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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잡설/공연 후기

대전 예당 <피가로 대 피가로>

by Chaillyboy 2015. 3. 21.


전혀 기대 안하고 갔다가 여러모로 만족해서 글을 남겨본다.


1. 서곡 첫음부터 심상치 않은 관현악에 놀랐는데, 탄탄한 중저역의 현악과 때깔이 다른 관악 앙상블을 들으며 그야말로 충격. 부천필의 경우 같은 지휘자의 브루크너 8번 교향곡을 봤었는데 해석은 둘째치고 오케스트라의 단단한 앙상블이 인상깊다는 기억이 난다. 그래도 이 정도는 아녔던 것 같은데 어제 관현악은 정말 완벽한 모차르트 앙상블 그 자체. 25년 짬밥이 이런건가 싶기도 하고. 국내 지휘자니 어쩌니 하면서 까는 태도가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다시 깨달았다. (근데 시향 베토벤은 왜 똥칠을 했을까..)


고전적인 모차르트의 표준을 보여준 어제 반주의 가장 큰 덕목은 균형감각이 아니었을까. 놀라웠던 점을 하나 언급하자면 치명적인 대전 예당 음향상태에서도 스튜디오 레코딩에서나 들을 수 있는 그런 소리가 나왔단 것이다. 이게 지휘자의 의도인지 우연인지 뭔진 잘 모르겠다. 조지 셀이나 프릭차이가 들려주곤 했던 시계 초침같은 정교한 앙상블 보단 모차르트 냄새가 자연스럽게 몸에 배인 독일 오케스트라에 가까웠는데, 듣는 내내 오트마르 주이트너와 드레스덴의 스튜디오 녹음이 떠올랐다. 


드레스덴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에나멜을 칠한 것 같은 드레스덴마냥 이날의 부천 필도 관현악 음색이 정말 인상깊었으니, 이 정도면 지휘자에게 찬사를 보내도 되지 않을까.


다만 이런 갈라 콘서트에서 으레 바라곤 하는 붓파 냄새는 하나도 느낄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은 롯시니에서 확연히 드러났는데, 꽉 막힌 느낌까지 들곤 하는 있는 임 지휘자의 평소 해석을 생각해본다면 당연한 일. 뭐 가수들이 애드립으로 잘 매워줘서 딱히 불만은 없다. 그래도 약간의 일탈을 기대해봄직 했는데 그런 면은 아쉽다고나 할까. 


이런 느낌이면 완벽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2부로 갈수록 집중력이 떨어지는 상황도 종종 있었고, 그런 상황들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정말 좋은 반주였다 생각한다. 같은 지휘자와 악단의 반주로 극장에서 진짜 모페라를 봤으면 좋겠다.


2. 작년부터 오페라 강의를 하면서 느낀거라면 짧은 강의 시간에 도대체 버릴 곡이 없어서 결국엔 작곡가를 원망(+존경)하게 된다는 그런거. 그런 측면에서 적절한 선곡과 장일범 진행이 빛을 발한듯. 꺠알같은 부분들을 다 쳐내고 아리아 위주로 했어도 오페라를 쭉 봤다는 느낌이 꽤나 들었으니 말이다. 액기스를 잘 뽑고, 빈 공간에 개드립 잘 뿌려주고 오페라 두개를 연결까지 했으니 뭐 이런게 참 좋았다. 



3. 심각한 대전 예당음향은 뭐.... 대체로 고역대가 실종되는 분위기였는데, 그래서 테너와 소프라노가 피를 본듯. 뿐만 아니라 노래가 전반적으로 관현악에 묻히는 모양새. 임선혜 같은 경우는 이런 상황에서 목소리를 억지로 키운게 아닌가 싶었다.(주력 분야가 아무래도 고음악계통이니) 역량발휘를 백프로 발휘 못했단건데, 그럼에도 놀라운 순간들을 만들어냈으니 역시 국보급 여신 오오...


롯시니로 가면 문제는 더 심각해지는데, 오돌토돌한 롯시니 딕션을 사포로 밀어버리고 흔적만 남겨 객석으로 전달하는 모양새. 감상하면서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순간이었다. 새로 부임한 대전 예당 관장이 음향조건 개선을 일순위로 이야기 했으니, 기다리는 수 밖에...


4. 가수는 5명 모두 준수했다. 모두 자기 개성이 뚜렷했기에 더 빛이 났다 해야되나.


주역인 사무엘 윤의 경우 피가로와 백작 (+롯시니 돈 바질리오) 를 노래했다. 정확하게 내뱉는 딕션하며, 연기하며 버릴때가 없었다. 다른 가수들이 워낙 꺠알같이 연기를 해서 그렇지, 사무엘 윤도 참 적절한 연기였는듯. 헤르만 프라이가 학생시절 롤 모델이였다는데, 프라이마냥 남성호르몬 걸쭉하게 담긴 로맨틱한 백작과 피가로를 보여줬으니. 이탈리아어를 모국어인양 노래하던 바질리오 아리아 'La calunnia è un venticello'도 참 인상적이었다. 다만 격하게 아끼는 아리아 Aprite un po’quegli occhi에선 좀 무심하게 지나간게 아닌가 하는 느낌.

기교적인 측면에선 절정에 오른 사무엘 윤일텐데, 모차르트 오페라 주역으로 극장에서 보고싶은 순간이다. 한국에선 워낙 바그너 가수로만 부각되는 느낌이라... 솔직히 이탈리아 오페라가 더 어울림.


임선혜의 경우 위에서 언급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두 역할을 동시에 맡아 잘 소화해냈다. 꾀꼬리같은 수잔나를 부르다가 바로 옷 갈아입고 나와 백작부인을 부르는데 목소리 연기의 미묘한 부분들이 절묘하게 바뀌는 걸 보며 그저 입 벌리고 감상. 이 분은 오페라를 발 끝까지 이해한 가수구나. 그런 측면에선 Porgi amor 보단 Dove sono가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어차피 대전예당에서 들어봤자 별 감흥도 없었을듯. 물론 부인보단 수잔나가 훨씬 어울린다.


백작과 (롯시니)피가로, 바르톨로를 노래한 한명원 역시 직선적인 목소리가 맘에 들었다. 오히려 백작의 경우 이런 스타일이 더 어울리지 않으련지. 그래서 Vendro mentr’io sospiro역시 맘에 들었다. 들으면서 돈 조반니 하면 잘 할 것 같다 생각했는데 바로 앵콜로 돈 조반니 보여주시고 그저 감사합니다.


로시니 백작을 노래한 고태영은 개드립 잘 치고, 연기도 능청맞아서 몇번 현웃 터지고... Pace e gioia sia con voi에서 한명원과 보여준 케미는 참 ㅋㅋㅋㅋ 다만 장일범씨 한국의 후안 디에고 플로레즈 어쩌고는 그냥 개드립으로 알겠습니다.


우나 보체 포코 파 부르고 가신 소프라노는 찾아도 이름이 안나와서... 중간에 나와서 아프고 어쨌느니 이야기 할 필요 있었나 싶긴 하지만, 그만큼 소프라노 입장에서 부담감 많이 가는 아리아라는 뜻이겠지 싶다. 여러 측면에서 완벽한 가창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실수 없이 잘 마쳐서 박수 많이 쳐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