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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잡설/공연 후기

한불수교 130주년 기념음악회 (메시앙, 다큐멘터리) - 2016년 9월 5일 예술의전당

by Chaillyboy 2016. 9. 6.


올리비에 메시앙: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 (1941)


클라리넷: 채재일

트리오 오원(Pf. 에마뉘엘 스트로세, Vl. 올리비에 샤를리에, Vc. 양성원)


2016년 9월 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서울특별시


* 연주에 앞서 다큐멘터리 <시간의 종말> 상영, 연주 이후 명동성당 성가대가 샤를 구노의 짧은 합창곡을 노래


  

공연의 공식 명칭이 <다큐멘터리와 메시앙의 밤>인걸 보면 다큐멘터리 상영이 주목적이었나 봐요. 그러니까 메시앙은 일종의 찬조 공연인 거죠. 아 물론 저는 왓챠 별점 0.5점 줬습니다...


곡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에는 실황만큼 좋은 게 없죠. 메시앙을 실황으로 접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사중주>나 <아기 예수>, <새의 카탈로그>, 혹은 <투랑갈릴라>를 음반으로 종종 듣긴 했습니다. 그리고 에마르의 독집은 꽤 자주 들었어요. 하지만 작곡가에 대한 이해는 단편적이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건 이국적인 (국적을 찾기 힘든...?) 분위기와, 느낌에 봉사하는 초절기교, 넓은 안목으로 만드는 뛰어난 완급조절 정도였어요. 사실 종교성은 잘 모르겠어요.


실황의 장점을 느끼기 어려운 연주였지만, 메시앙의 작곡기법에 조금 더 다가가는 기회였습니다. <사중주>가 - 백병동의 분류를 빌리자면 - 중기 작품인 것도 한몫했겠죠. (어떤 작곡가든) 소우주를 완성한 원숙기의 작품은 단위로 쪼개서 느끼는 게 쉽지 않으니까요. 선법의 사용에서 느껴지는 드뷔시의 냄새, 능수능란하게 리듬 실험을 적용하는 원숙함, 새소리를 흉내 내며 반짝거리는 음색, 그런 미메시스로 도달하는 성령의 초월계. <사중주>에서 이런 특징들을 균형 있게 들었습니다. 아마 이 곡이 입문용으로 추천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겠죠.


연주는 아쉬웠습니다. 언급했듯이 실황에서 들을 수 있는 번뜩임과 육감이 전혀 없었어요. 음들이 살아 움직이면서 구조물을 만들고 실시간으로 관객을 덮쳐야 하는데, 문제가 많았죠. 차근차근 짚어보겠습니다. 트리오 오원은 서로 섞인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지만 - 물론 이 곡에서 필요한 절대적인 덕목은 아니겠죠 -, 각자의 연주 또한 부족했어요. 연습부족과 같은 몰상식의 결과는 분명 아니었지만, 한계가 보이는 지점이었습니다. 


피아노는 1곡부터 과한 페달 사용으로 구조적인 리듬 변화를 모조리 뭉개버렸습니다. 게다가 자기 음색이랄 게 전혀 없었는데, 먹먹하게 울리는 (왼페달 사용이 전혀 이해안가는) 스타인웨이 소리는 곡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죠, ff와 f가 똑같이 들리고요. 즉, 섬세한 표현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예컨대 첼로를 반주하는 5곡에서는, 기도하는 말씀의 첼로를 서서히 피어오르듯 조심스럽게 반주해야 하는데, 갑자기 속에서 응어리를 쏟아내듯이 분위기를 순식간에 박살 내는 둔탁한 타건으로 시종일관 첼로를 반주했습니다. 흡사 부흥회에서 침 튀기는 목사를 보는 느낌...?


양성원이 트리오 중 제일 양호했지만, 5곡과 마지막 곡에서 드러낸 기교 부족에 몰입이 확 깨더군요. 특히 ppp 약음이 상상이상으로 불안했죠. 소리가 탁하고 요동치는데 여기서 어떻게 초월이 표현되나요... 하지만 탁한 음색은 바이올린이 모두 가져간 듯싶었습니다. 의도적이지 않은 이상 - 그런 미학의 극단에 이브리 기틀리스가 있겠지만 - 프로정신이 결여된 걸로 보이는 음색입니다. 앵앵거리면서 중음역은 요동치고, 고음을 정말 아슬아슬하게 내는 연주였습니다. 당연히 다른 악기와 전혀 섞이지 않았죠. 앙상블의 부재에는 바이올린의 책임이 가장 커요. 그리고 예수의 영원성을 노래하는 8곡에서는, '사기꾼 전문 배우가 예수를 연기하는 느낌'이라는 어떤 음반에 대한 평이 떠올랐습니다.


채재일은 전반적으로 괜찮았습니다. 기교에 전혀 문제가 없었고, 끝이 둔탁한 리듬만이 약간의 흠이었죠. 물론 그래서 표현이 생동감있고, 번뜩이지는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악보를 따라가는 데 성공한 무난한 연주였다고 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전체적으로 무너져가는 연주를 거의 혼자 살린 느낌이었죠. 쉽지 않은 시간이었을 겁니다.


물론 다큐멘터리를 포함해서 그걸 끝까지 들은 관객에게도 쉽지 않은 시간이었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