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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잡설/번역 - 네빌 카더스 평론

카더스 평론 01: 할레 콘서트 (1927년 10월 28일)

by Chaillyboy 2015. 1. 13.

할레 콘서트 (1927 10 28)

(네빌 카더스가 '맨체스터 가디언'지의 음악 평론가로 부임한 뒤 쓴 최초의 글)

 

해밀턴 하티 경 (1979 - 1941)


할레 오케스트라는 브람스 연주의 비밀을 제대로 깨우쳤고, 나아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품어내는 3번 교향곡의 세계를 발견했다. 어젯밤, 가슴을 울리는듯한 사나이[각주:1]의 노래를 들으며 누구도 이 남자가 몇 년 전에 소박함과 엄격함 그 자체로 여겨졌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는 끊임없던 학파 간 논쟁[각주:2]에서 지지자들에 의해 기치로서 치켜세워졌던 예술가의 숙명이다. 브람스는 낭만주의자들을 물리치기 위한 무기로 사용되었고, 충실했던 브람스의 인간성과 문화 속 숨 쉬는 위대한 천재성은 마치 낭만적이지도 고전적이지도 않은 것처럼 보였다. 고전적인 감각과 애정, 그리고 열정이 부재하는가? 낭만적인 조직과 관점, 혹은 안목이 부재하는가? 브람스는 상남자였다. 브람스의 교향곡은 시대의 공기에 살아있던 음악 정신을 모두 품어냈다. 베토벤의 장엄한 도덕률과 껍데기 속 보이지 않게 흐르는 드라마에 브람스는 감동했다. 감미롭고 행복하나, 내면의 슬픔과 함께하며 특유의 억양으로 풍부하게 감정을 풀어내는 슈베르트와 슈만의 가곡에 감동하기도 했다. 그렇게 가곡, 바이올린 소나타, 사랑스러운 열다섯 개의 피아노 왈츠, 그리고 3번 교향곡이 브람스의 펜 끝에서 흘러 나왔다.



브람스는 낭만의 불꽃으로 고전적인 손을 덥혔다. 그는 낭만의 심장에 들어가는 동시에 진짜 고전 속 정화와 사색으로 향했다. 3번 교향곡에서 시인과 철학자는 한데 섞인다. 강력한 1악장 서주부의 걸음걸이는 거대하며, 지고하고 굳센 정신이다. 반대로, 안단테의 도입 선율은 교향곡을 마치 요람인 양, 그리고 위대한 거인이 다정하게 예술을 어루만지는 것처럼 표현한다. 브람스의 작품 속 강인함에는 달콤함이 항상 녹아있다. 방대하고 화강암처럼 완고했던 음악은 어느새 갑자기 심각하고 겸손한 가화(歌花) 속으로 우리를 불러낸다; 마치 괴테를 감동하게 했던 그 꽃처럼, 산비탈에 숨어있던 꽃은 모두를 감동시킨다. 교향곡이 얼마나 신속하게 웅장한 리듬을 누그러뜨리고, 부드럽고 고독한 낭만의 숨결로 잦아드는가. 브람스를 독일의 워즈워스[각주:3] 빗댄다면 비유의 요점이 잊히질 않길 전적으로 바랄 뿐이다. 일반적으로 브람스의 음악은 칙칙한 빛깔로솔직히 뭔가 벗겨진, 매슈 아널드[각주:4]의 말을 더하자면 대머리 산꼭대기처럼 벗겨진.’ –여겨졌다. 브람스는 관현악이 가질 위력적인 순간에만 제대로 읽힌 것 이다. 할레 오케스트라는 이제 브람스의 총보-그 명상적인 선율 속에서, 가을이 잦아드는 울림 속에서-에서 달콤함을 찾는다. 여기서 우린 작곡가의 읊조림을 떠올려 볼 수 있다.


내 가슴속 품은 그 음악

언젠가 들리지 않을 그 음악


시민들을 위해 보여준 브람스의 정수야 말로 해밀턴 하티 경이 도시의 음악생활에 끼친 최고의 공헌이다. 지난밤의 3번 교향곡은 그 어느 때보다 큰 박수를 받았다. 연주는 매 순간 세심했고, 교향곡의 막대한 리듬감을 잘 살려내며 애정 어린 해석을 선보였다. 기술적 측면에서 작품에는 지휘자가 쉽사리 즉흥적인 처리를 하게 만들 외적 복잡함이 도사리며, 이때 작품은 복잡함을 넘어 억지로 짜 맞춘 것처럼 보인다. 과거에 교향곡은 차가운 암석처럼 다가오곤 했는데, 이는 작품의 여러 기발한 디자인을 의도적으로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지난밤 우리는 머리와 가슴, 견고함과 섬세함을 모두 갖춘 연주를 들었다. 단원들은 브람스가 그의 걸작에 가졌을 깊은 애광(愛光) 잡아냈고, 모두가 마침내 그 아름다움 앞에서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마지막 악장의 다채로운 음색변화는 오케스트라에 확실한 기쁨을 주었고, 이에 못지않게 청중들도 즐거워했다. 브람스보다 확실한 미래를 가진 작곡가를 과연 상상이나 할 수 있는가? 청중 모두가 점점을 찾는 부분이었다.





첨언: 한스 리히터 이래 할레 오케스트라가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면 바로 하티가 상임으로 있던 백년 전 이야기일 것이다. 지금은 그저 과거의 영광으로 먹고사는듯한 이 오케스트라가 실제로 베를린필에 '거의' 맞먹는다는 찬사를 받기도 했으니 말이다. 슈나벨이 던진 말이니 대충 믿어도 될 것 같다. 하티는 당대 최고의 반주쟁이로 칭송받던 지휘자였고, 슈나벨 역시 하티의 뛰어난 반주에 한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들지만...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모두에게 불행하게도 그들의 전성기는 음반의 혜택을 제대로 받기 힘든 시절이었고, 그렇게 둘 모두 역사 속으로 잊혀진 듯 싶다. 물론 찾아보면 생각보다 음반은 많이 존재한다. 제일 유명한 음반은 아마 시게티를 반주한 28년의 브람스일테고, 음반은 스타일을 잘 잡아냈다.  좋은 반주가 가져야 할 견실한 앙상블 따위의 덕목들. 인 템포(물론 위의 헝가리 무곡은 요상한 드라이브를 잘 걸어준다), 자신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몰개성의 개성. 협주곡이라 그런가 싶지만 어디선가 들었던 슈베르트나 모차르트 모두 비슷한 느낌이었으니.




  1. 브람스 [본문으로]
  2. 바그너파와 브람스파 사이의 격렬했던 논쟁을 말한다 [본문으로]
  3. William Wordsworth (1770 -1850): 영국의 대시인 [본문으로]
  4. Matthew Arnold (1822 - 1888): 영국의 시인 겸 평론가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