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하르트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 (1857-1859)
트리스탄: 지크프리트 예루살렘
이졸데: 발트라우트 마이어
쿠르베날: 팔크 슈트루크만
브랑게네: 우타 프리프
마르케 왕: 마티아스 횔레
멜로트, 젊은 선원: 폴 엘밍
목동: 페터 마우스
타수: 산도르 솔리옴-너지
다니엘 바렌보임, 바이로이트 축제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연출: 하이너 뮐러
무대 디자인: 에리히 본더
의상 디자인: 요지 야마모토
촬영: 호란트 H. 홀펠트
1995년 7월 3-9일, 축제극장, 바이로이트
DG 004400734439
하이너 뮐러가 경력 최만년에 오페라 연출을 맡았다는 이벤트적인 흥분을 가라앉히더라도, 무대 연출이 탁월하다는 생각이 계속 듭니다. 바이로이트의 깊은 무대를 회화적인 색감으로 가득 채우는 것만으로 충분히 효과적이에요. 심원한 색채가 쇼펜하우어 세계를 그대로 보여주고, 모두를 짓누르는 음악에 무게를 더하니까요.
도움이 되는 두 가지 맥락을 더해보죠. 당시 총감독 볼프강 바그너가 프로덕션을 부탁한 사람은 파트리스 셰로입니다. 셰로는 "트리스탄은 무대 연출이 불가능한, 라디오 극에 가깝다"며 거부했죠. 물론 그가 2007년 밀라노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 (이하 <트리스탄>)을 연출한 걸 아는 우리에게는 그저 외교적인 핑계로 보이지만, 아무튼 저 말 자체는 중요합니다. <트리스탄> 연출의 대다수가 저 문장을 향하니까요. 더 재밌는 이야기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에게서 나오는데, "죽어가는 남자가 노래하는 건, 전혀 사실적이지 않다." 전형적인 브레히트식 촌철살인이죠.
뮐러의 연출도 비슷한 지점에서 고민합니다. 물론 그가 이류 연출가처럼 근본 없는 핍진성을 고민하진 않았을 겁니다. 저는 오히려 뮐러의 극작이 관객에게 요구하는 능동적인 해석, 혹은 날카롭고 급진적인 표현들이 여기선 보이지 않아서 의외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혹은 정치적인 쟁점을 적극적으로 해석하지 않은 것도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론만 보자면 그런 맥락을 멸균하고 지구 밖에서 세계를 만들었죠. 결국, 갈림길에서 뮐러는 (세로의 말을 빌리자면) 라디오-드라마를 극대화하고, (브레히트가 말했듯이) 사실적이지 않은 오페라의 세계를 충실하게 구현한 것처럼 보입니다.
인물들의 동선은 축을 벗어나지 않고, 부분과 동작은 제한적이죠. 요지 야마모토의 의상은 그런 분위기를 한 층 키우고요. 뮐러는 "켈트-게르만적" 요소를 모두 지우고 싶어 했는데, 정치적인 쟁점이 사라진 것도 그런 바람과 연관되어 있었겠죠. 그의 부탁대로 야마모토는 모든 관습에서 벗어난 의상으로 극의 수준을 높였고, 결국 음악과 거대한 분위기가 남았습니다. 당시 평을 보면 이런 비현실적인 연출에서 맥락 없이 순간순간 감정의 극한을 느껴서 놀라웠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이거야말로 <트리스탄>이죠.
물론 이런 연출은 빌란트 바그너의 연장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진 몇 장만 남은 연출을 평가하는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두 연출의 줄기와 봉우리는 분명히 다릅니다. 그 씨앗이 비슷할지라도요. 빌란트 바그너는 무한한 공간에서 색채와 조명을 다양한 축으로 발산시키며, (칼 뵘이 지휘한) 군더더기 없는 음악의 보조와 함께, 우주적인 보편성과 상징성을 만들었죠. 반면에 뮐러는 자폐적일 정도로 시선이 좁은 공간, 캔버스의 평면에 모든 걸 집어넣었습니다. 그 색채와 조명은 어떤 순간에도 캔버스에 머물고 있는데, 그 폐쇄성 속에 모든 <트리스탄>의 감정을 순도 높게 벼려놓았습니다.
음악은 훌륭합니다. 성악에 아쉬움이 없지 않지만, 전성기의 다니엘 바렌보임이 전매특허인 <트리스탄>을 지휘했습니다. 프레이징이 칼같지는 않죠. 하지만 유장한 템포를 손에 쥐고, 청자가 버티기 힘들 음향의 압력을 쏟아냅니다. 바렌보임의 오케스트라는 항상 특이한 소리를 냅니다. 아마 균일한 현악 음향에 기초할 텐데, 중음역을 중심으로 음향이 - 끝이 둔탁한 프레이징과 함께 - 단단하게 뭉치면서 육중한 펀치를 날립니다. 이게 높은 시선의 해석과 대단한 시너지를 만들죠. 많은 바그네리안들이 바렌보임의 트리스탄 중 이 95년 실황을 최고로 치던데, 동의합니다.
여담이지만, 당시 프로덕션의 보조 지휘자는 영국의 젊은 지휘자 '앤서니' 파파노입니다. 92년부터 브뤼셀의 라 모네 극장 음악감독으로 재직한 파파노가 바이로이트의 보조 지휘자로 참가했을 줄은 전혀 몰랐네요. 아마 당시의 경험들이 십 년 뒤 제작된 <트리스탄> 음반에도 녹아들었을 겁니다. 바렌보임이 66년 바이로이트에서 칼 뵘을 보조한 걸 생각해보면 정말 재밌는 인연입니다. 결국, 해석도 돌고 도는 것이겠죠.
ps. 빌란트의 <트리스탄>이 영상으로 남아있었죠... 이건 다음에 평을 올려보던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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