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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잡설/공연 후기

한재민 리사이틀 - 23년 통영국제음악제 2일차

by Chaillyboy 2023. 4. 2.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G장조 BWV 1007
윤이상 : 첼로 독주를 위한 '활주(Glissées)' (1970)
죄르지 리게티 : 첼로 독주를 위한 소나타(1948/53)

졸탄 코다이 : 첼로 독주를 위한 소나타
(앙코르)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G장조 BWV 1007 中 프렐류드

첼로 : 한재민

2023년 4월 1일,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 통영시

작년 통영국제음악제의 가장 빛나는 순간 중 하나는 메시앙 사중주에서 한재민이 선보인 첼로 독주였다. 결국 블로그에 올리지 못한 작년 축제 후기의 일부를 옮겨본다.

"곧바로 이어진 챔버 나이트에서는 앤드류 노먼의 단단한 오보에 곡이 끝나고 피아노와 바이올린, 클라리넷, 첼로로 이루어진 앙상블이 무대에 올랐다. 메시앙의 전례없는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는 오래 전 형편없는 연주로 감상했을 때와 전혀 다른 분위기로 나를 압도했다. 시간을 벗어난, 다시 말해 시간 영역의 바깥에 놓인 듯한 경험이었다. 거기서 우리는 속세를 넘어 안식을 찾을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가장 신실한 구도자조차 공포에 빠뜨리는 이세계 천사의 형상처럼("두려워 말라"), 우리는 메시앙의 사중주를 통해 인간을 초월하는 그 영역의 힘과 존엄을 제한적으로나마 알게 된다. 나는 손을 꽉 쥐고 작품에서 뿜어지는 에너지를 온 몸으로 견디어냈다. 예술가에게도 대단한 도전이었을 것이다. 특히 16세의 첼리스트 한재민은 곡의 핵심으로 주저 없이 뛰어들어 진한 보잉으로 "예수의 영원성에 대한 찬양"을 들려주었다. 여러 장면이 지나고 BBC심포니의 악장(이고르 유제포비치)이 노련하게 곡을 끝냈다. 박수가 이어지고 진은숙 음악감독을 포함한 적은 수의 청중이 고요하게 흩어졌다. 검은 바닷길이 내 앞에 펼쳐졌다. 어떤 의미에서 이번 축제의 정점이었다."

도전적인 곡으로 꽉 채운 프로그램을 봤을때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건 아닐 것이다. 올해 공연 중 한재민 리사이틀은 준비된 티켓이 가장 빠르게 매진되서 추가 좌석이 열렸으니까.

빨간(255, 0, 0) 양말을 신은 한재민이 자신감 있게 무대에 올랐다. 기존 프로그램의 순서가 바뀌어 2부를 시작하기로 예정된 윤이상의 곡이 1부에서 바흐와 리게티 사이에 연주되었다.

한재민은 음향에 대한 상상력과 제어가 풍부하다. 이것은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상상력과 제어가 같이 가는게 쉬운일은 아니다. 두개가 합쳐지며 생긴 견고함은 재능의 영역이고, 젊음이 주는 열림의 덕목이기도 할테다. 탁월했던 윤이상 연주에서 그가 작곡가의 어법을 상당히 능숙하게 흡수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팔름(DG)의 선구적인 연주와 비교할 수 밖에 없게 되었는데, 팔름이 개척자의 불리한 점을 짊어지고 연주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비르투오시티에 의존해서 곡을 헤쳐나간다는 인상을 주었다면, 한재민은 훨씬 자연스럽게 곡의 어법을 이해한 능숙한 달변조로 곡을 연주했다.

리게티 역시 훌륭하고 지향점이 또렷한 연주였다. 다만 속주를 위해 음색을 좁힌듯한 접근법이 이 곡에서 더 맑은 음향을 선호하는 개인적인 취향과는 거리가 있었다는 점은 언급해둔다.

폭발적인 코다이의 연주를 듣고 있자니 프로그램의 순서를 바꾸어 2부에서 코다이 한 곡만 연주한 결정이 납득되었다. 초점이 제대로 맞춰진 상태로 듣는 코다이의 독주 소나타는 폭발적인 셈여림의 대비와 변화무쌍한 악상 그 모든게 청자를 흥분시켰다. 푸르니에(Praga) 처럼 도취와 절제가 조화된 기묘한 해석은 아니었지만, 예컨대 3악장의 경우 알레그로 몰토 비바체로 설정된 템포를 훌륭하게 선보인 연주였다. 그 에너지에 압도된 경험은 꽤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바흐의 경우 오전 공연의 첫 곡에서 몸이 덜 풀린 측면도 있었겠지만, 특별히 인상적인 지점이 보이지는 않았다. 아직 바흐가 그의 팔레트에 온전히 들어오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숙성의 영역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