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1933년. 마리아 올셰프스카
(카르멘)
만약 리트 미학이 매혹적인 음색을 만들고, 아름다워 보이는, 관객들을 가수의 자태로 열광시키는 문제에 달려 있다면, 애올리언 홀에서 오늘 오후 첫 런던 리사이틀을 선보인 마리아 올셰프스카는 가장 위대한 리트 가수일 것이다. 내 기억에 이렇게 아름다운 음조의 가수는 그 자태와 강렬하지만 절제된 생기로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프리다 헴펠 이후엔 없었다. 그녀의 음색과 외모에 완벽한 아름다움이 담겨 있었기에 예술적인 결함들에도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
사실 올셰프스카는 리트 가수가 아니다. 그녀는 기교와 음악성 양쪽 모두에 결점이 있고 이는 오페라에선 드러나지 않되, 콘서트 조명에서 눈에 띄게 두드러진다. 그녀의 음악은, 많은 오페라 예술가들이 그렇듯이, 섬세하고 미묘한 리트의 가창미를 즐기기에는 충분히 예리하지 않다. 보기 드문 음색미는 사랑스럽게 망설이는 듯한 모음에서 나오는데, 그녀는 이를 자음에 살짝 덧대 매혹적인 소리를 쏟아낸다. 이런 음색을 풍부하게 전달하기 위해 그녀는 음의 지속을 과감히 결딴내고, 과장된 루바토를 마음껏 사용하여 느린 템포의 악구를 왜곡시킨다; 또한 음색에 도움이 된다면 가사의 의미를 고려하지 않고 악구의 골격을 끊는데 망설임이 없다. "In Ombra mai fu"을 예로 들자면, 그녀는 더 풍성한 모음 음성을 위해 가사의 품위와 선율의 짜임새를 포기했다.
해석가로서 올셰프스카는 리트의 더 높은 세계로 가끔 외도하는 대다수의 오페라 가수에 비해 더 낫지도 더 부족하지도 않다. 그녀는 가곡과 그 작곡가에 자신의 개성을 집어넣을 능력이 부족하다. 그녀에게는 두 개의 선명한 분위기 - 날카로운 장난기와 진지함 - 가 보이는데, 곡들은 양쪽 어디에도 들어맞지 않아 나쁘게 들렸다.
올셰프스카씨에게 미안하지만 가수에 큰 관심이 없다. 중요한건 이 글이 레그의 성악 미학을 드러낸다는 것. 레그는 (카더스에 비교하기 미안할 정도로) 상당히 깐깐하고 기술적으로 성악을 평가한다. 특히 리트에서 할 말이 많았을 것. 레그가 리트를 녹음하며 - 물론 이건 어느 정도 오페라 녹음에도 통하는 이야기다 - 보여준 기술적 완벽의 원형은 삼십년대 평론에서 이미 보이고 있다. 프로듀서라면 갈고 닦아야 될 기술-음악적 예리함을 취향으로 타고난건 상당한 행운이다.
또 다른 첨언. 이런 취향이 극한으로 간 게 슈바르츠코프가 아닐까. 보편적인 설득력과 취향을 다 떠나서, 슈바르츠코프와 레그가 만나 그런 미학을 극한까지 실험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레그 입장에선 슈바르츠코프랑 결혼도 했으니 이거야 말로 직업도 타고나고 덕업일체에 뭐 할 말이 더 없네요. 오오 인생의 승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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