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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잡설/공연 후기

레오니다스 카바코스 & 김선욱 - 23년 통영국제음악제 8일차

by Chaillyboy 2023. 4. 11.


요하네스 브람스 :
바이올린 소나타 제2번 Op. 100
레오시 야나체크 : 바이올린 소나타

루트비히 판 베토벤 : 바이올린 소나타 제9번 Op.47  "크로이처"
(앙코르)
루트비히 판 베토벤 : 바이올린 소나타 제6번 Op.30-1 中 2악장

바이올린: 레오니다스 카바코스
피아노 : 김선욱

2023년 4월 7일,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 통영시

일정 때문에 월요일 "레오니다스 카바코스와 친구들" 콘서트를 보지 못했는데, 아쉬워 죽는 마음으로 현장에 있던 친구에게 연주 별로일거란 덕담(?)을 해줬다. 지휘자가 한 명 들어간 실내악은 잘 될만해도, 지휘자가 두 명(카바코스와 김선욱)이면 잘 될 수가 없다는게 내 논지였는데, 결국 손꼽힐만한 연주가 나와버리는 바람에 나의 이론은 무참하게 깨지고 말았다.

하지만 '지휘자가 두 명' 이론에 대해선 나름 진지한 마음이 있다. 오늘의 카바코스와 김선욱의 듀오 콘서트에 거는 기대가 컸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특히 두 악기가 거리낌 없이 부딪치는 크로이처 소나타처럼 '지휘자 두 명'이 잘 할 만한 곡이 어디 있겠나. 이번 축제 내내 흐트러지지 않는 두 사람의 카리스마는 정말 인상적이었으니 나처럼 조잡한 이론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더라도 누구나 기대할 만할 상황이었다.

왠걸 카바코스와 김선욱는 서로를 세심하게 신경쓰며 곡 전체를 상호 보완적으로 그려내는 예술가라는 것을 1부에서 보여주었다. 브람스의 소나타 2번은 나긋나긋한 대화와 묘한 긴장감이 잘 공존하던 호연이였고, 야나체크 역시 잠재의식에 숨어있는 에너지를 곡 바깥으로 효과적으로 끌어낸 연주였다. 두 사람 다 곡과 악장마다 미묘하게 다른 톤과 연주법으로 지루하지 않게 연주를 풀어나갔다.

그리고 이어진 2부.

연주가 나의 기대를 훌쩍 뛰어넘어 그동안의 경험으로 잘 환원이 안되는 무언가에 도달해버렸을때, 도대체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아 생기는 당혹스러움. 1960~70년대 유럽에 머물며 역사적인 공연마다 후기를 남길 기회가 있던 최정호 교수는 이런 경우를 Non plus ultra라는 표현으로 교양있게 퉁쳤다. 그러니까 여기서 무엇이 더 가능하겠느냐고 청자가 자만할 정도로 연주가 매혹적이고 설득력있었다는 이야기겠다. 오늘 연주가 그랬다.

내가 연주에 과몰입하는 바람에 온전히 그 수준을 가늠할 상태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정말 이상할 정도로 연주에 푹 빠져버려서 공연이 끝나도 흥분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리고 나는 곧이어 도파민 폭격기 안토니니와 그 일당의 공연을 듣고 말았다). 공연이 끝난 음악당 앞 바다는 환한 보름달 때문에 밝게 빛나고 있었는데, 돌이켜보니 내가 보름달의 영향을 받은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아니다.. 김선욱과 카바코스가 보름달의 영향을...

크로이처 소나타에서는 연주자들이 으르렁거리며 서로에게 덤벼드는게 곡을 완성하기 위해 요구되는 자질이자 임무가 된다. 바이올린이 단호한 선언조로 곡을 시작하지만 그것조차 아무것도 아니라는듯 전 음역을 강타하는 피아노의 도입에 크게 충격받았다. 어느 정도 예상을 했음에도 그걸 뛰어넘는 음향의 타격. 느릿느릿 탐색전을 이어가던 두 악기는 곧이어 거침없는 템포 속에서 1악장을 선보였다. 평소보다 다양하게 자세를 바꿔가며 두 연주자는 모두 악기에서 강렬한 표현을 이끌어냈다. 반복구는 평소처럼 '다시 들어볼래?'가 아니라 '다시 겨루는' 시간이 되었다. 1악장이 끝나고 나는 박수를 꾹 참았다.

2악장의 경우 변주곡에서 엄격함이 아니라 자유로움을 찾아나서는 베토벤 특유의 모습이 잘 살아있었다. 카바코스의 즉흥적인 시도가 이러한 분위기를 이끌고 김선욱은 그를 훌륭하게 반주했다. 3악장은 앞선 악장들의 분위기를 종합하듯 짜릿한 템포 속에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듯 거침없이 연주되었다. 긴장을 풀어주는 아다지오의 앙코르 속에서도 압도적인 분위기는 계속 살아있었다. 두 상주 음악가가 만들어낸 축제의 빛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