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934년. 스트라빈스키
(1934년의 스트라빈스키)
어제 저녁 스트라빈스키의 <페르세포네> 영국 초연을 듣기 위해 많은 관객들이 퀸스 홀을 찾았다. 그들은 얼핏 보기엔 흥미진진하게 귀를 기울였고, 육십오분의 연주가 끝나자 걸작을 들었다는 듯이 박수를 쳤다. 하지만 그들이 <페르세포네>를 라디오로 듣게 되어 작곡가가 누군지 몰랐다면 지금처럼 급하게 박수를 쳤을까. 이십년 전만 해도 그는 살아있는, 독창적인 작곡가였다. <페르세포네>는 그게 더 이상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
<페르세포네>가 세계 초연된 저녁 파리에 처음 개제된 <엑셀시어>의 기사에서 스트라빈스키는 작품에 대한 그의 의견을 말했다. 그가 가장 고민한 것은 "텍스트의 음절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매력적인 음향에 놀랄 기대는 말라"고 주의하며 다음과 같이 결론내렸다. "나는 틀림없이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 여기에 대한 이견이나 비판은 없을 것이다. 누구도 작동하는 무얼 가지고 비판하지는 않는다. 코는 만든 것이 아니다; 코는 거기 존재할 뿐이다. 내 작업도 그러하다." 스트라빈스키가 고민한 그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그것'이다; 그리고 스트라빈스키의 최근 작업들을 믿을만큼 단순한 사람들은 당연히 그런 이야기에 속아 넘어가 작곡가 스스로의 평가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저건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오직 하나의 의견, 내 의견이 있고, 다른 관점은 이단이다."
공영방송국(B.B.C.)이 주관한 공연에서 이 작품을 발표하는 것은 본래 취지에 맞지 않은 불공평한 일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음악은 거기 있었고, '누구도' 페르세포네가 가장 텅 빈 작품이라 말하는데 망설이지 않았다. 전성기에는 정말 위대했다 말할 수 있는 작곡가의 모든 작품을 통틀어서 말이다. 1
그 분이 페르세포네를 하셨으니 일단 링크부터..
레그가 스트라빈스키를 싫어하진 않았을 것이다. 다만 호의적이지도 않았다. 레그는 클렘페러에 대한 회고에서 스트라빈스키를 다시 언급한다.
클렘페러를 1940년대 후반 런던에 복귀시킨건 리처드 오스틴이다. 오스틴은 전전 코톨드-사전트 콘서트의 정신과 조직을 "신기원 콘서트 협회(New Era Concert Society)" 를 통해 부활시키려 했고, 알버트 홀에서 나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그리고 클렘페러를 포함하는 저명한 유럽 지휘자를 초청했다. 나는 윌리엄 월턴과 함께, 내 기억이 맞다면, 바흐의 모음곡과, 스트라빈스키의 모음곡, <에로이카>를 감상했다. 형편없는 연주였다. 내 오케스트라는 클렘페러의 박자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들에게 스트라빈스키는 생소했다. 월턴과 나는 인터미션에 자리를 떴다.
물론 레그의 디스코그래피에서 스트라빈스키는 두드러지지 않는다. 이유는 다양할테고 추측은 읽는 분들에게 맡겨본다. 참고로 유명한 마르케비치 <봄의 제전>의 경우 구녹음이(51년) 레그의 프로듀싱이다.
(스트라빈스키 말년의 콜롬비아 자작자연 표지)
페르세포네는 특이한 작품이다. "발레 뤼스" 시절 이후 많은 스트라빈스키의 작품처럼 인기는 없다. 물론 여기엔 오페라도 아닌, 그렇다고 발레도 아닌 애매한 위치 탓도 있을 것이다. 스트라빈스키는 작품에 상당한 애정을 가지되, 날선 자기비판을 가하기도 한다. 트럼펫이 반주하는 에우몰푸스의 아리아와 페르세포네가 부르는 낭송의 플룻, 마지막 합창을 특히 좋아했다.
앙드레 지드와의 협업이 유명하고, 그 과정에서 생긴 불화 역시 유명하다. 음악사의 사골 논쟁 '말이 먼저냐 음악이 먼저냐'를 두 사람은 그대로 보여주었고, 깔끔하게 헤어지셨다. 자세한 사실은 정준호씨가 <스트라빈스키 - 현대 음악의 차르> 에서 깔끔하게 정리했다. 궁금한 분은 찾아보시길.
- 두 번째 문단 다섯번째 줄. "누구도 작동하는 무얼 가지고 비판하지는 않는다."에서 쓰인 주어 One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 역시 비꼬는 표현인 것 같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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