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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잡설/공연 후기

서울시향 정기공연 (쇼팽, 차이콥스키) - 2016년 7월 15일 예술의전당

by Chaillyboy 2016. 7. 17.

(클갤 아바도님 사진 펌)


프레데리크 쇼팽: 피아노 협주곡 제1번 Op.11 (1830)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4번 Op.36 (1877-1878)


피아노: 조성진

얀 파스칼 토틀리에, 서울시립교향악단


2016년 7월 1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서울특별시


(조성진으로 조회수나 올려봅시다)


올해 서울시향은 애증의 공연이 참 많았죠. 재밌는 건 악단이 한 방에 가는구나 한숨 쉬던 만큼, 만족스러운 공연도 많았다는 겁니다. 잠깐만 생각해봐도 스테판 애즈버리의 날렵하면서 강단 있던 닐센 교향곡, 단단한 음향이 스멀스멀 올라오던 리오넬 브랑기에의 다프니스와 클로에 전곡, 사소한 흠에도 불구하고 관객을 압도했던 한누 린투의 시벨리우스가 떠오르네요. 제가 가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우려한 안토니오 멘데스의 차이콥스키, 음반으로는 전혀 믿음이 안 가던 마리오 벤자고의 드보르자크도 훌륭한 성과를 거뒀습니다. 물론 무너진 공연도 많았습니다. 이건 불안정한 악단 상황에 단원들이 기본기를 못 내고 있다는게 맞을 겁니다.


이번 공연도 기대가 크지 않았습니다. 얀 파스칼 토틀리에는 구할 수 있는 음반과 음원에서 전혀 좋은 소리를 못 들려줬고 - 사실 처음 떠오른 단어는 깡통이었습니다 - , 조성진 역시 기대보다는 확인의 의미가 더 컸죠. 물론 이건 콩쿠르 우승자가 짊어지는 필연입니다. 클래식을 오래 들어온 한국 관객이라면 조성진을 적어도 한 번은 봤을 테고. 굳이 비유하자면 쇼팽 콩쿠르에서 막 우승한 지메르만과 수염 난 지메르만을 듣는 태도의 차이라 할까요? 무엇보다 이번 공연을 꽉 채운 관객이라면 대부분 뛰어난 음질로 제공된 쇼팽 콩쿨 영상을 시청했겠죠. 거기다 이례적인 예매 전쟁과 암표 거래가 이어졌으니, 어수선한 청중을 걱정한 애호가도 많았고요. 


뚜껑을 열어보니, 탁월함과 흠집이 이리저리 섞인 연주였습니다. 이런 공연은 감상 포인트에 따라 평이 양 끝으로 나뉘는 경우가 많죠. 저는 할 이야기가 많아서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이번 공연은 지휘자를 축으로 세워놓고 복잡하게 뒤섞인 평가를 깔끔하게 바라볼 수 있었어요. 그래서 더 재미있는 공연이었습니다.


많은 후기가 토틀리에의 과장된 동작과 그 맥없음을 지적했죠. 과장된 동작에 3층까지 또렷하게 들리는 숨소리가 집중을 방해하긴 했지만, 중요한 문제는 아닐 것 같습니다. (물론 효과적인 비팅은 전혀 아니었죠) 오히려 인상적인 건 초침 같은 섬세한 지시와 인터뷰에서 본인이 언급한 현악 음향에 대한 조탁이었죠. 거기에 더해 세부에 집착하는 지휘치고는 독특한, 호흡을 길고 분명하게 하는 해석이 눈에 띄었습니다.


협주곡에 대한 불만이 여기서 나왔죠. 대체로 조성진이 본인 템포를 못 잡고, 지휘자에 끌려다니는 모습이었습니다. 특히 1악장 재현부부터 지휘자의 독특한 템포와 조성진의 합이 안 맞았어요. 조성진은 본격적으로 개성을 드러내려는데, 김이 확 빠진 거죠. 이런 경우가 여러 번 있었고, 결국 코다까지 긴장감을 전혀 쌓지 못했습니다. 조성진 특유의 (울림이 깊은 음색과 별개로) 과감한 해석이 전혀 어울리지 않았고, 마지막 타건은 집중력을 잃었는지 소리가 불분명했죠. 2악장의 경우는 이런 문제가 두드러지지는 않았습니다만, 3악장 역시 비슷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휘자는 반주파괴자에 가까웠습니다. 다만, 연주 실력을 문제 삼는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최근 서울시향의 반주 중에서 3층까지 반주 음향이 단단하게 응집돼서 들리고, 큰 실수가 없는 경우는 잘 없었습니다. 정명훈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반주도 희미한 소리에 실망했던 적이 많았기 때문에, 연주 자체는 훌륭하게 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거죠. 게다가 쇼팽 협주곡이었습니다. 대편성으로 빈약한 연주를 감출 곡은 절대 아니죠.


2부는 지휘자의 장점이 비교적 잘 드러났죠. 우선 네 악장 모두 풍성하고 압도적인 현악 음향에 감탄했습니다. 물론 단단하며 결이 깔끔한 독일이나 북유럽 지휘자의 그것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차이콥스키 특유의 뽕빨'이라는 의견에는, 쇼팽 협주곡에서 보여준 소리가 그대로 이어졌다고 반론하고 싶습니다. 정말 빼어난 현악이었는데, 본인은 바이올린 경험을 언급했지만 대 첼리스트의 아들로서 풍성한 현악에 대한 감각을 타고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스토코프스키 사운드가 잠깐 떠오를 만큼 말이죠. 토틀리에는 직접 표시한 보잉을 악단에 지시했다고 합니다. 대체로 이런 시도가 악단과 지휘자 사이의 불화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에, 이걸 제대로 따라준 시향에 박수를.


물론, 관악과 현악이 조화롭게 섞이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1악장의 플루트와 바이올린의 대화라던가, 이어지는 목관의 독주는 툭 튀어나온 느낌이었죠. 전혀 서정적이지 않았습니다. 전반적으로 지휘자가 앙상블보단 파트별 소리를 강조한 것 같습니다. 


어수선한 연주라는 지적이 많습니다만, 저는 호흡이 길었음에도 긴장감을 그대로 챙겼기에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그나마 좋았다고 칭찬받은 4악장도 언급할만하지만, 특히 전개부부터 코다의 흐름을 하나의 거대한 크레셴도로 보는듯한 해석을 느슨한 템포에서 그대로 이루어낸 1악장을 들으며 꽤 놀랐습니다. 제4번 교향곡은 노세다류의 저돌적으로 긴장감을 쌓는 연주를 즐겨듣는데, 완전히 다른 취향에서 감동한 셈이죠. 다만, 이 지휘자는 느린 악장과는 잘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이어지는 2악장은 완전하게 나사가 빠진 연주였으니 말입니다. 세밀한 지휘는 지시가 적어지는 악장에서 단원의 영감을 끌어내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토틀리에는 브람스나 드보르자크 같은 중부유럽 작곡가와는 잘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오히려 버르토크나 (특히 오케협) 신고전파, 혹은 (의외로) 베토벤에서 완전히 허를 찌르는 해석을 보여주려니 싶었습니다. 물론 9월 말에 라하브 샤니라는 빼어난 지휘자가 서울시향과 오케협을 들려주기에 이후 일정이 없는 게 아깝지는 않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