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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잡설/기타

겐나디 로제스트벤스키와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 (림스키-코르사코프, 라흐마니노프, 쇼스타코비치 medici arts)

by Chaillyboy 2016. 8. 25.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 러시아 부활절 축제 서곡 Op.36 (1887-1888)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1번 Op.1 (1891)

1979년 8월 31일, 로열 알버트 홀 (BBC 프롬스), 런던

피아노: 빅토리아 포스트니코바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4번 Op.44 (1935-1936)

1979년 9월 9일, 로열 알버트 홀 (BBC 프롬스), 런던


겐나디 로제스트벤스키,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


medici arts classic archive 3085278


 

* 내지가 종이 한장이네요... 번역할 글이 없습니다 (-.-)


진영논리가 뻗치는 칼날 끝에 서 있던 한반도의 심성과 다르게, 고전음악계에서 자본-공산의 묵시론적 대결 구도는 미약했던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고전음악뿐이겠습니까...) 서방권에서 활동한 소비에트 예술가들은 이분법을 무너뜨리는 대표적인 예시일 텐데, 그들은 서방 음악계에 활발하게 섞이며 자신을 뽐냈기 때문입니다.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는 직접 주도해서 프랑스에 축제를 만들었고, 영국과 서독에 자유롭게 드나들었습니다. 다시 설명하겠지만, 겐나디 로제스트벤스키는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임으로 재직했고 여러 서방 오케스트라와 - 심지어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 꾸준하게 작업했죠. 일본만 해도 체코, 소련 음악가들이 매년 넘나들지 않았습니까? 레너드 번스타인과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유신의 서울에서 고위 공무원의 거부를 무시하고 보란 듯이 쇼스타코비치를 연주했다는 전설을 가진 우리로선 상상이 안 갔을 법도 합니다. 


물론 이건 양가적입니다. 항상 그렇듯이 빛과 어둠이 있죠. 체제 유지를 위해 날카롭게 벼려진 칼은 엘리트를 실용적으로 피해갔으니까요. 저는 두 심성이 공존한다고 생각하길 좋아하지만, 이걸 논증하는 건 주제를 벗어나네요. 다만 이 DVD는 좋은 대체재가 될 수 있을 겁니다.


간단히 살펴보죠. 로제스트벤스키는 BBC 심포니의 상임으로 프롬스 실황에 꾸준하게 등장합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프롬스는 BBC에서 주최하죠. 주로 러시아 곡을 연주합니다만, 범위는 넓은 편입니다. 글린카부터 쇼스타코비치로 이어지는 대부분의 러시아 작곡가가 포함됩니다. 의외로 로제스트벤스키가 좋아했던 구스타프 홀스트의 <행성>이 연주되기도 합니다만, 역시 제일 눈길을 끄는 건 영상에 잡힌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4번입니다.


로제스트벤스키와 이 곡은 각별한 편이죠. 세계 초연자 키릴 콘드라신의 권위는 실황 두 개가(1, 2) 발매되며 다시 살아난 것 같지만, 디스코그래피 전반적으로 서방 초연자인 로제스트벤스키가 앞서는 편입니다. 개인적인 기호지만, 1936년에 쓰인 이 곡에선 콘드라신의 정공법보단 지독한 아이러니를 살리는 로제스트벤스키의 해석이 어울리고, 또한 옳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콘드라신이 첼로 협주곡을 기가막히게 반주한 이유겠죠) 물론, 본인도 곡을 아껴온 것 같습니다. 발매되지 않은 실황까지 합치면 - 빈 필하모닉, 시카고 심포니, 베를린 필하모닉을 포함한 - 어지간한 오케스트라와 모두 이 곡을 연주했으니까요. 사실상 제게는 예프게니 므라빈스키의 10번과 다를 바 없게 느껴집니다. 유카-페카 사라스테의 한국 초연은 엄청난 순간이었지만, 로제스트벤스키가 건강 문제로 못 온 게 정말 아쉬울 뿐이네요.


전반적으로 훌륭한 연주에 대해 말하기 전에, 한 가지만 짚어보겠습니다. 가장 큰 적은 음질입니다. 최근의 프롬스를 듣던 분이 이 연주를 접한다면, BBC 음향 기술자들이 수십 년간 얼마나 뼈를 깎는 노력을 해왔을지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여담이지만, 전설적인 프로듀서 존 컬쇼가 데카에서 사임한 뒤 향하는 곳이 BBC 클래식 부서입니다. 지독했던 그의 완벽주의도 어쩔 수 없던 로열 알버트 홀... 이름이 기억 안 나는 한 영국 평론가가 생각납니다. "동굴 같은 알버트 홀에 가서 공연을 듣는 건 바보 같은 일이야. 나는 그래서 항상 라디오로 프롬스를 듣는다구. 마이크가 근접 녹음하잖아." 


그런데 말입니다. 녹음으로 잡힌 음향이 이 정도면 알버트 홀은 도대체 어떤 수준이길래... 일단 녹음을 판단해 보겠습니다. 말씀처럼 동굴 같습니다. 현악의 고음과 저음이 구분이 안되요. 두 음향이 섞인지 1년은 되서 유통기한이 지난 채로 멀리서 희미하게 냄새만 풍기는 느낌입니다. 금관과 타악기는, 망치로 무쇠를 두들기는 공기의 떨림만 전해지는, 둔탁한 소리입니다. 목관이 그나마 상황이 낫지만, 해상도가 떨어집니다. 결국 이 녹음은 해상도와 음향 모두 잡아내지 못했습니다. 저는 열악한 녹음이 연주의 광포함에 부채질을 하는 경우를 종종 봤지만, 알버트 홀에게서 그걸 기대하는 건 무리입니다.


프롬스답게 청중은 모두 일어서 있습니다. 순간 흠칫해서 프롬스의 오페라 실황을 - 물론 바그너를 - 찾아봤습니다. 다행히 그건 앉아서 듣네요. 트리스탄 전곡을 서서 듣는다 생각하면 땀이 흐르죠...


연주는 훌륭합니다. BBC 심포니는 79년에 이미 영광을 잃었지만, 지휘자의 미세한 뉘앙스를 훌륭하게 따라가고 있습니다. 합주력도 흠잡을 때가 없고, 리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인상적이네요. 그리고 목관의 앙상블을 이야기하고 싶은데요. 이 표현이 어울릴질 모르겠지만, 오르간이 떠오르는 앙상블입니다. 마치 하나의 악기처럼, 목관 모두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스톱을 끊임없이 조절하며 음색을 바꾸듯이, 로제스트벤스키는 목관을 세심하게 조절해가며 음색의 앙상블을 맞춥니다. 여러 악장에서 보이는 총주들이 그렇죠. 결국, 이 곡의 - 혹은 쇼스타코비치의 - 인감은 강력하고 아이러니한 목관의 사용 아니겠습니까? 상대적으로 현악에는 신경을 덜 쓴 것 처럼 보입니다. 역시나 이 곡의 인감인 1악장의 푸가토에선 흐트러진 앙상블과 가속을 보여주네요.


로제스트벤스키의 지휘는 깔끔합니다. 자유롭지만 절제되고, 적재적소에서 사인을 주는 효과적인 지휘네요. 그러면서도 음악의 다채로운 표정이 지휘에서 보인다는 게 거장의 솜씨가 아닐까 싶습니다. APM이 적다고 스타를 못하는 건 아니니까 말입니다...


발매된 연주가 50개를 넘었지만, 영상으로 담긴 건 몇 안 됩니다. 얼빠진 게르기예프를 재끼면, 남는 게 이 연주 밖에 없죠. (사이먼 래틀의 DCH 연주는 예외로 칩니다) 좋게 봐도 끼워팔기로 보이는 라흐마니노프 협주곡을 감안하더라도 - 이건 로제스트벤스키가 정말 잘하던 일이죠 - 이 연주를 봐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