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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잡설/공연 후기

제 6회 ARKO 한국창작음악제: 양악부문

by Chaillyboy 2015. 1. 24.




장춘희: 오케스트라를 위한 'Karma'

김수혜: 오케스트라를 위한 '화광동진'

조은화: 장구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자연, 스스로 그러하다' (장구협연: 박천지)


Intermission


정종열: 관현악을 위한 '린'

배동진: 그림자 소리 2

이만방: 어디에서 어디로


지휘: 최희준, KBS교향악단


무료에 최희준 지휘라길래 과감히 예당으로 향했다. 현음 잘 모르고 길게 써봤자 헛소리밖에 안될게 분명하기에 느낀점 위주로 간략히.


현음공연에 무려 사람이 꽉찼다. 알량한 스노비즘이 발동해서 텅빈 객석에서 조용히 듣다 와야지 따위의 생각으로 향했건만 어마어마한 인파에 놀라게 되었다. '밝은 한국 클래식과 현음의 미래!' 라기보단 토요일 두시에 무료공연인게 큰가 싶기는 했다. 그래서 그런가 꼬마들도 엄청 많았는데 인터미션 지나고 관객수가 줄었던걸 보면 대강 맞는듯... 근데 오히려 애들이 집중하고 엄마들은 폰보고 속닥대고 자는게 인상깊었다. 미래의 베베른들을 보는것 같아서 흐뭇


6곡 내리 창작음악을 연주하는건 행사의 취지에 맞겠지만 하드코어한 감이 없질 않아 있다. 현음을 잘 모르는 입장에서 가장 큰 문제라면 어떤곡이 어떤곡이었는지 듣고나서 기억이 잘 안난다는 점이 아닐까. 행사의 취지와 흥행성(내지는 오락성)을 모두 살릴 수 있는 기획이 분명 있을꺼라 막연하게 생각은 해본다. (물론 현실적인 문제도 있을 것이다)


공연 내내 든 두 가지 생각. 

먼저 21세기 음악은 전위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거란 입장이었는데, 그 생각이 어느정도 맞아 기분이 좋았다. 20세기에 발견된 다양한 재료들을 이용하여 참신함을 찾아가는 느낌. 물론 제도권의 행사에서 틀을 깨버리는 시도가 나오긴 힘들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6곡 모두 작위적인 느낌이 들었다는 점. 이런 음악들이 흔히 그렇듯이 곡을 잘 못 쓰면 작위적이거나 어색한 느낌이 들기 마련이다. 참신함 개념을 떠올리는데서 그치지 않고 최선의 구성을 찾아내는게 필요해보였다. 그런 의미에서 6곡 모두 A+급의 곡은 아니었으리라.


1부는 내가 현음에 가진 생각들이 잘 대비되어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음악을 들으며 (무의식적으로) 따지는건 두가지. 흐름과 음의 필연성. 서사구조를 찾기 힘든 많은 현음에 쉽게 접근 못하는 것도 이런 이유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게 나쁘단게 아니라 걔들은 원래 그렇게 생겨먹었기에 나랑 핀트가 안맞을 뿐.


첫곡 Karma는 주제를 바탕으로 한 변용이 핵심이었고, 그렇기에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흐름을 타면서 감상도 상대적으로 쉽게 할 수 있었다. 여러모로 윤이상의 음악이 생각났는데 요약하자면 정중동의 느낌으로 효과적인 주제 변용을 이루어냈다는 것. 물론 윤이상처럼 빠랏빠랏하게 생기가 흐르진 않았고, 작곡가의 의도처럼 음색들이 잘 드러났는지는 잘 모르겠다. 무거운 음색이 곡을 지배하는 듯 보였기에.


반면 두번째 곡은 서사적이기보단 순간의 묘사에 치중한 느낌이다. 하여 감상 포인트를 잡기 힘들고 지루한 측면도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작품의 흠이 아닌 개인적인 문제. 인성과 타악기를 효과적으로 사용했는데 작곡가가 표현하려고 했던 '다름'을 나타내는 좋은 시도였다. 건반과 타악기의 짧은 치고빠짐은 불레즈의 후기곡들과 닮은 점이 있다고 느꼈다. 여담인데 중간에 나온 인성은 아무리 봐도 '할렐루야' 


세번째 역시 묘사적인 음악이었고, 여섯 곡 중에서 가장 표준적인 유럽 현음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곡가의 이력을 봐도 대강 그런듯. 장구는 관현악과 잘 어울렸다. 솔직히 저번에 들은 진은숙 생황 협주곡보다 나았음. 하지만 아직까지 하나의 완성된 곡이라기보단 효과를 실험하는 습작의 느낌이 강했다. 같은 구성으로 더 좋은 곡이 나오리라 믿는다. 장구가 드라마틱했기에 박수는 제일 컸다. 우리 시대 청중들은 자극적인 리듬에 익숙하기에 그런게 아니었을까.


2부는 전반적으로 즐겁게 들었다. 


네번째 곡, 관현악을 위한 '린'은 생동감이 인상적이었다. 개념음악의 성격이 강했는데 짧은 음렬과 멜로디가 잔향처럼 퍼져나가는 순간을 잘 그려냈다. 색채감도 주목할만했고. 다만 강렬한 초반과 다르게 후반부로 갈수록 구성이 느슨해져 작위적인 느낌을 가장 크게 받았다. 그래서 가장 아쉽기도.


개인적으론 다음 곡 '그림자 소리 2'가 제일 마음에 들었다. 빛과 그림자의 필연과 대비를 훌륭하게 그려냈는데, 색채감이 정말 훌륭했다. 적어도 작곡가가 의도한 바는 훌륭하게 성취되었단 느낌. 서사적 묘사가 맞을까. 만화경같은 빛과 그림자의 변화에서 하나의 흐름을 잡아내는데도 성공했다고 느꼈다. 


마지막 곡은 위촉된 곡이라는데, 여러모로 툭 떨어진 느낌이었다. 전통 가락을 이용한 후기낭만적 스케치. 리아도프의 곡이 떠올랐다. 하지만 주제 선율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구성은 단조로웠기에 그렇게 큰 점수를 주긴 어려웠다. 강박적으로 전통선율에 매달렸다는 느낌이 강했다. 강성한 대한제국의 작곡가가 곡을 썼다면 이랬을까. 곡이 끝났을때 든 생각이었다.


최희준은 기본적으로 상쾌한 사운드를 바탕으로 명료함을 다져나가는 스타일이라 근현대음악에 잘 어울린다 생각한다. 지휘는 훌륭했고, 흠잡을때 없어보였다. 그러나 문제는 KBS 교향악단. 먹먹한 현악은 이런 지휘자의 장점도 빨아들였고, 특히 첼로 베이스군이 제 소리를 못내었기에 현악 음향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처음 듣는 곡들이라 이런 평가는 조심스럽게 내려야 되겠지만, 오케스트라 뚜띠에서 들리는 소리는 수준 이하였다고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