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부조니 :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 BWV1004 中 샤콘느
슈베르트/리스트 :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D.795 中 제 19곡 "물방앗간 청년과 시냇물"
슈베르트/리스트 : "물레 짓는 그레트헨" D. 118
슈베르트/리스트 : "물 위에서 노래함" D. 774
라흐마니노프 : 회화적 연습곡 Op.39 中 5, 1곡
라흐마니노프 : 악흥의 순간 Op. 16 中 2, 6곡
리스트 : 발라드 2번 S. 171
슈만 : 크레이슬레리아나 Op. 16
(앙코르)
바흐 : 골드베르크 변주곡 BWV988 中 아리아
피아노 : 세르게이 바바얀
2023년 4월 2일,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 통영시
공연 시작 전 두 가지 공지가 있었다. 먼저 기존 프로그램에서 두 곡의 슈베르트(리스트 편곡)가 빠졌다는 것과, 연주자의 요청에 따라 콘서트홀의 조도가 낮아진다는 것이었다. 상징적인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의 리사이틀 수준으로 공간이 깜깜해지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눈에 띌 만큼 콘서트홀은 어두워졌다. 나는 여기서 긴장보다는 편안함을 느꼈다.
세르게이 바바얀이 무대에 등장했다. 묵직한 걸음거리로 피아노로 향한 바바얀이 의자에서 길게 침묵을 유지했다. 희미해진 조명의 편안함이 긴장으로 바뀌었다. 곧이어 그가 들려준 샤콘느의 첫 화음은 묵직하게 객석을 내리쳤다. 놀랄만한 음향이었다. 흔히 이야기하는 러시아 피아니즘의 본령이 담겨있는 사운드에 얼얼해하며 서서히 연주에 몰입할 수 있었다. 오른손이 덜 풀린 인상이 희미하게 있었지만 이를 무색하게 할 만큼 설득력 있는 연주를 들었다. 바흐의 원곡에 교향악적인 울림과 이를 보강하게끔 구조를 덧붙인 부조니의 편곡을 바바얀은 깊은 음색을 이어지는 변주에 맞춰 다채롭게 풀어갔다. 집중력 있는 연주에 호응하듯 박수와 환호의 밀도도 깊고 강렬했다.
이어지는 슈베르트의 가곡들. 적막한 '물방앗간의 청년과 시냇물'이 공간을 조용히 채색하기 시작했다. 뚜벅거리는 반주 음형에 바바얀의 오른손이 목소리와 같은 멜로디를 얹었다. 고통스러운 정도로 매혹적인 음악 속에서 나는 다른 세계로 향해감을 느꼈다.
슈베르트에서 라흐마니노프로 이어진 1부의 놀랄만한 흐름을 분석하는건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두 작곡가의 공통점을 찾는게 첫 번째 작업이 될 것이다. 조금 창의력을 발휘한다면 라흐마니노프가 연주한 슈베르트(arr. 리스트) 녹음을 들으며 실마리를 풀어갈 수도 있겠다. 내게 전문성이 있다면 오늘 연주된 곡의 화성이나 멜로디, 음형의 공통점과 연결부를 집요하게 찾으며 왜 이런 흐름이 완벽하게 다가왔는지를 논하고, 바바얀이 이것을 어떤 물리적인 방식으로 구현했는지 돌아볼 것이다.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보고 싶다. 나는 왜 오늘의 연주를 아름답다고 생각했고 그 아름다움을 고통스러워했을까. 그것은 오늘의 아름다움이 나와 전혀 상관없는 세계의 것이기 때문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아름다움과 고통을 단도직입적으로 연결한다. "아름다움은 우리가 간신히 견디어 내는 두려움의 시작 (제 1비가)." 그에 따르면 아름다움은 우리를 파멸시키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아름다움에 경탄하며 그것을 무서워한다. 우리는 아름다움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만(인간은 아름다움을 지향하고 작업하고 생산한다), 내가 볼때 두 세계는 아무 연관이 없다. 아름다움은 나와 전혀 무관한 세계이다. 예를 들어 맑은 어둠 속 통영 바다에서 자연은 현대적 의미 이상의 존재를 포함한 것처럼 보인다. 의미에 포섭되지 않는 세계가 바다의 어둠 속에 똬리를 튼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 바다는 아름답다. 또한 무섭고, 고통스럽다.
바바얀은 연주 내내 오른발을 무대에 단단하게 붙인 채로 섬세한 페달음을 만들었다. 단호한 자세가 만들어낸 분명한 터치는 필요한 순간마다 콘서트홀을 강하게 진동시키다가 산뜻하게 날아오르기도 했다. 어느 순간 음악이 악보에 포획될 때 같이 따라오지 못해 잊혀진 '세계'가 콘서트홀에 펼쳐졌다. 깊은 자연 속에 떨어진 현대인의 공포와 비슷한 것을 느꼈던 것 같다. 나는 1부가 끝날 때까지 그 세계의 아름다움에 매혹되면서 동시에 고통을 견디어냈다. 저녁놀의 불꽃놀이 같은 라흐마니노프의 마지막 곡이 끝날 때 나는 그 세계에서 간신히 벗어날 수 있었다.
막간이 지나 연주된 리스트의 발라드 2번은 서사가 형식이라는 측면에서 같이 연주된 슈만의 크레이슬레리아나와 연결된다. 그런데 서사가 형식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오늘 연주를 듣고 나서 했던 생각은 이렇다. 서사는 캐릭터의 인과이며 이것이 구축력을 가지는 경우 서사가 형식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리스트의 발라드의 경우 두 가지 에피소드가 병렬되며 듣는 이에게 어떤 인과를 떠올리게 하며 이것은 작곡가에게는 영웅적 서사였다.
크레이슬레리아나의 경우 조금 더 복잡하다. 나는 항상 크레이슬레리아나를 어려워했다. 이해가 어려운 것에 앞서 공감조차 안되는 경우가 많았다. 오늘 연주를 들으며 '대화'라는 개념 속에서 이 곡을 파악할 수 있었다. 짧은 멜로디를 캐릭터(성격적)라고 이름 붙여도 있거니와 플로레스탄과 오이제비우스 수준의 캐릭터(인물) 또한 명시적으로 존재한다. 이 모든 층위의 캐릭터들이 끊임없이 대화한다. 바바얀의 연주는 곡의 굴곡을 극단적으로 강조하면서 마치 연극배우들이 희곡의 대화 장면을 극적으로 표현하는듯한 인상을 주었다.
바바얀은 프레이즈의 반복을 매번 다르게 연주하며 곡에 개성을 집어넣었다. 상당히 놀라운 연주였다. 치밀한 연구를 통해 미리 준비해 온 연출인지, 아니면 직관에 의존한 즉흥적 요소가 가미된 연주인지 알 수 없었다. 어느 쪽이라도 상당히 놀랄만할 상황이었다.
환호가 쏟아지는 가운데 바바얀은 한 곡의 앵콜을 선보였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아리아. 바흐로 시작된 연주가 바흐로 돌아오는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공포스럽던 그의 피아노가 이번에는 나를 다독이는 듯 노래하다 마지막 음과 함께 조용히 멎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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