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934년. 코벤트 가든 반지
(1933년의 코벤트 가든)
뱃머리에 선 비첨, 방향키를 쥔 토이와 함께 코벤트 가든의 새로운 시대가 밝았다. 새 무대장치, 새 조명시설, 새 드레스룸, 새 프로듀서, 심지어 로비와 전면의 새로운 도장(塗裝)은 오래된 극장을 낯설게 했다. 사람들은 옛 무대에 너무 익숙해져 그 한계점과 흠마저 소중히 여겼다. 하지만 신임자들이 이를 일소했고, 비첨과 토이는 그들의 재임 기간에 코벤트 가든을 옛 모습으로 오해하는 일이 없도록 일할 것이다.
이번 독일 레퍼토리 기간에 보인 익숙한 여섯 작품 중, 다섯은 무대장치를 통째로 갈았고, 새롭게 초연한 두 작품, <아라벨라>와 <슈반다>는 자연스럽게 특별한 무대를 받았는데, 전자는 여기서 특별히 제작했고, 후자는 나치가 바인베르거를 인종적인 이유로 거부한 베를린 국립 극장에서 구매했다.
가브리엘 볼코프가 설계한 반지의 새로운 무대장치는 그 마감기한을 넘긴 만큼 훌륭했다. 반면, 볼코프의 <라인의 황금>과 <발퀴레>의 어떤 부분에서도 작년 바이로이트에서 처음 선보인 프레토리우스의 무대가 가진 힘과 장엄함, 극적 구성력이 전혀 보이지 않음을 인정해야 한다: 특수효과는 두 작품 모두에서 전혀 설득력 있게 실현되지 않았다. 발할라는 여전히 거대한 얼음 푸딩처럼 의심스러웠다: 여전히 검정 커튼 뒤에 숨는 쉬운 편법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알베리히를 표현했고, 라인 처녀들은, 비록 그들이 인어에 대한 통상적인 모습에 가까워졌지만, 엄밀하게 말해 코미디 같은 모습이었다.
물론 이것들은 이어질 공연들에서 개선될 수 있는 세부사항에 불과하다. 무지개 다리는 무지개 같고, 조명은 적절하고 효과적이었으며, 발퀴레의 준마는 정말이지 군마(軍馬)처럼 보였고, 용은 네스 호가 만들어낸 그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다.
(월터 시커트, 지휘하는 토마스 비첨 경, 뉴욕 현대미술관)
관현악의 측면에서 연주는 전후(戰後) 코벤트 가든의 모든 바그너 프로덕션보다 압도적으로 우월했다. 금관의 치고빠짐은 확실하고, 화음구사가 나아지고, 소리에는 빈 곳이 없고, 오합지졸이던 현악 연주는 비단처럼 변하고, 목관과 타악기는 더 나아질 구석이 없을 정도였다.
허나 성악의 경우 이에 걸맞은 한결같은 개선이 없었다. <라인의 황금>은 고르지 않았다; 친숙한 가수들은 이전처럼 잘 불렀지만, 신입의 경우 전임자들의 수준을 쫓아오지 못했다. 보켈만이 부른 보탄은 위대했다; 그의 음성은 마치 정교하게 광을 낸 마호가니 같아서, 어둡고, 진하고, 부드러웠으며, 그가 품은 어마어마한 힘과 존경할만한 그의 호흡으로 그는 진노와 신으로서의 장엄함 모두 보여줬다. 파졸트를 연기한 키프니스는 오히려 목소리의 아름다움이 몰입을 방해했다; 그런 음색은 오히려 단점이 되어 신사 같은 거인에 어울릴만했고, 발성의 훌륭함으로 인해 파졸트를 신격으로 올리고 싶다는 생각을 듣는 이는 떨쳐낼 수 없었다. 게르투르드 륑거는 여기서 처음으로 프리카를 불렀는데, 연기와 성악 두 측면 모두에서 같은 역할의 올셰프스카에 대한 기억이 빛을 잃게 하는 데 실패했다. 그녀의 음성은 매력적인 수준이었지만, 악구의 끄트머리에서 종종 보인 충분하지 못한 호흡은, 때론 너무 잦아 그 역할이 요구하는 위엄을 살리지 못했다. 새로운 로게 마르틴 크레머는 마지막 순간에 캐스팅되어 핸디캡이 있었다는 게 확실하다. 로게는, 비록 신을 위해 수많은 모략을 벌여야 하지만, 그 역시 신이며, 그 중에서도 가장 솜씨 있고 똑똑한 신이다; 흥미로웠지만, 크레머의 노래는 설득력 있다기보단 무난했다.
(로테 레만의 지글린데)
지난밤 <발퀴레>는 인기 배역의 또 다른 승리였다. 첫 번째 막에서 레만의 지글린데와 악역 키프니스의 훈딩에 청중이 느꼈을 일반적인 즐거움은 테너 프리츠 푈커와 비첨이 템포를 두고 벌인 의견 차이로 인해 자주 반감되었다. 그러나 이건 유일한 흠이었고, 물론 유감스러운 흠인데, 만약 이런 흠이 없었다면 푈커를 코벤트 가든에서 본 가장 뛰어난 지크문트라 수년간 말했을 것이다. 그는 지적이고, 음악성 있고, 섬세한 성악가다. 이러한 의견 차이에 대해 성악가나 지휘자 그 누구도 탓할 순 없다. 비첨은 올바르게 작품의 교향악적 본질을 보고, 오케스트라의 두뇌에 교향악적 방식을 전달했는데, 우리가 영원한 오페라를 가질 때나 잦은 리허설의 결과로서 성악가와 지휘자 사이의 만장일치가 가능해질 것이다.
지난밤의 영광은, 하지만, 모두 로테 레만에게 돌아간다. 레만의 퍼포먼스는 라이더와 보켈만의 연기와 노래가 그랬듯이, 어마어마해서 뇌리에 떠나지 않았고 기억을 사로잡을 것이다. 지난밤 그녀를 들을 영광을 누린 우리가 경험한 것은 언젠가 역사가 될 것이다. 지금의 사람들이 데 레슈케와 터니나의 이졸데를 이야기 하듯이, 오십년동안 우리의 아이들은 레만의 지글린데를 찬미할 것이다. 또한 그들이 얼마나 격찬을 하든 간에, 그건 지나친 찬사가 아닐 것이다.
오늘은 글이 참 좋네요. 여기 나온 전후(戰後)라는 단어는 - 불행하게도 - 지금과 전혀 다른 뜻이 되어버렸죠. 레만에 대한 찬사 역시 그렇습니다. 경험하지 못한 과거에 아련함을 느끼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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