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 협주곡 제23번 A장조 K. 450, 협주곡 제15번 B-flat장조 K. 450
모차르트가 작곡하고 소개했던 혁신적인 키보드 협주곡들은 당대에는 클래식이 결코 아니었다. 지금 들어도 그렇지만 이들 협주곡의 언어에는 우아, 매력, 무례, 대담성, 오페라의 무대 감각, 진지, 파토스와 비극이 아슬아슬하게 결합되어 있었다. 이 방대한 드라마의 영역을 아우를 수 있는 스타일의 연주에는 자발성이 가득해야만 하며, 또한 직선적인 화법(discourse)이 두드러져근래의 모차르트 연주자들이 아름다운 소리, 우아함, 경건함에 꽉 붙잡힌 것과는 전혀 달라야 할 것이다. 공연 미학이 살아있는 언어를 말하는 것에서 이미 자리 잡은 텍스트를 더 완벽하게 재현하는 방향으로 옮겨감에 따라, 즉흥을 중시하는 감각은 공들여 복제할 수 있는 연주들로 대체되었고, 실제 즉흥 연주는 사라졌다.
이 실황 녹음에서 우리는 모차르트 시대의 미학을 회복하려고 했다. 모든 장식구와 카덴차는 즉흥적으로 연주되었다. 그 중심에는 위험이란 요소가 있었다. 이러한 가치를 다른 이들이 옹호한다면, 작곡가와 연주자 사이의, 오래된 음악과 신음악 사이의, 대중 음악과 예술 음악 사이의, 그리고 클래식 연주자와 청중 사이의 간극은 아마 줄어들 것이다.
모차르트가 A장조 피아노 협주곡 K.488을 자기 작품 목록(Thematic Catalogue)에 넣은 게 1786년 3월 2일이지만, 앨런 타이슨(Alan Tyson)의 연구에 따르면 작곡 시작은 이보다 1~2년 앞섰다고 한다. 초고에선 클라리넷 대신 오보에가 있었는데 이는 원 구상이 삭제되고 확장되는 것을 드러낸다. 지금의 활기차고 즉흥적인 피날레는 모차르트의 네 번째 버전이다. 앞선 세 번의 시도 역시 남아있고 각각의 특징은 꽤나 다르다.
K.488 자필보의 특기할 사항은 1악장 카덴차가 오케스트라 총보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작품이 처음부터 다른 사람을 통해 연주될 의도가 있었음을 알 수 있고, 그는 모차르트가 E-flat 장조 K. 449와 G장조 K.453 협주곡을 지어준 제자 바바라 플로이어(Barbara Ployer)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1786년 초 모차르트는 이전에 작곡한 A장조 협주곡 K. 414를 위한 두 세트의 카덴차를 작곡하면서 클라리넷으로 조옮김이 필요한 K.488의 오보에 구절 두 개를 끄적였다. K. 488 2악장의 정교한 장식구가 플로이어에게 남아있던 것과 이 사실을 함께 보면, 모차르트는 플로이어가 1786년 봄에 K.414를 연주하게 하려는 의향을 처음 가지고 카덴차 두 세트를 썼지만, 결국 그를 위해 K.488을 완성하기로 결심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1).
연주법의 문제들에 정통한 이들에게도 K.488의 아다지오 악장은 날카로운 딜레마를 안겨주었다. 부서질 듯한 절망감은 클라리넷의 존재에 크게 의존하지만(모차르트가 오보에를 포함한 원래 편성에서도 이렇게 악장을 구상할 수 있었을까?), 더 큰 이유는 모차르트가 이 악장에서만 사용한 쓸쓸한 F-sharp 단조 때문일 것이다. 그 표현력에 사로잡힌 베토벤은 "함머클라비어" 소나타 Op. 106의 3악장에서 조성과 박자, 화성 구성의 주요 세부 사항을 오마주하기에 이른다. 단순함은 언제나 모차르트 언어에서 극히 칭찬받는 사항이었고, 30, 66, 80-82, 특히 85-91마디 오른손 도약은 명쾌하고 결정적인 통렬함을 드러낸다. 모차르트가 무엇을 의도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64분 음표와 반음계 스케일이 자주 등장하는 바바라 플로이어의 극히 정교한 장식구는 분명한 단서가 된다. 그는 모차르트에게 피아노와 함께 작곡을 배웠으니 모차르트가 점4분음표를 의도한 곳을 도약과 64분음표로 채웠을 것 같진 않다.
피아노 협주곡 B-flat 장조, K. 450은 모차르트가 1784년 2월 9일부터 그의 작품목록에 집어넣은 세 개의 피아노 협주곡(나머지 E-flat 장조 K. 449, D장조 K. 451과 함께) 중 기술적으로 가장 까다로운 작품일 것이다. 1784년 5월 26일 모차르트는 그의 아버지에게 쓴 편지에서 K. 450이 목관이 들어간 첫 번째 협주곡이라고 했다. 모차르트는 오보에, 바순, 호른에 플루트 한 대를 추가하면서 그가 죽을때 까지 일반적으로 사용한 목관 편성을 만들어냈다. 여기에는 가끔 트럼펫과 드럼이 추가되었다. (K. 482와 K.488에서는 클라리넷이 오보에를 대신하고, K. 491에선 두 악기 모두 쓰인다.)
K. 450의 쾌활한 3악장은 사냥 나팔을 떠올리게 하는 6/8 박자이다. 이 악장은 화려하고 미끄러지는 교차리듬과 대담한 양손교차절로 가득하다. 둥둥거리는 현악을 배경으로 호른 팡파르가 울리는 급작스러운 피아니시모의 코다와 더 이상 억누를 수 없이 기쁨이 분출하는 종결부는 모차르트의 가장 유혹적인 피날레로 꼽힌다. 여기서 중심 테마가 재현되기 전의 짧은 카덴차와 전체 카덴차는 즉흥적으로 연주되었다.
1997, 2004. 로버트 D. 레빈(Robert D. Levin).
1) "K. 488: 바바라 플로이어를 위한 모차르트의 세 번째 협주곡?" 모차르티아나. 에비사와 빈(Ebisawa Bin) 교수 고희 기념 논문집. 2001. pp.555-570.
본 녹음에 실린 연주에 대한 역사적인 노트
이 피아노 협주곡 연주에는 18세기 연주 관행의 다양한 모습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관행은 역사적 악기(historical instrument)를 사용하는 음악가들에 의해 최근에야 되살아났다. 앙상블 배치에서 피아노는 뚜껑을 없앤 채로 무대의 중앙에 위치한다. 제1바이올린은 물론 왼쪽에 있고 비올라가 그 뒤에 위치한다. 오른편에는 제2바이올린이 그 뒤에 첼로와 베이스를 두고 위치한다. 피아노 뒤에는 목관이 1열로 위치한다. 이를 통해 실내악의 친밀감을 좌우하는 아이컨택(visual contact)과 최적의 음향이 가능해진다.
연주를 위해 자필 초고의 복제품이 사용되었다. 자필보는 2차 세계대전을 지나며 사라졌다가 20여 년 전부터(1980) 열람이 가능해졌다. 모차르트의 기보 관행에 따라 피아노는 오케스트라를 반주하는데, 이때 왼손은 현악 베이스 라인을 더블링하고, 오른손은 즉흥적으로 연주한다. 이를 통해 오케스트라와 독주자가 번갈아 가며 조명을 받는 동안, 협주곡의 짜임새(texture)가 완벽한 균형을 갖추게 된다. 연주가 이어지는 동안, 독주 파트의 장식구와 1, 2악장의 카덴차, 2, 3악장의 도입부들(짧아진 이음부의 카덴차 패시지들)은 계속해서 즉흥적으로 연주되었다. 이 녹음이 이루어진 순회공연에서 오케스트라는 각 리허설과 연주마다 다른 방식의 독주를 듣게 되면서 자발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었고, 그런 측면에서 이 연주법은 분명히 위험하지만, 다양한 이점을 가진다.
이 실황 녹음은 뉴욕 필로뮤지카의 모차르트 200주년 기념 프로그램으로 1991년 12월 3일 트로이 저축은행 뮤직홀에서 녹음되었다.
A. 로버트 존슨(A. Robert Johnson)
본인을 스타인웨이 아티스트라고 소개하길 좋아하는 로버트 레빈은 포르테피아노 만큼 다양한 모던피아노 연주를 남겼는데, 그 중 다수는 정식 음반으로 발매되지 않았다. 그런 측면에서 뉴욕 필로뮤지카와의 이 녹음들은 예외적인 편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역사주의 피아니스트들의 모던 피아노 연주를 그들의 포르테피아노 연주보다 살짝 더 좋아한다(마찬가지로 역사주의 지휘자가 현대 오케스트라와 작업한 연주를 더 좋아한다). 사실 피아노 협주곡의 경우 독주와 오케스트라 사이의 익숙했던 음향 구도와 다른 피아노의 비중에 적응을 못해서 손이 잘 안갔던 것도 있는데... 레빈의 포르테피아노 협주곡 연주를 들으면서 마음의 벽을 많이 허물었다. 레빈은 호그우드/AAM와 작업했던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사이클을 최근 다시 완성하기로 결정하고 파울 클레의 그림을 표지로 한 음반을 한 장씩 발매 중이다. 이전의 단정한 녹음 성향와 거리가 있는 녹음이 일관성 측면에서 아쉽긴 하지만, 레빈의 피아노는 나이에 무색하게 발전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원래도 현대적 기교로 돋보이는 예술가는 아니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레빈의 피아노가 주도하는 이 연주들에는 피아노가 모든 것을 제어하는 바렌보임 류의 협주곡 연주와 다른 양식의 매력이 있다. 프로그램 노트가 설명한 것처럼 오케스트라의 생기와 자발성(Spontaneity)은 음악적으로 전달되는 레빈의 즉흥적인 아이디어를 받아 불씨를 키워간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모차르트가 가능하게 만든 것으로 모차르트의 음악 구조 속에서 연주를 풍성하게 만드는 본질적인 요소가 된다.
개인적으로는 23번보다는 17번 연주에서 실황의 짜릿함이 더욱 살아있다고 생각한다.
당연하게도, 이 글의 저작권은 로버트 D. 레빈 교수와, A. 로버트 존슨, 뉴욕 필로뮤지카 레코드에 있습니다.
'음악잡설 > 번역 - 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로메에 대한 두 연출가의 글(봉뒤/슈투르밍어) (8) | 2023.10.09 |
---|---|
위(僞) 블롬슈테트가 남긴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에 대한 글 (1) | 2023.03.05 |
카라얀의 지크프리트 (리처드 오스본, 1969년 DG) (0) | 2021.01.09 |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가곡 (0) | 2020.02.05 |
아힘 프라이어 만하임 반지 - 라인의 황금 (0) | 2018.1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