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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잡설/기타

베리오 관현악 편곡집 - 리카르도 샤이

by Chaillyboy 2014. 7. 12.


Luciano Berio – Orchestral Transcription


Riccardo Chailly, Orchestra Sinfonica di Milano Giuseppe Verdi


리카르도 샤이의 음반은 도전적이다. 현대곡으로 공연을 시작하는 모범적인지휘자들을 생각해 보자. 이들의 음반은 공연과 대비된다. 아바도의 디스코그래피에서 현대음악은 제한적으로 등장한다. 래틀조차 실황의 참신함을 음반으로 담아내지 못한다. 마에스트로들이 상업적인 음반사 내부에서 목소리를 잃은 것과 비교하면, 샤이에게는 운과 강력한 주관이 모두 따랐다. 간단히 훑어도 샤이의 음반들은 참신하다. 푸치니와 로시니의 묻힌 곡들로 시작해서, 모솔로프와 바허나르 같은 잊혀진 작곡가들을 탐구한다. 바레즈의 작품 전곡을 녹음하는 거대 프로젝트까지 이루어냈고, 브람스 같은 주요 작곡가 역시 학구열이 넘치는 곡을 선정한다. 음반사에게 불행했던 21세기에도 샤이는 멈추지 않았다. 소개할 음반도 21세기에 나온 뛰어난 기획이다.


음반은 루치아노 베리오의 관현악 편곡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베리오는 많은 편곡을 남겼으며, 전통적인 음악어법을 거부감 없이 사용했다널리 알려진 2001년의 <투란도트> 피날레 완성은 빙산의 일각이다. 1964년의 유명한 <민요>1970년의 <오페라>에서 사용된 다양한 음악 양식들로 미루어 보아, 베리오는 이른 시기부터 전통적인 음악어법에 관심 가졌다고 말할 수 있다.


퍼셀 <요정여왕>의 짧은 춤곡으로 음반은 시작한다. 브람스의 <클라리넷 소나타 1>으로 끝나는 음반에서 곡은 작곡가의 시대순으로 나열되었다. 베리오는 단순한 편곡부터 리모델링, 재창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원곡을 사용한다. 가장 극단적인 경우는 모차르트 <마술피리> 연인이나 아내가 있다면아리아를 파편화하여 원곡을 알아볼 수 없게 재구성한 4번 트랙이다. 곡은 1956년 도나우에슁엔 축제에서 모차르트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위촉되었으며, 1950년대 베리오가 몰두하던 전자음악의 영향을 강하게 드러낸다.


슈베르트의 교향곡 10 (D. 936A) 의 스케치에 근거하여 완성된 <렌더링>은 더욱 흥미로운 곡이다. 베리오는 음악학자들이 흔히 하는 작곡가가 된 양 곡을 완성하는 일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현대적인 미술 복원처럼 작품이 지향했던 색채를 최대한 살리되, 불가능한 부분을 빈 공간으로 남겨둬야 한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부분은 빈 공간의 구성이다. 스케치 사이의 단절된 부분은 슈베르트의 후기곡과 스케치 사이의 피아니시모 다성구조로 연결되며 첼레스타의 등장과 함께 다음 스케치로 음악은 넘어간다. 베리오가 결합조직’, ‘시멘트에 비유한 공간은 스케치 사이를 아무런 위화감 없이 연결시키며, 완벽한 유기성을 만들어낸다.


베리오에 능통했던 샤이답게 연주의 질은 상당하다. 실제로 <렌더링>의 경우 샤이가 전체 초연을 지휘하기도 했다. 청량하게 터지는 금관과, 무겁지 않게 역동적으로 반응하는 현악에서 샤이의 영향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샤이가 상임으로 있던 밀라노 베르디 교향악단의 실력은 최고라 보기 힘들며, 독주 기량이 필요한 부분에서 아쉬운 순간이 여럿 보인다. 또한, 시대순의 편곡 대신 곡들의 편곡 배경과 특성에 알맞는 순서로 선정되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참고자료:

20세기 작곡가 연구회(2003), 20세기 작곡가 연구 III, 음악세계. 중 루치아노 베리오편

루치아노 베리오의 공식 홈페이지.

http://en.wikipedia.org/wiki/Luciano_Ber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