 하여금 강조점을 부드럽게 만드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모두가 카라얀 연주의 절제하는 다이나믹에 찬성한 것은 아니다. 데릭 쿡은 그것이 "심하게 남용되었다"고 생각했다. 그가 비록 카라얀이 "텍스추어의 아름다움을 무오에 가깝게 구현하는데" 감탄했지만 말이다.

 

한 가지 특이한 점. 1969년 3월 <지크프리트>의 드레스 리허설에서 카라얀은 지휘자가 연주 중 견디는 스트레스에 대한 다수의 실험을 수행했다. (그의 친구 요제프 카일베르트가 바로 전 해 7월 뮌헨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지휘하던 중 사망했다.) 카라얀은 리허설 도중 우주비행사처럼 시험 캡슐과 연결되어 3막의 일명 "지크프리트 목가"를 지휘하는 섹션에서 측정되고 분석되었다. 

 

음악이 시작되기 바로 전 카라얀의 심박은 67bpm에서 148bpm까지 치솟았다, 그리고 음악이 진행되자마자 다시 이전 수준까지 떨어졌다. 다음 스트레스 포인트는 브륀힐데가 (다시 말해 카라얀이) 중요한 탑 C음에 다다를 때였다. 신기하게도 카라얀이 누워서 테이프[레코더]를 통해 전체 시퀀스를 다시 듣도록 요청받았을때, 세션이 끝나고 음악이 "가방 속에" 있었음에도 그 측정값은 거의 비슷했다. 카라얀은 이러한 것이 의지력이나 이성의 통제 너머에 있다고 결론지었다.

 

리처드 오스본, 1969년 (내지를 번역함)


익산 라뮈지크에서 들은 카라얀의 지크프리트 2막은 그 음향적 성취가 압도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아마 거대한 포칼 스피커를 필두로 한 감상실의 세팅 덕이 제일 컸겠습니다. 음향공간(soundscape)을 설계한다는게 이런 식이겠구나 하는 막연하면서도 어느 정도 당위적인 이해가 가능했으니 말입니다. 모든 구조물에서 각 시공간의 소망을 읽어낼 수 있다면(해인사의 불경, 베네치아의 광장, 뉴욕의 마천루 등), 이 녹음에서는 결국 현실을 넘어서는 영원에 대한 소망을 읽었습니다. 이를 위해 흔히 콘서트홀의 열등한 대체제로 취급받았던(취급받는) 디스크를 전자와 동등하거나 더욱 우월한 매체로 받아들이고 이를 가장 설득력 있게 구현한 것이 카라얀의 역사적인 성취이겠지요. 클래식에서 스튜디오 예술의 위상이 예전같지 않는 지금의 시선에서는 허망해 보이기도 합니다만, 결국 영원에 도달한 것은 영원을 꿈꾸던 그 소망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