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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잡설/공연 후기

KBS교향악단 특별연주회 Ⅶ "고전 초월" (브람스, 베토벤) - 2020년 10월 31일 예술의전당

by Chaillyboy 2020. 11. 1.

   

요하네스 브람스: 비극적 서곡 Op. 81 (1880)

루트비히 판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4번 Op. 58 (1805-06)

(앙코르)

루트비히 판 베토벤: 바가텔 Op. 126, No. 1 (1823)

크리스토프 글루크(조반니 스감바티 편곡):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中 "정령의 춤" (1762)

 

(인터미션)

 

요하네스 브람스: 교향곡 제1번 Op. 68 (1855-1876)

(앙코르)

얀 시벨리우스: "쿠올레마" 극 부수 음악 슬픈 왈츠 Op.44, No. 1 (1903)

 

피아노: 손민수

피에타리 인키넨, KBS교향악단

 

2020년 10월 3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서울특별시

 

잠깐의 여유를 즐기기 위해 콘서트홀로 향했다. 마침 오전에는 북한산 단풍을 보며 브람스 클라리넷 오중주의 선율을 떠올리기도 했다. 브람스의 무거운 인상에서 마음 안자락 가볍고 날아가기 쉬운 자유를 지키려는 결계를 떠올렸다. 투명한 단풍빛이 몰아치는 2악장 클라리넷 음향와 어우러졌다. 그 순간 무턱대고 오후의 공연도 기대했던 것 같다.

 

즐겨듣는 성향의 연주가 아녔음에도 다양한 부분에서 설득될 수 밖에 없었다. 연주의 탁월함을 요약할만한 지점이 정말 많았다. 단단하고 무엇보다 호소력 있는 손민수의 음색, 사색적인 시선으로 그 협주곡의 초월성을 포착한 독주/반주의 조화, 오케스트라의 치밀한 앙상블과 응집된 음향. 관점 없는 관점처럼 곡을 자연스럽게 노래하는 인키넨의 수사법. 오케스트라의 무던한 일상을 잊지 못할 순간으로 만들었을 지휘자의 조련술. 무엇보다 이런 미덕이 서로 떨어지지 않고 어느 정도 연결되었다는 점에서 연주의 훌륭함이 배가된다.

 

요컨대 다양한 미덕이 한 군데로 지향된 콘서트였으며, 그 방향 또한 훌륭했다고 할 수 있겠다.

 

브람스에서 기억나는 장면을 옮겨본다. 비브라토를 절제한 현악기의 음향이 한데 모여 하나의 분명한 목소리를 낸다. 현악군 전체가 실내악적이라는 인상을 일관되게 주는데, 특히 단단하게 뭉친 첼로/베이스 라인은 음향의 풍성한 결을 만들어낸다. 트럼펫을 절제하고 호른과 바순의 사운드를 강조해 음향의 입체감을 더욱 키운다. 모든 악기음향이 정교함을 키우되 경계선을 넘지는 않으며, 바이올린의 양익배치 속에서 균형있는 음향이 완성된다. 지휘자의 듣는 귀가 상당히 좋을 것이라 짐작되는 부분이 많았다. 그가 지휘하는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듣고 싶어졌다.

 

청자가 그런 음향을 즐기는 동안 작은 클라이막스들이 낌새없이 제시된다. 인키넨은 저돌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절제된 템포 속에서 구상을 실현하는 편이다. 서사적 흐름보단 대위법의 극단적인 구현을 통한 극작술에 가까워보인다. 하지만 인키넨이 곡을 음화(音畫)의 슬라이드로 본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고, 그를 단순히 음향에 탐닉하는 지휘자라고 판단하기는 어려웠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의 건반울림이 객석에 깊게 전달되었다. 녹음장비에 잡히지 않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화음에서 흘러나왔다. 무대에서 멀리 떨어진 객석에서도 피아노 음향의 선명도가 상당했다. 손민수의 함머클라비어 콘서트에서 (진부한 비유지만) 타격초점이 짧고 정확한 망치소리 같은걸 느꼈었다. 오늘 연주의 성향은 이와 전혀 달랐지만, 두 연주 모두에 깔려있는 그의 기본기를 놓치기는 어렵지 않았다. 지휘자와 통한듯 절제된 템포 속에서 절묘한 아고긱을 통해 드라마를 만들어갔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단단한 저음과 여린 타건의 집중력이 인상깊었다. 적막 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음향을 피아노에서 들은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