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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잡설/공연 후기

KBS 교향악단 토요콘서트 (베버, 쇼스타코비치) - 2016년 8월 20일 예술의전당

by Chaillyboy 2016. 8. 21.



칼 마리아 폰 베버: 클라리넷 협주곡 제1번 Op.73 (1811)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10번 Op.93 (1953)


클라리넷: 채재일

최희준, KBS교향악단


2016년 8월 2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서울특별시


* 공연 전 최희준 지휘자의 간단한 설명.


(코리안심포니를 지휘한 2012년 연주)


이 오케스트라는 솔직히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안됩니다 


코멘트를 무력하게 만드는 저질 연주에 어디서부터 뭘 복기할지 머리가 복잡해지네요. 분명 공연 시작하기 전에 어떻게 서두를 뗄지 다 짜놓았던 것 같은데, 이미 그런 건 머릿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합주력이 떨어지는 어지간한 오케스트라에도 특유의 해석을 뿌리고, 일사분란한 연주를 만드는 최희준 지휘자도 이건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최희준으로서는 이례적으로 현악을 끌어올리기 위해 폴짝폴짝 포디엄에서 뛰면서 바이올린을 재촉하기도 했습니다) 아마 이벤트성으로 진행되는 토요일 오전 공연이라 리허설이 부족했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프로라고 보기도 어려운 깡통 같은 연주를 듣고 오니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이건 지휘자의 문제가 아니라 기초부터 맛이 간 오케스트라입니다. 끝이 부러지고 고장 난 나침반이 뱅글뱅글 도는 걸 어떻게 고칠 수 있겠나요. 망치로 뚜껑을 세게 내려쳐 박살 내는 수밖에 없죠. 이런 오케스트라가 결과가 뻔한 - 음악계 모 인물은 사기꾼이라 표현한 - 상임을 앉혀놓고 국내 일인자인 척 하는 게 일종의 블랙 유머입니다.


어딘가 장점을 찾을 수는 있을 겁니다. 항상 말하는 KBS 교향악단(이하 K향)의 저음 현악 군은 탄탄하고 묵직합니다. 그래서 K향은 어설프게나마 독일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나죠. 장윤성이 일본에서 1905년 피 냄새를 뿌리던 시절의 과격한 사운드가 어딘가 남아 있기도 하고요. 어쩌면 그건 드미트리 키타옌코가 바톤을 휘두르던 그 옛날의 흔적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 흠을 일일이 쓰면 끝이 없을 테니 생략하겠습니다. 다만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었죠. 악장이 독주에서 마지막 음을 적나라하게 놓치는 장면 (이건 심지어 한 번이 아니었는데...), 피콜로와 플루트가 초점을 잃고 각자도생하는 장면, 혼자 발광하는 팀파니, 맥락상 전혀 어렵지 않은 바이올린 피치카토가 새끼줄 풀리듯이 산발하는 장면. 어쩌면 오케스트라가 2악장의 과격한 질주에서 바퀴벌레 흩어지듯 공허하게 사라져 버렸다고 한숨 쉰 제가 어리석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안타깝네요. 최희준 컬트가 시작된 건 위에 올린 2012년 쇼스타코비치 10번이었죠. K향은 분명 쇼스타코비치를 잘하는 오케스트라였고, 그렇다면 이건 이론상 결과가 좋아야 했습니다. 결과는 일 층을 채운 관객이 미안한 순간이었죠. 기초적인 프로의식도 없는 오케스트라가 돈을 받는 건 옳지 못합니다.


자생력 없는 좀비가 대다수인 이 생태계에선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젠 생태계를 만드려고 필사적으로 달려드는 몇몇 젊은 음악가의 시도가 무안할 정도로 뿌리가 깊은 전통이 되어버렸죠. 결국, 개미 애호가들은 돈을 모아 유럽을 가거나, 지글거리는 잡음 가득한 연주기록에 침잠하는 수밖에 없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