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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잡설108

월터 레그 평론 05 : 스트라빈스키 (11월 1934년) 11월 1934년. 스트라빈스키 (1934년의 스트라빈스키) 어제 저녁 스트라빈스키의 영국 초연을 듣기 위해 많은 관객들이 퀸스 홀을 찾았다. 그들은 얼핏 보기엔 흥미진진하게 귀를 기울였고, 육십오분의 연주가 끝나자 걸작을 들었다는 듯이 박수를 쳤다. 하지만 그들이 를 라디오로 듣게 되어 작곡가가 누군지 몰랐다면 지금처럼 급하게 박수를 쳤을까. 이십년 전만 해도 그는 살아있는, 독창적인 작곡가였다. 는 그게 더 이상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가 세계 초연된 저녁 파리에 처음 개제된 의 기사에서 스트라빈스키는 작품에 대한 그의 의견을 말했다. 그가 가장 고민한 것은 "텍스트의 음절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매력적인 음향에 놀랄 기대는 말라"고 주의하며 다음과 같이 결론내렸다. "나는 틀림없.. 2016. 3. 27.
월터 레그 평론 04 : 코벤트 가든 반지 (5월 1934년) 5월 1934년. 코벤트 가든 반지 (1933년의 코벤트 가든) 뱃머리에 선 비첨, 방향키를 쥔 토이와 함께 코벤트 가든의 새로운 시대가 밝았다. 새 무대장치, 새 조명시설, 새 드레스룸, 새 프로듀서, 심지어 로비와 전면의 새로운 도장(塗裝)은 오래된 극장을 낯설게 했다. 사람들은 옛 무대에 너무 익숙해져 그 한계점과 흠마저 소중히 여겼다. 하지만 신임자들이 이를 일소했고, 비첨과 토이는 그들의 재임 기간에 코벤트 가든을 옛 모습으로 오해하는 일이 없도록 일할 것이다. 이번 독일 레퍼토리 기간에 보인 익숙한 여섯 작품 중, 다섯은 무대장치를 통째로 갈았고, 새롭게 초연한 두 작품, 와 는 자연스럽게 특별한 무대를 받았는데, 전자는 여기서 특별히 제작했고, 후자는 나치가 바인베르거를 인종적인 이유로 거부.. 2016. 3. 17.
월터 레그 평론 03 : 갈리-쿠르치 (1월 1934년) 1월 1934년. 갈리-쿠르치 오늘 오후 알버트 홀에서 열린 이탈리아의 유명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아멜리타 갈리-쿠르치의 복귀 무대는 음악보다는 오히려 심리학적인 사건이었다. 거의 육천의 인파가 런던의 안개 - 짐작건대 스모그가 될 게 분명한 - 을 뚫고 와 그녀의 노래를 듣는 특권을 위해 높은 가격을 낸 것이다. 심지어 프로그램에 음악적으로 가치 있는 곡은 여섯 곡도 채 안 됐고, 한물간 오페라 아리아, 잡다한 카페 음악과 발라드가 대부분이었다. 성악가의 목소리를 아끼기 위해 반주자와 플루티스트는 여러 곡의 독주를 선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곡들은 근사한 패션을 하고 빈 좌석들에 연주되곤 했다. 사실 관객 중 콘서트고어는 단 한 쌍도 없었다 - 퀸스 홀이나 코벤트 가든에 음악이 좋든 나쁘든 습관.. 2016. 3. 7.
월터 레그 평론 02 : 마리아 올셰프스카 (10월 1933년) 10년 1933년. 마리아 올셰프스카 (카르멘) 만약 리트 미학이 매혹적인 음색을 만들고, 아름다워 보이는, 관객들을 가수의 자태로 열광시키는 문제에 달려 있다면, 애올리언 홀에서 오늘 오후 첫 런던 리사이틀을 선보인 마리아 올셰프스카는 가장 위대한 리트 가수일 것이다. 내 기억에 이렇게 아름다운 음조의 가수는 그 자태와 강렬하지만 절제된 생기로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프리다 헴펠 이후엔 없었다. 그녀의 음색과 외모에 완벽한 아름다움이 담겨 있었기에 예술적인 결함들에도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 사실 올셰프스카는 리트 가수가 아니다. 그녀는 기교와 음악성 양쪽 모두에 결점이 있고 이는 오페라에선 드러나지 않되, 콘서트 조명에서 눈에 띄게 두드러진다. 그녀의 음악은, 많은 오페라 예술가들이 그렇듯이, 섬세하.. 2016. 3. 6.
월터 레그 평론 01: 히틀러씨와 함께한 바이로이트 축제 (8월 1933년) 8월 1933년. 히틀러씨와 함께한 바이로이트 축제 (1933년 바이로이트) 지나가던 행인이 이번 바이로이트에 방문해서 바그너 축제를 히틀러 축제로 헷갈렸다 하더라도, 그건 용납할 수 있는 실수가 되었을 것이다. 앞선 축제들에선, 모든 상점이, 어떤 물건을 판매하던 간에, 갈고리나 막대기를 이용하여 바그너의 사진이나 얼굴이 담긴 제품을 진열해놨었다. 십수개의 세라믹 바그너들이 도자기점 창문 너머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으며, 서점에는 바그너 자서전이 진열되어 있었다. 올해는 히틀러 기념판이 도자기점들을 가득 채웠고, 이 을 대체했다. 모든 깃대와 보이는 창문마다 스바스티카가 휘날렸다. 갈색 셔츠를 입는게 사실상의 드레스 코드가 되었고, “탄호이저 카페”와 “라인골트 여관”을 지나갈 땐 “호르스트 베셀의 .. 2016. 2. 21.
불레즈 어록 불레즈 어록 지휘자이자 작곡가인 불레즈의 90번째 생일을 맞아, 그의 가장 악명높은 언행들을 되짚어보았다. 20세기 고전음악 최고의 혁신가로 널리 알려진, 고전음악계의 가장 유명한 독불장군이 90번째 생일을 맞았다. 불황을 맞은 오페라에 대한 해결책이 ‘극장을 폭파시키는’것이라던 1967년 불레즈의 선언은 그를 가장 노골적이며 논쟁적인 인물로 만든 용감하고 솔직했던 발언들 중 하나일 뿐이다. 불레즈는 ‘내 표현들이 세월 속에서 멈춰있길 바라진 않습니다. 각각의 발언들에는 그 연도가 함께해야 합니다. 30년 전 당신의 사진이 지금의 당신을 나타낼 순 없지 않겠습니까.’ 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대인, 혹은 문화와 역사 따위의 보편적인 문제들을 겨냥했던 선동적인 발언들은(불레즈는 뒤샹을 ‘따분한 허풍.. 2015. 4. 2.
대전 예당 <피가로 대 피가로> 전혀 기대 안하고 갔다가 여러모로 만족해서 글을 남겨본다. 1. 서곡 첫음부터 심상치 않은 관현악에 놀랐는데, 탄탄한 중저역의 현악과 때깔이 다른 관악 앙상블을 들으며 그야말로 충격. 부천필의 경우 같은 지휘자의 브루크너 8번 교향곡을 봤었는데 해석은 둘째치고 오케스트라의 단단한 앙상블이 인상깊다는 기억이 난다. 그래도 이 정도는 아녔던 것 같은데 어제 관현악은 정말 완벽한 모차르트 앙상블 그 자체. 25년 짬밥이 이런건가 싶기도 하고. 국내 지휘자니 어쩌니 하면서 까는 태도가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다시 깨달았다. (근데 시향 베토벤은 왜 똥칠을 했을까..) 고전적인 모차르트의 표준을 보여준 어제 반주의 가장 큰 덕목은 균형감각이 아니었을까. 놀라웠던 점을 하나 언급하자면 치명적인 대전 예당 음향상태에.. 2015. 3. 21.
카더스 평론 17: 신들의 황혼 (1957년 10월 7일) 신들의 황혼 (1957년 10월 7일) Opera지 1957년 10월호 전반적으로 탁월했던 “신들의 황혼” 연주였다. 루돌프 켐페가 바라본 반지는 균형감각이 풍만했고, 시작부터 끝을 점쳐볼 수 있었다. “신들의 황혼” 대단원의 클라이맥스에서 켐페는 자신이 “라인의 황금”에서 보여준 작은 규모의 처리가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는 걸 보여주었다. 차분했던 “발퀴레”의 몇몇 장면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비록 기나긴 공연동안 금관군이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용맹했던 코벤트 가든 오케스트라를 탓하지는 말자. 이 나라에서 바그너의 3막을 위해 쌩쌩한 관악주자들을 따로 부르는 대륙의 호화로움을 찾을 여유는 없으니. 켐페는 브륀힐데와 지크프리트의 황홀하게 빛나는 순간부터 하겐과 기비훙족의 어두칙칙한 공간 모두를 섬세하게 .. 2015. 3. 12.