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934년. 갈리-쿠르치
오늘 오후 알버트 홀에서 열린 이탈리아의 유명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아멜리타 갈리-쿠르치의 복귀 무대는 음악보다는 오히려 심리학적인 사건이었다. 거의 육천의 인파가 런던의 안개 - 짐작건대 스모그가 될 게 분명한 - 을 뚫고 와 그녀의 노래를 듣는 특권을 위해 높은 가격을 낸 것이다. 심지어 프로그램에 음악적으로 가치 있는 곡은 여섯 곡도 채 안 됐고, 한물간 오페라 아리아, 잡다한 카페 음악과 발라드가 대부분이었다. 성악가의 목소리를 아끼기 위해 반주자와 플루티스트는 여러 곡의 독주를 선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곡들은 근사한 패션을 하고 빈 좌석들에 연주되곤 했다.
사실 관객 중 콘서트고어는 단 한 쌍도 없었다 - 퀸스 홀이나 코벤트 가든에 음악이 좋든 나쁘든 습관처럼 가는 사람이라면 익숙한 얼굴들 말이다. 하지만 왜 육천여 명이 다른 어떤 공연도 아닌 여길 선택해야 하는가? 이런 행동으로 관객들은 그들의 관심이 음악 자체가 아닌 다른 데 있는 걸 증명했다. 먼저, 이탈리아의 옛 노래 모음에서 관객들은 고상하지만 냉담한 태도를 보였다; 프로그램에 포함된 드뷔시의 피아노 소품 몇 곡에서 관객들은 기침하거나 바스락거렸다. 하지만 관객들은 가수가 피아노에 앉아 직접 노래에 반주할 때 박수쳤고, <디노라> 중 그림자 노래의 곡예를 숨죽여 들은 것이다. 1
(그림자 노래)
갈리-쿠르치가 런던에서 처음 노래한 지 구 년이 지났다. 시간이 그녀를 바꿔놓진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그 상냥함을 전혀 잃지 않았고, 그라모폰으로 처음 들었을 때 우리에게 기쁨을 준 매끄러운 자유로움이 여전했다. 그녀는 아직도 일류 플루티스트와 두려움 없이 맞붙어 공중 곡예 같은 성악 기교를 선보일 수 있는데, 그녀의 음조가 가진 불확실함은 "저걸 할 수 있을까"류의 짜릿함을 더한다. 로시니 "타란텔라"의 실수를 제외하면 (그녀는 반주자에게 먼저 알리지 않은 채 마지막 음표의 조를 부끄러운 듯이 내리곤 했다) 그녀의 음조는 이전보다 확실해졌으나, 남아있는 불확실함은 세심한 청자들이 그녀의 뛰어난 발성과 사랑스러운 음색을 즐기는 걸 여전히 방해한다.
여기서도 성악가에 대해 크게 할 말은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음악 듣는 풍경은 다 비슷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다만, 기교 중심의 대중적인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레그에 비해 조금 더 우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솔직히 지금은 공연장이 박물관이 되어버렸죠. 굳이 에드워드 사이드의 문화사적인 논의를 가져오지 않더라도, 클래식 듣는 사람이라면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부분. 오히려 예전 시대가 프로그램 구성이나 레퍼토리에 있어서는 더 자유롭고, 다채로웠으니.. 그래서 지금의 내 입장에선 저런 프로그램에 더 우호적일지도.
- 마이어베어의 오페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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